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영화 포스터

▲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영화 포스터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금속 비브라늄을 보유한 국가 '와칸다'는 국왕이자 '블랙 팬서'인 티찰라(채드윅 보즈먼 분)의 죽음 이후 비브라늄을 노리는 수많은 강대국의 위협을 받는다. 여왕 라몬다(안젤라 바셋 분), 타칠라의 여동생이자 천재과학자 슈리(레티티아 라이트 분), 왕실을 수호하는 근위대 '도라 밀라제'의 리더 오코예(다나이 구리라 분)는 와칸다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어느 날, 그들 앞에 숨겨진 해저 세계의 국가이자 또 다른 비브라늄 생산국인 '탈로칸'의 지도자인 네이머(테노치 우에르타 메히아 분)가 나타난다. 네이머는 비브라늄을 노리는 강대국들에 맞서 동맹을 맺을 것을 제안하면서 선제 조건으로 비브라늄 탐사기를 만든 의문의 인물을 데려오길 요구한다. 그리고 동맹을 거부할 시엔 와칸다와 전쟁을 벌이겠다고 선포한다.

2018년 개봉한 <블랙 팬서>는 전 세계에서 14억 달러에 달하는 흥행 성적을 거두며 역대 흥행 순위 14위에 오르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블랙 팬서>는 흥행 성공만이 아니라 영화사, 사회적으로 중요한 순간이기도 하다. 

<블랙 팬서>는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 사상 처음으로 흑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흑인 문화와 사회에 대한 메시지를 탐구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중 처음으로 흑인 배우의 비중이 90%를 넘겼다. 슈퍼히어로 영화로는 처음으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블랙 팬서>를 "지난 10년간 문화적으로 가장 중요한 영화"라고 언급했다.

배우의 죽음, 감독의 결심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영화의 한 장면

▲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영화의 한 장면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2002)는 라이언 쿠글러 감독과 마블 스튜디오가 애초에 의도한 구상과는 거리가 멀다. 2020년 <블랙 팬서>의 후속작의 대본을 완성한 라이언 쿠글러 감독은 채드윅 보즈먼에게 먼저 보냈지만, 얼마 후 그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감독에 따르면 원래 시나리오는 타노스(조슈 브롤린 분)의 핑거 스냅으로 갑자기 사라진 사람들이 다시 돌아온 현상인 '블립'을 경험한 타칠라가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공백을 슬퍼하는 인물로 그려질 예정이었다고 한다.

'블랙 팬서'를 연기하는 주연이 없어진 상태에서 역사상 가장 성공한 영화 중 하나의 속편을 만들어야 했던 라이언 쿠글러 감독과 마블 스튜디오는 배우를 교체하거나 CG로 되살리는 방식을 선택하지 않고 채드윅 보즈먼의 죽음을 영화에서도 그대로 인정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타칠라의 죽음이 주변 사람들과 와칸다에 미치는 '영향'으로 방향을 잡아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의 각본을 완성했다.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타칠라가 의문의 질병으로 사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타칠라의 죽음으로 인해 어머니 라몬다와 여동생 슈리 뿐만 아니라 와칸다 전체가 슬픔에 빠진다. 마블 스튜디오의 로고부터 배우 채드윅 보즈먼에게 경의를 표했던 제작진은 극 중 타칠라의 장례식으로 관객이 함께 슬퍼할 수 있는 추도의 시간을 마련한다. 이것은 단순한 캐릭터가 아닌, 친구이자 배우이며 블랙 파워의 상징이 된 인물을 스크린에서 애도하는 시간이다.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영화의 한 장면

▲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영화의 한 장면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전작 <블랙 팬서>는 L.A 폭동이 일어난 1992년에서 출발해 '온건'의 마틴 루터 킹과 '강경'의 말콤 엑스를 연상케 하는 타칠라와 에릭 킬몽거(마이클 B. 조던 분)의 대립 구도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방법론이 충돌하는 구조는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영화 속 와칸다와 탈로칸의 비브라늄을 노리는 강대국의 모습엔 현실 속 아프리카나 중남미의 자원을 노린 제국주의의 침략의 역사가 투영되어 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제국주의가 행한 약탈을 스크린으로 복원시켜 관객이 다시금 돌아보는 비판의 시간을 마련한 것이다. 

영화는 에릭 킬몽거와 유사한 방식으로 네이머를 통해 세력 또는 국가 간의 관계를 정의하는 대립과 공존이란 두 가지 원칙을 보여주기엔 성공한다. 그러나 슈리가 복수와 용서 사이에서 '고결한' 지도자로 성장하며 새로운 블랙 팬서가 되는 과정은 설득력 있게 그리질 못 한다. 슈리의 고뇌와 선택이 마음에 와닿질 않고 그저 기계적으로 손쉽게 느껴질 따름이다. "식민주의 그 다음을 향한 직관적 질문, 순진한 봉합(씨네21 임수연)"이란 평가처럼 말이다.

주요 등장인물 모두 '여성'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영화의 한 장면

▲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영화의 한 장면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블랙 팬서>가 흑인을 중심에 뒀다면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여성에 초점을 맞춘다. 네이머, '자바라' 부족의 족장 음바쿠(윈스턴 듀크 분), CIA 요원 에버렛 로스(마틴 프리먼 분) 외에 주요 등장인물은 모두 여성이다. 영화는 지도자로 거듭 나는 슈리, 가족과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아만다, 슈리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오코예, 누구보다 타칠라와 와칸다를 사랑하는 나키아(루비타 뇽오 분)로 홀로서기, 모성, 우정, 애국심, 사랑 등 여성의 다양한 면을 묘사한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타칠라의 죽음은 흑인 가부장제의 종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새로운 여성 캐릭터로 10대 '리리 월리엄스(도미니크 손 분)'도 추가시켰다. 그녀는 천재적인 두뇌를 지닌 학생으로 과학이란 관심사를 통해 슈리와 우정을 쌓고 와칸다에서 자신의 재능을 십분 살려 비브라늄을 활용한 무기와 슈트를 제작한다. 그런데 리리 윌리엄스는 감정 묘사(어린 소녀가 전장에서 겁 없이 활약하며 사람까지 죽이는 이유는?)와 서사(슈트를 왜 만들게 되었나? 그녀는 가족이 있나?)부족하다 보니 전개에 기능적으로 활용하는 측면이 강하다. 향후 디즈니+에서 공개 예정인 드라마 <아이언하트>를 위해 억지로 넣은 추측마저 든다.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영화의 한 장면

▲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영화의 한 장면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장단점이 뚜렷하다. 채드윅 보즈먼과 블랙 팬서가 남긴 유산을 존중하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 프랜차이즈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새로운 빌런 캐릭터 네이머도 매력적이고 배우들의 연기력도 뛰어나다. 포용과 다양성이란 주제도 좋다. "최고보다 최선, 영혼까지 짜낸 마블(히어로물)의 현주소(씨네21 송경원)"이란 평가는 참으로 적절하다.

반면에 각본은 아쉬움을 남긴다. 리리 윌리엄스와 에버릿 로스 CIA 요원과 발레티나 알레그라 드 폰테인(줄리아 루이드라이퍼스 분) CIA 국장의 스토리 등 쓸데없는 이야기를 넣으려는 욕심을 부렸다. 영화도 긴데다 전개도 느리고 배우/캐릭터에 대한 추모와 슈퍼히어로 장르의 재미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는 통에 전체적으로 지루하게 느껴진다. "애도로 관통하기엔 2시간 41분이 버겁다(씨네21 이용철)"는 평가가 맞다.

할리우드 초대형 블록버스터임에도 불구하고 액션의 규모도 초라하다. 후반부에 지구 최강국이라 평가받는 와칸다와 그에 맞서는 탈로칸의 정예군이 소박한 규모로 전투를 벌이는 모습을 보노라면 제작비 2억 5천만 달러를 어디에 썼을까 궁금할 정도다. <아쿠아맨>(2018)이 제작비 1억 6천만 달러로 보여준 시각 디자인과 CGI, 전투 규모와 액션 연출을 떠올리면 초라함은 더욱 커진다.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채드윅 보즈먼을 추모하는 것엔 성공했지만, 슈퍼히어로 장르의 재미는 놓치고 말았다.
라이언 쿠글러 레티티아 라이트 루비타 뇽오 다니아 구리라 안젤라 바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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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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