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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진로 이야기 하고 싶어요" 베트남에서 온 엄마의 소원 http://omn.kr/21qpw

어떤 마음을 딱 꼬집어서 표현하고 싶을 때
- Phan Thị Thảo(판 티 타오, 이지연)씨, 베트남 출생, 2010년 이주

 
판 티 타오씨
 판 티 타오씨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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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땅에서 아이 키우는 거 힘들죠. 근데 말 안 통하니까 더 스트레스 받을 때 있죠. 지금은 제가 한국어 그때보다 잘하니까 대체로 대화에 큰 무리 없는 편이지만, 때때로 깊은 이야기 나눌 때나 어떤 마음을 딱 꼬집어서 표현하고 싶을 때 휴대폰 번역기 돌려가면서 대화할 때 있어요. 그럴 땐 내 말을 알아듣고 싶어 하는 아들이 고맙고 기특하지만 여러 마음 들죠."

옥천읍에서 베트남 식당·식료품점을 운영하는 판 티 타오씨의 아들은 베트남에 관심이 많다. '엄마가 태어난 나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음식이 맛있는 나라'이기도, '또래 사촌들이 있는 나라'여서도 그렇다.

베트남어는 이모(엄마 친구들)들이 엄마랑 얘기할 때 쓰는 말이라서 좋고, "bà ngoại(바 응와이, 외할머니)를 웃게 하는 말이라서" 더 좋다. 소통이 원활하지는 않지만, 한국에 와 있는 외할머니에게 '밥 드세요' 같은 짧은 인사를 건넬 때 돌아오는 웃음이 할머니의 나라 말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제가 베트남 식당을 하고 여기서 모임도 하고, 저희 엄마도 일 도와주러 한국에 와계시니까 베트남 사람 자주 보고 베트남어 많이 들리죠. 이런 환경 덕분에 계속 관심 가지나 봐요."

판 티 타오씨는 이중언어에 열려있는 사회적·가정적 환경만으로도 자녀가 이중언어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충분한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한편, 이주민 가족 구성원의 모국어를 제한하고 한국어를 강요하는 분위기가 여전히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외국어로 말하면 눈치나 시선을 받는 등 이중언어 사용을 제한하는 사회적 분위기 만으로도 '반대'라는 느낌에 부딪친다는 것.

"외갓집(베트남)에 혼자 보내보려고 해요. 가면 사촌들이랑 잘 어울려 놀거든요. 말이 완전히 통하지 않아도 사촌들이 하는 말을 조금씩 따라하면서 같이 웃고 노니까 조금이라도 배울까 해서요. 그리고 우리 아들 베트남에 관심도 많아요. 비행기 조종사가 꿈인데 베트남 가는 비행기 기종, 몇 시에 비행기 출발하고 도착하는지도 다 알아요."

인사말과 간단한 대화 정도가 가능한 수준이지만, 아들은 판 티 타오씨가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때 흥미로운 듯 그 말을 유심히 들어본다. 알아듣는 말도 있고, 알아듣지 못하는 말도 있다. 

판 티 타오씨는 아들이 베트남어에 관한 관심을 잃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그 사실만으로도 외롭지 않다. 베트남에 방문해 외갓집 식구들과 더욱 가깝게 지내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서로가 경험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다면 모자 관계가 더 가까워질 것이라는 기대도, 가족 간 대화가 더 풍성해지리라는 소망도 품는다.

"시간을 돌린다면 아이가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두 가지 언어로 소통하고 싶어요. 그땐 한국말 늦게 배울까 봐 걱정했고, 앞으로 한국에서만 살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생각 달라졌죠. 지금처럼 베트남 가고 싶다는 마음 나중에도 있으면, 거기서 살면서 일할 수도 있는 거고. 두 가지 언어 다 할 수 있었으면 '우리 어쩌면 더 좋을 수 있었겠다' 이런 생각도 해보죠. 외갓집 가족들이랑도 더 잘 지낼 수 있었을 거고, 그럼 두 나라에 생활 기반 있다는 안정감 느낄 수도 있었을 텐데..."

한국 음식을 잘하게 되는 것도, 한국말이 늘어 생활에 자신감이 붙는 것도 기쁘지만, 가족 특히나 자녀와의 교감을 통해 엄마로서의 자신감을 느끼고 싶다는 말도 이어졌다. 자녀의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의 시기가 다가올 때 옆에서 함께 고민을 들어주며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자녀의 진로 결정 시기가 다가오기 전, 두 언어로 깊은 교감을 나누고 싶다는 마음은 더욱 커져만 간다. 하지만 우리 지역에서는 베트남어를 가르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 판 티 타오씨의 말. 이중언어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수업이나 교구 등을 구하기 어려운 환경이어서다.

"나이에 맞는 교육 계속 시킬 수 있으면 좋죠. 특히 어디가 아픈지, 화났는지, 슬픈지 감정을 표현하는 말들 가르쳐주면 더 좋겠고요. 배워서 집에 가서 엄마랑 얘기해보고 오는 거 숙제로 내주면 더 좋죠. 자녀에게 이중언어 가르치는 교육 있으면 얼마든지 보내고 싶어요. 소원이에요."

두 가지 언어로 사랑을 주면, 열배로 느낄 거예요
- Bùi Thanh Trúc(부이 탄 쮹, 이주희)씨, 베트남 출생, 2013년 이주

 
부이 탄 쮹씨와 자녀의 모습
 부이 탄 쮹씨와 자녀의 모습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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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속에 아이가 있을 때부터 베트남어로 말했어요. 한국어로도 하고, 베트남어로도 하고. 아이가 3~4살 땐 다문화 센터에서 하는 이중언어 코칭 받으면서 어떻게 자녀와 두 가지 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지, 어떻게 가르칠 수 있는지 배웠고요."

부이 탄 쮹씨 역시 자녀의 이중언어 교육에 가족과 주변인의 염려를 경험했다고 말한다. '두 가지 언어를 가르치면 아이가 말을 헷갈린다'거나 '말을 더듬는다'거나 '한국어가 늦는다'는 편견에 끊임없이 부딪혔던 것. 하지만 베트남어로 자녀와 소통하는 것을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포기할 수 없었다.

"절대 포기 안 하죠. 지금 포기하면 저랑 아들 사이에 언젠가 벽 생기잖아요. 소통의 끈 놓치잖아요. 저 한국 와서 한국어 많이 공부했죠. 일도 했고요, 남편과 시부모님하고 대화할 땐 한국어로 하죠. 그래도 백 프로 완벽하지 않고 그거 저도 알아요. 모국어 아니니까 당연한 거죠. 그럼 언젠가 아들과 얘기할 때 다 이해 못 하는 순간 생기겠죠? 그럼 전 슬프고 속상해서 어떡해요."

지금 부이 탄 쮹씨의 아들은 엄마와 대화할 때는 베트남어를, 평소 친구들과 대화하거나 학교에서는 한국어를 구사한다. 두 가지 언어를 완벽하게 습득한 것이다. 부이 탄 쮹씨는 아들과 두 가지 언어로 자유롭게 대화하게 된 오늘이 오기까지 두렵고 지친 날들이 계속 됐다고 말한다.

"남들 말처럼 정말 한국말 늦을까 봐, 두 가지 말 모두 못하게 될까봐 무서웠어요. 내 아들과 대화하는 거고, 이게 내 언어인데도, '써도 되나?'하는 생각 계속 들었고요. 그래도 마음에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저를 'mẹ(엄마)'라고 불렀을 때, 너무 기뻐서 눈물이 쏟아졌어요."

엄마를 부르는 한 단어에서 시작해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해지기까지. 자녀는 빠르게 언어를 습득하기 시작했다. 자녀가 두 가지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되자 집안 분위기도 사뭇 달라졌다. 부이 탄 쮹씨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묻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가족들이 아들에게 '엄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를 묻게 된 것이다.

그러자 '뜻을 오해할까 봐', '표현이 어려워서', '문화 차이' 등의 이유로 마음속으로 삼켜야만 했던 말도 전보다 자유롭게 꺼낼 수 있게 됐다. 가족 간의 마음의 장벽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는 것을 느꼈고, 억눌렀던 걱정들에서 점차 해방돼 가는 것을 경험했다.

"한국말하고 똑같아요. 환경 만들어주고, 도와줄 사람 옆에 있으면 아이들 언어가 얼마나 금방 느는지 아세요? 어느 날은 아이가 아플 때 제가 아이 머리맡에서 두 손 모아 기도했어요. 다음에 제가 아팠을 때, 아이가 제 옆에 와서 제가 했던 것처럼 머리를 만져주고, 이불 덮어주고. 그리고 두 손을 모으고 제가 했던 기도를 똑같이 따라 했어요. 그럴 때, 내가 강한 엄마라고 느껴요.

깊이 소통하고 싶은 마음 있으면 포기하지 마세요. 아이는 그 마음 반드시 알아줘요. 한국어로도 사랑한다는 표현 하나만은 아니죠? 사랑해. 사랑스러워. 아낀다. 소중하다. 너무 많잖아요. 베트남어도 마찬가지죠. 제 마음에 있는 모든 사랑의 말, 제 아들에게 다 알려주고 싶어요. 그래서 두 가지 언어로 사랑을 주면 아이들은 그 마음 열 배로 느낄 수 있어요."

마침 전화벨이 울렸다. 부이 탄 쮹씨 부모님의 전화였다. 인터뷰하는 엄마를 대신해 아들이 익숙하게 외할아버지의 영상전화를 받았다. 부이 탄 쮹씨의 통역 없이도, '파파고'가 없이도 손자와 외할아버지 사이에는 긴 대화가 오갔다. 그 모습을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던 부이 탄 쮹씨는 최근들어 마주한 새로운 고민 한 가지를 털어놓았다.

"두 달 전부터 직장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이제 아들이 저 없을 때 베트남어 도 배우고 공부 이어갈 수 있는 곳 필요하죠. 비슷한 또래가 모여서 같이 동화책 읽고 노래도 배우고 글자 배울 수 있는 곳 있으면 좋죠. 아들 주변에 베트남어 할 수 있는 친구 한 명 있는데, 둘이 만나면 베트남어로 얘기하는지 물으니까 한국말로 한대요. 왜냐고 물으니까 둘 다 한국말 할 수 있고, 밖에서 베트남어로 말하면 사람들이 쳐다보니까 쑥스럽다고 그래요.

아직도 밖에서 아들과 대화할 때 쳐다보는 사람 있어요. 그래도 저는 위축되지 않고 계속 베트남어 해요. 아들과 엄마가 얘기하는 거 이상한 일 아니잖아요. 그 사람들 잘못된 거잖아요. 저는 자랑스러워요. 그러니까 이주민 엄마들도 더 잘하는 말로 양육할 수 있는 분위기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월간옥이네 통권 65호(2022년 11월호)
글‧사진 서효원, 번역 도움 Nguyễn Thị Thúy(한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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