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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군간호부의 노래>를 부른 김안라(金安羅)의 오빠이자 <눈물 젖은 두만강>으로 유명한 가수 김정구(金貞九)의 형인 김용환(金龍煥, 1909-1949(1948?))은 우리나라 가요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폴리돌, 오케, 빅터, 태평 등 여러 음반사에서 가수, 작곡가로 활약하며 숱한 인기곡을 발표했고, 연극이나 악극에도 관심을 가져 연출, 연기를 직접 해 내기도 했다. 그가 작곡하거나 부른 작품들 가운데에는 곡조가 민요풍인 것이 많았는데, 몇몇 곡들은 노골적으로 민족감정을 자극했기 때문인지 총독부 당국으로부터 치안방해를 이유로 금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1935년에 잡지 <삼천리>에서 실시한 가수 인기투표에서 남자부문 2위로 선정될 만큼 인기를 누린 김용환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러한 인기 때문에 군국가요 제작에 참여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중일전쟁이 일어난 직후인 1937년 11월에는 당시 전속되어 있던 폴리돌레코드에서 애국가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남아의 의기> <반도의용대가>(음반번호 19446)를 불러야 했고, 1943년에는 <우리는 제국군인>(음반번호 5079)이라는 노래를 작곡해 태평레코드를 통해 발표했다.

<남아의 의기>나 <반도의용대가>는 작품 내용이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아 그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기 어렵지만, <우리는 제국군인>은 1943년 당시 한글로 발행되는 유일한 일간지였던 <매일신보(每日新報)>에 가사가 실려 있어 일면이나마 살펴볼 수가 있다. 김정의(金正義)(또는 김정희(金正羲))가 작사하고 테너가수 최창은(崔昌殷)(1913-?)이 부른 <우리는 제국군인>은 1943년 9월 신보로 발표되었다.

거룩한 은혜로 부르심 받아/ 새로 난 반도의 사나이들아/ 일장기 밑으로 발을 맞춰라/ 우리는 이 땅과 이 하늘을/ 굳세게 지키는 제국의 군인이다
피 끓는 애국의 정성을 안고/ 일어선 반도의 사나이들아/ 불타는 희망에 발을 맞춰라/ 우리는 앞서간 군신(軍神)들의/ 충혼을 이어 갈 제국의 군인이다
동해의 아침 해 광명한 빛을/ 타고난 반도의 사나이들아/ 세계를 겨누어 대담히 가자/ 우리는 동아(東亞)를 새로 세울/ 큰 사명 등에 진 제국의 군인이다
팔굉(八紘)을 한데로 세우는 이상/ 나타낼 반도의 사나이들아/ 거친 세기(世紀)를 차 넘고 가자/ 우리는 정의의 칼을 들고/ 황도(皇道)를 휘날릴 제국의 군인이다
(신문에 실린 내용을 현재 맞춤법에 따라 바꾸어 표기한 것이다)


굳이 가사 내용을 보지 않아도 이미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겠지만, <우리는 제국군인>은 일제강점기에 나온 많은 군국가요 중에서도 친일적인 색채가 가장 짙은 것으로 꼽을 수 있을 만한 노골적인 작품이다.

'일장기', ‘동아(東亞)’, ‘황도(皇道)’처럼 군국가요에서 많이 사용되는 단어는 물론, 일제가 이른바 대동아성전(大東亞聖戰)의 상징적 이념으로 거창하게 내건 ‘팔굉일우(八紘一宇)’(온 세상이 한 집안이라는 뜻)까지 가사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우리는 제국군인>은 다른 우리말 신문이 모두 폐간된 뒤에도 조선총독부의 어용신문으로 유일하게 살아남은 <매일신보>가 징병제를 선전하고 미화하기 위해 ‘이천오백만이 창화(唱和)할 반도개병(半島皆兵)의 노래’로 거액의 상금을 걸고 모집한 가사 가운데 일등으로 당선된 것이었다. 1943년 5월에 당선이 발표되어 7월에 녹음을 하고, 9월에 정식으로 음반이 발매되었던 것이다.

작사를 한 김정의에 대해서는 <우리는 제국군인> 가사를 써서 응모할 당시 경성부(京城府) 누하정(樓下町), 즉 현재 서울 종로구 누하동(樓下洞)에 살고 있었다는 것 말고는 알려진 바가 전혀 없다. <매일신보>에서는 당선작 발표를 한 뒤 일등으로 뽑힌 그에게 당시로서는 대단한 거금인 천 원(圓)을 상금으로 수여했다고 한다.

가수 최창은은 일찍이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1936년에 니혼(日本)음악학교(또는 도요(東洋)음악학교)를 졸업한 뒤 돌아와 경성(京城)음악전문학원과 양정중학(養正中學)에서 교편을 잡으며 테너가수로 활동했다. 1940년에는 일본에서 독창회를 열 정도로 인정받는 성악가로 활동했던 그는 다른 유행가 음반을 남기지는 않았으나 군국가요인 <우리는 제국군인>을 불러 가요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우리는 제국군인>은 너무나 노골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데에다 가사 현상모집을 주관한 <매일신보>에서 대대적으로 선전을 펼쳤던 탓에, 광복 이후에도 대표적인 군국가요로 지목되었던 것 같다.

때문에 민족정경(政經)문화연구소라는 단체에서 1948년에 펴낸 <친일파군상(群像)>이라는 책에서는 친일적인 행위를 한 것으로 의심되는 각계 인사들을 거명하면서 <우리는 제국군인>을 작사, 작곡했다는 이유로 김정의와 김용환의 이름을 언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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