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7화 속 이민호.

<파친코> 7화 속 이민호. ⓒ 애플TV

 
'진도 7.9의 지진이 관동 지역을 덮쳤다. 10만 명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그중에는 일본 자경단에게 무고하게 희생당한 한국인들도 있었다. 살해된 한국인의 수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많은 역사학자는 그 수가 수천에 이를 것으로 본다.'

애플TV 드라마 시리즈 <파친코> 7화는 이처럼 한국 시청자 입장에서 놀라움을 던져주는 자막으로 끝을 맺는다. 1925년 일본 요코하마를 배경으로 일본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대상으로 자행됐던 관동 대학살까지 주요한 소재로 가져오는 세심함이라니. 특히나 해당 에피소드는 이민진 작가의 원작엔 없는 제작진의 오리지널 스토리로 알려졌다.

해당 화는 일본을 덮친 역사적 재난이 한수(이민호) 캐릭터에 미친 영향을 넘어 그 극적인 서사 안에 당시 일본 식민 지배 하 조선인이 처한 비참한 현실을 단적으로 함축하고 있다. 여기에 제주4.3 이전 일본으로 건너갔던 제주인이 많았다는 현실을 반영하듯 한수 및 그 부친(정웅인)에게 제주 사투리 연기를 부여한 것도 제작진의 세심함을 확인시켜주는 디테일이 아닐 수 없었다.

2017년 뉴욕타임즈 '베스트 도서 10선'로 꼽힌 재미교포 이민진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자, 애플TV가 1억 3천만 달러(약 1000억)를 투자한 OTT(Over The Top)용 TV 쇼 <파친코>는 이렇게 4대에 걸친 한인 가족들의 이민사를 그리며 현재가 과거를 경유해 그 과거를 반추하게 만들고 또 그 과거가 현재를 추동하게 만든다.

특히 자이니치 소재의 경우, 수십 년간 한일 양국 창작자들이 이뤄내지 못한 수용적 측면의 확장을 미국 거대 자본을 통해 이뤄냈다는 점에서 감탄할 만하다. 이 중 관동대지진 및 조선인 학살 사건을 선자의 첫째 아들인 노아의 생부 한수(이민호)의 과거와 탁월하게 연결시킨 7화 에피소드는 <파친코> 제작진의 용기어린 결정이라 할 수 있다.

원작에는 없지만 그 자체로 서사적으로나 미학적으로 완결성을 자랑하는 놀라운 에피소드다. 조선인들이 일제강점기 하에 당했던 피해와 고통을 상징적으로 그리는 동시에 그 아픈 역사를 전 세계인들에게 환기시키는 장면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기념비적인 <파친코> 7화와 제주 그리고 제주4.3
 
 '다시 보게되는 제주2022 인문문화아카데미' 첫 번째 강연에 나선 강유정 교수.

'다시 보게되는 제주2022 인문문화아카데미' 첫 번째 강연에 나선 강유정 교수. ⓒ 하성태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한수란 캐릭터 설정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 속 양영희 감독의 모친 강정희 여사가 그러했듯, 수많은 제주도민들이 제주4.3 당시 일본으로 도망쳐 나가야 했다. 그 재일조선인들이 오사카 등지에 정착했고, 지금의 1~2세대의 주축을 이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향후 <파친코>의 한 축이 멜로 드라마라는 점을 감안하면 노아의 아버지 한수는 주요한 캐릭터로 살아남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를 통해 적지 않은 창작 에피소드를 포함시킨 제작진이 재일조선인 구성의 한 축을 담당하는 제주4.3과 한수를 연결시킬 개연성도 예상해 봄직 하다.

'드라마 <파친코>를 통해 제주 다시 이해하기'란 주제로 강연에 나선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문화평론가) 또한 이 같은 한수 캐릭터와 제주와의 연관성에 주목하고 있었다.

지난 10월 29일 마포중앙도서관 6층 세미나홀에서 (사)제주바람이 개최한 '다시 보게되는 제주2022 인문문화아카데미' 첫 번째 강연에 나선 강 교수는 K-콘텐츠 열풍 속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점하는 드라마 <파친코>를 통해 제주와 자이니치를 들여다 봤다.
 
"우리 아버지는 제주에서 귤 농장을 했어. 난 열두살 때 아버지를 따라 오사카로 갔지. 난 제주도를 고향이라 생각하지 않아. 엄마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돌아가셨어." (소설 <파친코> 60p 중 한수의 말)

"한수의 아버지는 번 돈은 모조리 술을 퍼마시는데 쓰고 가족을 제대로 부양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아무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참 대책 없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혼자 힘으로 숲에서 먹을 캐거나 사냥을 하고 좀도둑질까지 하는 아들에게 모질게 굴었다." (소설 <파친코> 61p)

소설 속 제주도 출신인 한수의 아버지는 이외에 별달리 묘사되지 않는다. 앞서 소개한 대로 드라마는 이들 한수와 아버지의 이야기에 7화를 통째로 할애했다. 재일조선인의 뿌리를 그리는 동시에 이를 제주 출신으로 설정한 것은 분명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에 대해 강 교수는 "한수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서 희생 마다하지 않고 아들이 똑똑하고 출세하기 위해서 야쿠자 개가 되도 되는. 매우 전통적인 동양인 한국인 아버지 상에 가깝다"며 "원작은 한량의 이미지에 가깝지만 몸이 아파도 선자를 따뜻하게 돌보는 선자 아버지 덕수와 상반된다"고 설명했다. 또 강 교수는 "<파친코>가 가진 힘은 단순하지 않다"며 이렇게 부연했다.

"주변에 <파친코>에 대해서 삐딱하게 질문하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 미국 소설, 미국 드라마가 아니냐고. 맞다. 애플TV라는 자본도 미국 것이 맞다. 하지만 <파친코>가 다루는 역사는 바로 우리의 역사다. 그것도 사실이다. 우리의 역사를 소재로 미국인들이 만든 것이다. 그래서 더 우리가 비상하게 관심을 갖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 보자. 우리의 역사를 이렇게 세게 다룬 작품이 있느냐고. 위안부 피해자 문제, 강제 징용 문제, 관동대지진 내 한국인 학살 문제 등등. 이런 소재로 전 세계인들이 볼 수 있는 OTT 드라마를 만들었던 적은 없다."


또 강 교수는 "외교 마찰 등을 걱정하면서 이런 소재를 만들지 못했다"며 "앞으로 우리가 세계인이 주목하는 소프트파워를 잘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왕 K-드라마가 잘 나가고 있으니 이런 드라마가 많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파친코> 시즌2, 제주4.3 다룰까

드라마 밖으로 나와 볼까. <파친코> 7화에서 정운인과 이민호가 연기한 제주 출신 부자의 실제 배경은 어땠을까. 당시 오사카로 이주한 조선인 사회 구성원의 절반가량이 제주도 출신이었다. 이들 제주인들은 일본의 산업화 과정에서 대량의 노동력이 필요해지자, 1910년대부터 일자리를 찾아 이주하기 시작했다.

1922년 제주와 오사카를 오가는 여객선 군대환이 취항한 이후에는 더 많은 제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들은 오사카 이쿠노구의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면서 힘든 노동을 감내했고, 일본인들의 차별과 천대, 그리고 관동대지진을 비롯한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드라마 <파친코>는 수많은 전문가들을 초빙, 극 전반에 걸쳐 세심 고증을 받았다. 제주어도 마찬가지다. 제주 출신 연극인 변종수씨는 배우 이민호와 정웅인의 제주어 지도를 맡아 제주어 대사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고, 제주인들 에피소드에도 도움을 줬다.

이날 강 교수의 강연이 끝난 후 무대에 오른 변종수씨는 드라마 제작 당시 경험을 들려주기도 했다. 그렇다면 <파친코> 시즌2에도 변씨는 참여할 수 있을까. 앞서 언급한 대로, 이에 대한 결과는 한창 각본 작업에 돌입한 제작진이 제주의 역사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느냐에 달려 있을 것 같다. 

 
 '다시 보게되는 제주2022 인문문화아카데미' 관련 홍보물.

'다시 보게되는 제주2022 인문문화아카데미' 관련 홍보물. ⓒ 제주바람

 
한편, '다시 보게되는 제주2022 인문문화아카데미'는 향후 6강까지 이어진다. 강유정 교수에 이어 김헌 신화연구가(서울대 교수)가 제2강을 맡고, 4·3기념사업회와 공동주관하는 제주4.3 관련 3강 특강에 이어, 한국인 문경수 과학탐험가 제4강을, 안병옥 이사장(한국환경공단)이 5강을 맡아 다채로운 주제로 제주를 돌아볼 예정이다.

제6강은 앞의 1~5회 강연을 바탕으로 새롭게 구성한 2박3일 간의 제주 현지 문화기행으로 진행되며 소정의 참가비를 내야 한다. 제1강부터 제5강까지는 참가비가 무료인 실내 특강이다. 3회 이상 강연에 참석한 사람에게는 수료증을, 전회 참석한 사람에게는 제주 기념품을 증정한다.
파친코 강유정 제주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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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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