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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화물연대 파업에 제멋대로 '불법' 딱지를 붙였다. 화물트럭 운전기사가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들이 안전운임제 법제화와 차종·품목 확대를 요구하며 운전대를 멈추자 '불법 파업'으로 규정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개인사업자라면 언제든 일손을 멈출 자유가 있고, 노동자는 파업을 통해 집단의 힘을 발휘할 권리를 갖고 있다.

설상가상 정부는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도입 이후 처음으로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업무개시명령은 '국가경제에 매우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거나 초래할 우려가 있을 경우' 발동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어떻게 입증할 수 있을까? 위헌 시비가 나오는 이유다. 오히려 끊임없이 장시간 노동을 추동하고, 그것이 사고 위험을 크게 높인다는 점이야말로 '심각한 위기'가 아닐까?

세간의 많은 비판과 국제노동기구(ILO)의 우려 표명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강도 높은 압박을 멈추지 않았다. 이로 인해 화물연대는 파업 지속 여부를 묻는 조합원 투표를 진행했고, 16일에 걸친 파업을 마무리했다. 이번 파업은 조합원의 높은 참여율만이 아니라 비조합원들의 지지와 동조 속에서 진행됐는데, 이는 화물트럭 노동자들의 단결이 강화됐다는 걸 방증한다.

이번 파업 진압 과정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은 끊임없이 '불법 행위'라는 잣대를 들이밀었고, 민주노총을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타협불가 세력' '범죄 집단'이라고 몰아붙였다. 가히 1950년대 미국의 매카시즘 광풍과 1965~1966년 인도네시아에서 자행된 공산주의자 학살(Pembantaian di Indonesia)을 상기시킨다.

결과적으로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금과옥조처럼 떠받드는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할 뿐이다. 노동권을 요구할 땐 개인사업자로 치부하고, 집단 업무거부에 돌입할 땐 노조의 불법적 파업으로 재단하니 법 체계가 온전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민주주의를 위기로 내모는 장본인은 바로 윤석열 정부 자신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3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다.
▲ 격려사 하는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3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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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역사 자체가 불복종의 역사

사실 한국 민중의 역사는 그 자체로 불복종의 역사였다. 3.1운동 연구자 조경달 교수에 따르면 1919년 3.1운동은 1910년대 일본의 강경 식민통치 정책과 민중 배제적인 근대화 정책의 산물이었다.

당시 시위와 행진은 불법 행위라는 이유로 가혹하게 진압됐지만, 운동은 왕성하게 전국화됐다. 신문과 삐라가 수없이 배포됐고, 납세 거부와 일본 상품 불매, 파업이 감행됐다. 시위에 나선 조선인들은 경찰서와 주재소, 일본인 상점과 우체국을 습격했고, 전봇대를 넘어뜨리고 교량을 불태우거나 통신과 교통을 방해했다.

1960년 4월 혁명 역시 도시 빈민의 불복종 저항을 바탕으로 일어났다. 현대사 연구자 오제연 교수에 따르면 이들은 사회경제적인 불만과 권력에 대한 분노로 대통령 퇴진을 요구했고, 이승만 퇴진 이후에도 전국 주요 도시에서 격렬한 시위를 지속했다. '양아치'로 불리던 불량 청소년과 구두닦이, 신문팔이, 깡패, 홍등가의 여인, 품팔이, 넝마주이, 노동자들은 "폭력 경찰 때려죽여라. 민주 역적의 소굴 경찰서를 쳐부수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불복종 시위를 펼쳤다.

그 후로도 우리 역사의 낙관적 전망은 민중의 불복종 운동에 의해 밝혀져 왔다. 불복종의 순간마다 지배 엘리트들은 불법 행위라는 딱지를 붙였지만, 법이 지배계급만을 위한 수단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순간부터 아무런 정당성도 가질 수 없었다.

대학생들의 공장 취업이 불법으로 규정될 때 청년들은 '불법적으로' 공장에 취업해 노동권과 민주노조 결성을 호소했고, 쟁의권 확보 절차가 불분명할 때에는 '불법적으로' 파업을 일으켰으며, 집회시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을 때에는 '불법적으로' 기습 시위를 벌였다. 심지어 대학 캠퍼스 내에서 정치적 내용의 대자보를 부착하는 것이 위험한 행위로 규정될 때 '불법적으로' 대자보를 붙여 항의했고, 불복종의 조직화를 바탕으로 대안적인 공동체와 실천을 축적했다.

민주주의 위기 시 발휘되는 시민불복종

한나 아렌트는 <공화국의 위기>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변화를 만들어낼 정상적인 경로가 더 이상 기능하지 않다는 확신을 가질 때, 불만이 더 이상 받아들여지거나 처리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질 때 혹은 그와 반대로 정부가 합법성 및 합헌성이 심각하게 의심스러운 방식으로 어떠한 변화를 꾀하거나 정책을 착수하고 추진한다는 확신이 들 때 시민불복종이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즉 대의민주주의의 위기에 맞서 시민불복종이라는 위법적인 저항권이 발휘되어야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이 이른바 '헌정(憲政)'의 정신을 위반하거나 위태롭게 할 때 민중들은 헌법적 정당성이라는 이름으로 그것을 바로잡으려 시도하고, 지배엘리트는 이를 체제의 근간을 위태롭게 하는 '불법 행위'로 규정한다.

하지만 시민불복종은 사실 헌정이라는 토대에 입각해 그 질서를 다시 구축하려는 시도다. 운동 과정에서 시민들은 집단화·조직화되며, 자신의 윤리를 새롭게 발명한다. 지배엘리트 집단의 잘못된 정책이나 법에 저항하려는 민중의 태세야말로 능동적인 시민 윤리의 핵심이고, 이들이 지키고자 하는 헌정의 토대다. 이를테면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며? 정치인들은 왜 국민을 무시하지?"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며? 왜 무기를 팔지?"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며? 왜 불평등은 심화되고 노조법 2조와 3조는 노동자들에게 불합리하지?" 같은 의문들 말이다.

시민불복종은 그 자체로 직접 민주주의를 가리키거나, 무오류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때때로 불복종은 어떤 오류의 위험을 안고 있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축적된 사회운동의 경험과 지식은 이런 오류를 피하고, 민주적이고 평등한 운동의 가치를 증폭시키기 위해 어떠한 전술이 필요한지 지혜를 제공한다.

그러니 대의민주주의가 반드시 선거제도를 가리키지 않더라도, 그것은 우리 삶을 가로지르는 규범의 중요한 요소이다. 아래로부터의 운동과 감시가 부재할 때 우리가 뽑은 대표는 시민들의 정치적 역량을 약화시키는 데 일조하지만, 반대로 새로운 시민 윤리에 의해 운용되는 사회운동이 건강하게 존속할 때 지배엘리트가 감추려는 사회적 모순을 드러내고 우리의 목소리가 정치의 언어로 표현될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불복종은 개개인의 흩어진 행동으로 남아선 안 된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집합적이어야 성공한다. 오늘날처럼 지배엘리트가 자신들이 만든 법마저 부정하면서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할 때, 우리는 한편에서는 불복종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새로운 조직화와 정치를 기획해야 한다.

2023년 시민불복종을 위해 고려할 것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과 농민, 학생, 시민들이 2022년 12월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전국민중대회에 참석해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며 민생파탄 국가책임 인정, 민생개혁입법 쟁취, 쌀값 정상화, 이태원 참사 대통령 사과, 민주주의 파괴 중단 등을 촉구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과 농민, 학생, 시민들이 2022년 12월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전국민중대회에 참석해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며 민생파탄 국가책임 인정, 민생개혁입법 쟁취, 쌀값 정상화, 이태원 참사 대통령 사과, 민주주의 파괴 중단 등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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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말로 시민불복종을 전면화하고 조직화해야 할 때다. 2023년, 시민불복종운동을 위해 다음 세 가지를 고려하면 어떨까?

첫째, 시민불복종의 주체가 될 다양한 집단을 지역과 일터 곳곳에서 구성해야 한다. 노동조합 가입, 주민운동 참여, 시민단체 후원, 동아리 만들기, 책 읽기 모임 등 다양한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아렌트가 말했듯, 시민불복종은 '집단화'돼야 유의미하기 때문이다.

둘째, 집합들의 평등한 네트워크와 전선이 필요하다. 지난 10년 시민사회는 고립·분산되어 제각각 자기 사업을 치르기 바빴다. 이따금 사안별 연대체가 구성되기도 했지만 사회운동의 중장기적인 전망을 구체화하는 노력은 부재했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쳇바퀴 돌듯 사안별 연대 사업만 반복할 뿐이다. 시민사회는 정치세력화에 대한 벽을 넘어서야 한다.

셋째, 대안 정치를 새로 구성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선거연합정당으로의 무리한 통합도, 단순한 상층 논의도 답이 될 순 없다. 과거의 방식을 반복하기보다는 '진보정치'를 아래로부터 구성하기 위한 운동의 과정이 전제돼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폭풍이 몰아닥친 이래 불평등이 심화하고 일터의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때 우리 사회의 담론은 너무 쉽게 이것들을 부차화했다. 이는 정치의 위기를 낳았고,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위기로 이어졌다. 이제, '나만의' 불복종, 인플루언서나 정치인에게 내맡긴 '불복종 따라 하기'가 아니라, 집합적인 불복종의 네트워크를 통해 실천과 대안을 만들자.

덧붙이는 글 | 글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이 글은 참여연대 소식지 <월간참여사회> 2023년 1-2월호에 실립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02-723-4251


태그:#참여사회, #참여연대, #시민불복종, #이게나라냐 , #홍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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