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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양전쟁 희생자 광주유가족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국적포기 시위 소식을 처음 들은 변호사들이 보도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 오마이뉴스 이국언

명예회복과 민족정기를 되찾기 위한 힘겨운 투쟁이 일본 나고야에서 벌어지고 있다.

태평양 전쟁 시기 강제동원에 의해 일본으로 끌려가 노예와 같은 삶을 강요당했던 피해자 박혜옥(73. 순천)씨 등 8명이 일본정부와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사죄와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99년 3월 나고야 지방법원에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지 5년째다.

이번 소송 변호인단 일원으로 한국을 방문한 미야다(宮田陸奧男. 62)·나카다니(中谷雄二. 48) 변호사를 만났다.

이들 변호사는 "전후보상에 영향을 미치게 될 이번 재판에 일본 정부와 언론의 관심이 높다"며 "국제법상 강제노동을 금지하고 있으므로 한국정부 차원에서 제소하면 지금이라도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들 변호사들은 특히 "피해자들이 훨씬 많음에도 불구하고 권리회복을 위해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근로정신대를 종군위안부와 같은 것으로 오인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유교적 전통이 강조되는 한국에서는 지금도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힘들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16일 광주 그랜드호텔에서 있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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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성근로정신대 소송' 변호인단 미아다 부단장
ⓒ 오마이뉴스 이국언
- 한국을 방문한 목적은 무엇인가.
"10월 1일 심문에 대비 미리 원고측과 관련 사실을 맞춰보기 위해서다. 그동안 한국방문은 10여 차례 있었다. 이번에 원고로부터 받은 자료는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성과가 있었다."

-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피해자 규모는 얼마나 되나.
"미쓰비시 중공업은 태평양 전쟁당시 나고야 등지에서 정찰기를 생산하던 군수산업체다. 규모는 정확히 알 수 없는데 이 공장에서 일했던 조선인 여성만 해도 400여명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출신지 확인이 안되거나 밝히기를 거부해 전체적인 규모를 알기는 어렵다."

- 일본 소송 변호인단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98년 나고야에서 심포지움이 열린 것을 계기로 변호단 결성이 시작됐다. 현재 60여명이 참가하고 있으며 15명이 주관하고 있다. 변호사별로 강제노역, 물자조달, 역사분야 등 각자 맡은 분야가 있다. 식민지 치하에서 억울하게 당해야 했던 문제를 알게 되면서 마땅히 이뤄져야 할 일본의 책임이라고 생각해 참여하게 됐다."

- 이번 소송을 돕기 위한 민간단체의 활동들도 활발하다고 하는데.
"98년 나고야에서 이번 소송을 지원하기 위한 회원을 모집했는데 사람들이 어떻게 알고 왔는지 10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회원으로 동참했다. 한국인과 학생들이 참여하고 일본 시민단체들이 참여했다. 재일 조총련들도 개인적으로 많이 도와줬다. 미쓰비시 회사를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고 서명운동과 심포지엄 등을 통해 이번 소송의 중요성을 환기시키고 있다. 지난 8월에 있었던 연극 '봉선화' 공연에는 1800여명의 시민들이 공연장을 찾아 높은 관심을 보여주기도 했다."

"소송 주체가 민간인들이기 때문에..."

- 재판의 전망은 어떤가.
"10월 1일 구두심문이 있다. 내년 봄이나 여름쯤에는 판결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 아직 낙관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일본정부의 인식 벽을 넘기 힘들다. 일본에서는 65년 한일협정으로 그 책임을 다했다고 말한다. 나머지는 한국정부의 몫이라는 거다. 60여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것도 더 그렇다."

- 소송을 진행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근로정신대를 종군위안부와 똑 같이 보고 있다. 피해자들은 강제로 끌려가 노예와 같이 일하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위안부로 취급받아왔다. 원고 6명 이외에 피해자가 훨씬 많은데도 불구하고 아직 자신을 드러내 놓고 있지 못하다. 한국같은 유교적 전통사회에서는 더 그렇다. 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 한 계속될 것이다."

- 전후 보상관련 소송이 70여건에 이른 것으로 아는데 결과는?
"거의 기각 당하거나 패소했다. 류렌지라는 이름의 중국 종군위안부 소송 건은 승소했다. 일본으로 끌려갔다가 탈출해서 혼자 산 속에서 20여년을 살다 발견된 경우였다. '우키시마호(관부)' 재판은 1심에서는 일부 승소했으나 올해 5월 고등재판에서 증거가 없다고 기각시키고 말았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책임을 지거나 해결하려는 자세를 취하지 않고 있다. 특히 사죄나 배상이라는 표현에는 질색한다. '화해'라는 형식으로 적당히 책임을 면하려 하는 것이다."

- 강제동원에 관해 국제법에서는 어떻게 규정하고 있나.
"국제법으로 강제동원은 금지돼 있다. 예외적으로 인정된 경우라 하더라도 특히 여자나 18세 미만인 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금지되고 있다. 일본도 조약에 서명한 만큼 이 적용을 받는다. 국제노동기구(ILO) 조약에 정확히 나와 있는 것이어서 한국정부가 제소하면 일본 정부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일본 법정에서는 국가 간에 적용되는 법이라며 소송 주체가 민간인들이기 때문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한국정부가 나서면 가능하다."

국적포기 시위 "그런 일 있었나, 전혀 몰랐다"

▲ 나카다니 변호사는 "지금이라도 한국정부가 책임있게 나서면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 이국언
- 한국정부의 대응을 촉구하며 이분들이 국적 포기를 선언한 사실을 아는가.
"그런 일이 있었나. 전혀 몰랐다. 놀랍다. 피해자들이 그렇게 분통해 하는 것이 이제야 이해된다. 이렇게 열심히 싸우고 있는 것에 새삼 경의를 표한다."

- 소송을 맡으면서 드는 느낌이나 감회는?
"일본이 피해자들에 대해 너무 힘들게 하고 방치해 놓은 것 같아 죄송할 뿐이다. 재판이 몇 년째 길어지고 또 일본까지 와서 재판 받게되는 것이 당사자들한테는 매우 힘든 일이다. 이 분들을 만나면서부터 개인적으로 많은 감동을 받았고 많은 것을 보고 느끼는 계기가 됐다."

11~16살 여자, 학교 보내주고 돈 벌수 있다고 속여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 여자 근로정신대 소송'이란 무엇인가

'조선 여자 근로정신대'는 11~16살 초등학교 재학생들에게 일본인 교장과 담임 등이 "일본에 가면 학교에도 보내주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다"고 속여 일본 군수공장 등으로 끌고가 강제노동을 시킨 사건이다.

1944년 패전이 가까워진 일본은 심각한 노동력 부족을 채우기 위해 마침내 조선 여성을 강제동원하기 시작했다. 형식상 '지원' 형태였으나 "가족이 대신 경찰에 잡혀간다"는 협박에 못이겨 마지못해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조선 여자 근로정신대가 동원된 곳은 지금까지 밝혀진 곳만 후지코시 강재공업주식회사 도야마공장, 도쿄 마사방적주식회사 누마즈 공장, 미쓰비시 나고야항공기제작소 도토쿠 공장, 나가사키 조선소, 사가미 해군공창, 야하타 제철소 등이다. 후지코시 강재공업주식회사 사사(社史)에 의하면 1945년 5월의 종업원 총수 3만6253명 중 1089명이 조선여자근로정신대원이었다고 한다.

이번 소송은 나고야 미쓰비시 항공기제작소에 끌려가 일한 피해자 8명이 일본과 미쓰비시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이다. 광주유족회가 주축이 돼 제기하고 있는 국내 유일한 것이다.

나고야 미쓰비시 회사에 끌려온 조선 여성은 전남 141명, 충남 138명 등 약 400여명. 이중 6명은 44년 12월에 있는 대지진으로 사망했다.

하루 10시간씩 중노동을 당하고도 귀국할 때는 임금한푼 받지 못한 이들은 '위안부'라는 또 다른 오해에 고통스런 삶을 살아야 했다. 일본에 다녀왔다는 이유로 혼담이 깨지거나, 결혼해 가정을 이뤄오다가 뒤늦게 이 사실이 밝혀지면 파산을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온전한 가정 한번 이뤄보지 못한 이들에게 남는 것은, 이제 가슴에 맺힌 '한'과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얻은 '병마'뿐이다. 피해자들은 모두 70세가 넘은 고령이다.

원고 8명중 1명은 5년째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사망하기도 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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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상임대표를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