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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편 제주 산방산을 닮았습니다만, 모로락입니다에서 이어집니다. 
 
모로베이 남쪽 스위트 스프링스 자연보호구역이다. 드론으로 항공촬영을 했다. 하구 습지 뒤로 마을이 보인다.
 모로베이 남쪽 스위트 스프링스 자연보호구역이다. 드론으로 항공촬영을 했다. 하구 습지 뒤로 마을이 보인다.
ⓒ 황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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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 200여 종이 찾는 대규모 하구

모로베이의 자랑거리는 풍부한 수자원과 생태 다양성이다. 로스 오소스 크릭(Los Osos Creek)과 초로(Chorro)에서 흘러나오는 강물과 지하수, 빗물이 바다와 만나 2300에이커 규모의 하구가 형성해 있다. 캘리포니아주는 이곳을 모로베이 주 해양 보호지역(Morro Bay State Marine Reserve)로 지정하고 있다.

수초인 장어풀이 일대를 뒤덮고 있으며 철새가 매년 먹이활동을 하기 위해 방문한다. 가을과 겨울에는 알래스카에서 날아온 철새 수천 마리가 이곳을 찾는다. 물떼새류인 마불드 갓위트(marbled godwit)와 도요새류인 윌렛(willet), 마도요(curlew) 등 종류만 200여 종이다. 조류 보호단체인 더내셔널오두본소사이어티(The National Audubon Society)는 이 지역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조류 서식지 중 하나로 꼽고 있다. 매년 1월 겨울새 페스티벌(morrobaybirdfestival.org)이 열린다. 

탐방 둘째 날, 우리는 인근 스위트 스프링스 자연보호구역(Sweet Springs Nature Preserve)을 찾아갔다. 공원 입구에는 방문객을 위한 두꺼운 철새 도감 두어 권이 놓여 있었다. 오며가며 만난 새 이름 하나 정도는 기억해달라는 마음일까.

마을에서 흘러온 강물은 뱀처럼 굽이굽이 흘러 바다와 만났다. 키 큰 관목은 어깨를 겯고 도시와 바다 사이에 우뚝 서 있었다. 떠나는 강물이 뒤를 돌아보며 머뭇거리지 않도록 바리케이드를 쳤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강이여, 도시의 땀이여, 어제를 잊고 바다로 나아가라. 끝끝내 돌아보지 말아라.

차를 타고 남쪽으로 조금 더 내려가 산책길인 아티스트 가든(Artist's Garden)에 갔다. 땅에 붙어 자라는 아기 새끼손톱만 한 유럽단추쑥속(Cotula coronopifolia)과 얇고 가는 꽃잎이 촘촘히 달린 카포브로투스 에두리스(Carpobrotus edulis)가 소리 없이 제 빛깔을 내고 있다. 하구에는 남녀가 나란히 패들보트의 노를 젓고 있다. 모든 것을 잠시 멈출 수 있는 장소다.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봐야 하는 달뜬 여행객에게는 차가운 안정제 같은 곳이다.
 
아티스트 가든이다. 여행객이 패들보트를 타고 있고 왼쪽 바다 넘어에는 멀리 모로락이 보인다.
 아티스트 가든이다. 여행객이 패들보트를 타고 있고 왼쪽 바다 넘어에는 멀리 모로락이 보인다.
ⓒ 황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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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는 왜 이곳을 선택했을까

모로베이는 1870년 사업가 프랭클린 릴리(Franklin Riley)가 항구를 만든 뒤 유제품과 축산물 수출을 하며 성장한 곳이다. 부둣가 엠바르카데로에는 범선이 수시로 드나들며 물건을 싣고 날랐다. 소라게와 해삼, 홍합, 굴 등 수자원이 풍부했다.

1930년대, 머구리가 산소통과 헬멧 등 68킬로그램 정도의 장비를 들고 잠수해 전복과 성게 등을 채취했다. 1957년까지 전복 산업이 정점을 찍다가 이후 남획과 소비 감소로 사그라들었다. 당시 빨간 전복이 일 년에 90만 킬로그램 이상이 채취됐는데 항구에 정박한 선박만 150대 정도였다고 한다. 현재 선박은 20여 대로 넙치(Halibut)와 우럭(Rockfish), 날개다랑어(Albacore) 등을 잡고 있다.
  
모로베이 해양 박물관(Morro Bay Maritime Museum)이다. 50년대 활동하던 머구리의 장비와 원주민이 사용했던 카약이 전시해 있다.
 모로베이 해양 박물관(Morro Bay Maritime Museum)이다. 50년대 활동하던 머구리의 장비와 원주민이 사용했던 카약이 전시해 있다.
ⓒ 황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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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 다양성 때문인지 이곳은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의 후속편인 <도리를 찾아서>(2016년)의 배경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도리가 해양 생물 연구소에서 빠져나와 모험을 시작하는 장소가 이곳이다. 영화 배경 음악도 모로베이의 보석(The Jewel of Morro Bay, California)이다. 그런데 도리는 인도, 서태평양 해양에 서식하는 검은쥐치 일종인 블루탱(Bule Tang)이다.

부둣가 엠바르카데로에는 기념품 샵과 각종 음식점이 줄지어 있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해군 함대가 훈련을 하기 위해 주둔했었는데 군인들이 티(T)자형 부두 2개와 모로락으로 가는 둑길 등 이 일대를 조성했다. 

부둣가에는 바다사자와 멸종위기종인 해달이 놀고 있다. 해달을 제대로 보려면 육지와 모로락을 잇는 길인 육계사주 중간쯤 가면 한꺼번에 여러 마리를 관찰할 수 있다.

아침 8시쯤 산책하러 나가니 해달 10여 마리가 물살에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 서로 팔짱을 끼고 해초를 붙잡고 있었다. 한 마리는 깊이 잠수해 조개 하나를 캐와 돌로 타악-탁 소리를 내며 깼다. 해달은 들고양이만 했다. 한 지역 언론은 이 일대에 해달 40여 마리가 서식한다고 보도했다.
 
멸종위기종인 해달이 해변 가까이에서 서식 활동을 하고 있다. 드론으로 촬영했다.
 멸종위기종인 해달이 해변 가까이에서 서식 활동을 하고 있다. 드론으로 촬영했다.
ⓒ 황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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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을 먹기 전, 메로이어를 기억하라

항구 어느 식당을 가나 바다와 모로락을 보며 식사를 할 수 있다. 음식 가격은 체감상 로스앤젤레스보다 2~3달러쯤 저렴했다. 우리는 토그나지니스 닥사이드 식당(Tognazzini's Dockside Restaurant)을 갔다. 이곳은 직접 배를 띄워 물고기를 잡은 뒤 피쉬타코와 생선 샌드위치 등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신선한 굴과 성게도 있다. 

식탁마다 지역사를 담은 사진이 붙어 있었는데 지역에 대한 주민들의 자긍심이 엿보였다. 나는 생굴에 레몬을 가득 짜서 생강향이 나는 칠리소스를 얹어 먹었다. 물크덩한 것이 입에 쏙 들어오자 달콤하고 향긋한 풍미가 입안 가득 휘돌았다. 살아 있음에 그저 신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독수리 신이여, 나를 인간으로 만들어주시고 영혼까지 불어넣어 주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서부 해안 굴은 동부 해안 굴보다 차가운 환경에서 자란다. 알래스카만의 영향인데, 6월 기준 서부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바다 수온이 10도라면 비슷한 위도에 있는 동부 버지니아주 바다 수온은 23도다. 이 때문에 동부 굴은 모서리가 깨끗하고 모양이 일정하지만 서부 굴은 껍데기에 물결이 많고 불규칙하며 굴곡이 심하다.
 
미 서부 해안에서 양식하는 굴이다. 신선한 굴은 수박향이나 부드러운 크림향이 난다.
 미 서부 해안에서 양식하는 굴이다. 신선한 굴은 수박향이나 부드러운 크림향이 난다.
ⓒ 황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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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해안마다 자라는 굴 종류도 다르다. 동부는 토착굴인 크레소스트레아 버지니카스(Crassostrea virginicas)가 자라고 서부 해안은 일명 태평양 굴이라고 부르는 크레소스트레아 기가스(Crassostrea gigas)가 생산된다. 원래 아시아에서 자생했지만 지금은 미국에서 양식되고 있다. 일본 태생인 크레소스트레아 시카미아(Crassostrea sikamea)도 있다. 워싱턴주에서는 토착종인 아스트리아 루리다(Ostrea lurida)가 채취된다.

풍미도 차이가 있다. 서부 굴이 육질이 통통하고 부드러우며 은은한 미네랄 향이 난다면 동부 굴은 짜고 쫄깃하다. 라파하녹 오이스터사 공동대표 리안 크로스톤(Ryan Croxton)이 2019년 12월 26일 자 로스앤젤레스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서해안 굴은 물에서 발생하는 화학 작용으로 수박 맛이 난다"고 말했다. 

<굴의 지리(A Geography of Oysters)>를 쓴 작가 로완 자콥슨(Rowan Jacobsen)은 굴 맛에 '메로이어(Merroir)'라는 개념을 쓴다. 와인의 주재료인 포도가 재배지의 지형과 토양, 일조량, 미세기후에 영향을 받는 것처럼 굴도 해조류의 양, 조수, 광물 함량, 강우량 등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와인 애호가들이 지역마다 다른 땅맛을 '테로이어(terroir)'라고 말하는데, 로완 자콥슨은 해안마다 다른 굴의 풍미를 '메로이어'라고 말한다. 프랑스어로 메(mer)는 바다를 뜻한다.

멸종될 때까지 원주민을 박멸하라

모로락과 함께 모로베이를 대표하는 상징물은 137미터짜리 굴뚝 3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모로베이 파워플랜트가 일자리 창출과 세수 확대를 외치며 1950년대 만든 전기 발전소다. 지역 사람들은 이것을 지역 랜드마크라고 말하지만 원주민의 성지 바로 가까이 세워진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은 영 보기가 사납다. 

발전소는 2013년 2월 문을 닫았다. 하지만 만들 당시 폐기할 때 따르는 비용을 회사가 부담한다는 계약을 지역 정부와 하지 않아 여전히 흉물로 방치해 있다. 한 회사가 몇년 전 구입해 다른 에너지 공장으로 전환할지 아니면 폐기할지 고민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2014년 11월 24일자 기사에서 캘리포니아의 이런 현실을 비꼬았다. 

"캘리포니아는 에너지 수급에 대한 갈증과 환경에 대한 경의로 둘 다 유명하다. 이 두 가지 열정이 작은 무대에서 펼쳐지고 있다.(California is known for both its thirst for power and its celebration of the environment, and here these two passions have shared a small stage.)" 
 
모로베이의 또 다른 명물인 전기 발전소다. 현재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모로베이의 또 다른 명물인 전기 발전소다. 현재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 황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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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들은 원주민 학살사도 노골적으로 감추고 있다. 캘리포니아 원주민사를 다룬 블로그 자료(https://sites.google.com/site/caiaindianscollab)와 지역 뉴스에 따르면, 스페인 선교단인 샌 안토니오와 샌미구엘이 1771년과 1797년 각각 이 지역에 미션을 만들었다.

이 미션들에서만 짧은 기간 세례식 수가 각각 440건과 2400건 진행됐다. 원주민들의 세속화 이후 수천 명에 달하던 살리난 인구는 급격히 감소해 1831년 700명 이하로 줄었다. 1930년에는 살리난 원주민들이 멸종한 것으로 간주됐다. 현재 20여 명이 이 일대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착취는 법과 문명의 언어로 자행됐다. 유럽 정착민은 원주민을 노예화하고 1849년 골드러시 때는 사냥과 광산으로 그들을 내몰렸다. 1851년 피터 버넷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원주민이 멸종될 때까지 인종 박멸 전쟁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선포하기도 했다. 원주민은 이름을 스페인식으로 바꾸고 존재를 숨기며 살 수밖에 없었다.

굶주림과 폭력, 식생활 변화 등으로 원주민 인구는 계속 감소했다. 어느 날 유럽 정착민이 집에 찾아와서 정부로부터 땅을 배당받았다고 말하면 원주민은 별 힘도 못 쓰고 쫓겨나야 했다. 소명해 봐야 정부는 그들 편이 아니었다.

학교에서도 원주민 역사를 가르치지 않았다. 로저 캐슬(Roger Castle) 등이 쓴 모로베이 대중 역사서 <모로베이Morro bay>에는 원주민 역사를 찾으려야 찾을 수 없다. 멸종위기종 송골매가 모로락에서 복원될 동안 원주민의 명예와 권리는 복권되지 않았다.

모로베이에서 만날 수 있는 두 개의 온천

모로베이에서 20분가량 남쪽으로 내려오면 두 개의 온천이 나온다. 아빌라 온천(Avila Hot Springs)와 시카모어 미네랄 온천(Sycamore Mineral Springs Resort & Spa)이다. 

웹페이지(www.avilahotsprings.com) 안내에 따르면 아빌라 온천은 살리난 원주민이 부상과 질병 치료를 위해 사용했다. 그러다 1907년 석유 개발을 하다 대규모 온천수가 발굴됐고 현재는 리조트화됐다. 아빌라 온천은 예약 없이 선착순으로 입장할 수 있다. 성인 기준 하루 요금이 12달러다. 5000평방 미터 온수 수영장과 미끄럼틀 등이 갖춰져 있어 가족 단위 방문객이 물놀이 하기 좋다. 현재 코로나바이러스로 한 번에 9명만 들어갈 수 있다.

우리는 방역 때문에 개인탕을 운영하고 있는 시카모어 온천 리조트(www.sycamoresprings.com)를 갔다. 시카모어 온천은 1886년 석유 개발자들이 석유를 찾다가 온천수를 발견했다.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 중간 지점에 있어 두 도시를 오가는 사람들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한다. 1930년대에는 유명인들이 언론재벌인 랜돌프 허스트의 허스트 캐슬(Hearst Castle)을 가기 전 들르는 곳이었다.

허스트 캐슬은 이곳에서 북쪽으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다. 1, 2차 세계대전 후 신문업으로 대부호가 된 허스트가 지인들을 초대해 로비를 하던 대저택이다. 입장료를 내며 투어를 할 수 있다. 가짜 뉴스와 황색 저널리즘으로 쌓아올린 어마어마한 부를 목격할 수 있다. 
 
시카모어 온천이다. 왼쪽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가파른 비탈에 온천이 설치돼 있다.
 시카모어 온천이다. 왼쪽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가파른 비탈에 온천이 설치돼 있다.
ⓒ 황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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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탕은 산비탈 경사면에 새집처럼 터를 잡고 있다. 격자무늬 나무 울타리가 탕을 감싸고 시카모어 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만들었다. 보글보글 끓는 탕에 누워 준비해 온 와인이나 간식을 먹으면 피로가 쫙 풀린다. 이곳의 단점은 비싸다는 것. 평일 기준 시간당 19달러, 금토일과 공휴일은 24달러다. 미리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해야 입장할 수 있다. 온천욕을 충분히 하지 못해 아쉬웠다면 주변 산책로와 리조트 정원에서 몸을 식히며 산림욕을 할 수 있다.

태그:#미국여행, #온천, #허스트캐슬, #원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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