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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동네 빵집에 들러 빵을 사 왔다. 지갑에서 잠자고 있던 5000원짜리 빵집 상품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거기서만 살 수 있는 소금 빵과 무화과 크림치즈빵, 올리브 치아바타와 호밀빵을 골랐다. 계산을 하며 상품권을 냈더니, 사장님은 적립금이 또 그만큼 쌓였다며 상품권을 되돌려줬다. 

'벌써?' 속으로 의아했지만 상품권을 되돌려 받는 기분은 어쨌든 좋았다. 빵값으로 1만4000원 정도가 나왔는데, 상품권으로 5000원을 내고, 다시 5000원짜리 상품권을 받았으니 흡사 4000원에 빵을 산 기분. 그런데 이렇게 퍼주셔도 되는 걸까. "감사합니다" 인사하는 목소리에 조금 더 진심을 담아 봤다.

그러고 보니 카운터에서 계산을 돕던 아르바이트생이 보이지 않았다. 운영이 힘든 건 아닐까. 다시 오라고 적립금이 채 쌓이지 않았는데 상품권을 주신 건 아닐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뒤따라왔다. 이렇게 서비스를 많이 주어도 가게 세와 인건비, 재료비 등 유지 비용을 넘는 수익이 나는지 궁금해졌다.

작은 가게의 사장인 적이 있었습니다
 
마들렌.
 마들렌.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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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런 작은 가게를 운영해본 경험이 있어서 남일 같지 않기 때문이다. 단가가 높지 않은데 손은 많이 가는 빵을 파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다. 아무리 많이 팔려도 큰 수익을 내기 어렵고, 거기서 월세와 재료비를 빼면 실수익은 생각만큼 크지 않다. 직접 만드는 음식이라 맛과 품질을 동일하게 유지하는 것도 힘들다. 그러면서 새로운 메뉴까지 개발해야 하니 이래저래 어려움의 연속일 테다.

도로변에 있는 이 빵집의 이름은 '침착하고 느린 손'. 그 안쪽 골목에서 '느린 산책'이라는 이름으로 디저트 가게를 운영했던 적이 있다. 4년 전 일이다. 가게를 해보겠다고 호기롭게 문을 열었지만 혼자 매대를 채우는 일은 얼마나 벅차던지. 젖 먹던 힘까지 다 짜내어 매대를 채워도 그게 팔리는 일은 또 별개의 것이라 상심이 컸다.

설령 그날 만든 디저트가 다 팔려도 실 수익이 얼마 되지 않았다. 이런 상태로는 가게 세도 간신히 낼까 말까였다. 그걸 깨닫기까지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고 판매보다 베이킹 수업에 중점을 두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수업을 하면서도 예약주문을 받아 과자나 쿠키, 케이크를 판매했다. 주문량이 많지 않았는데도 혼자 모든 걸 감당해야 해서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당시 세 살배기 아이를 키우고 있어 일할 수 있는 시간도 한정적이었고.

내 아이가 먹는 간식이기에 재료만은 좋은 것을 쓰자고 마음먹었고 그것만은 끝까지 고수했다. 실제 가게에서 만들어 온 마들렌과 피낭시에, 타르트는 날마다 아이 입으로 들어갔으니까. 그러니 소량 판매에 고급 재료를 쓰고, 일할 시간은 한정적인데 일손은 달랑 하나, 여러모로 수익 구조가 좋지 않았다. 간신히 월세를 내는 기간이 많았다.

즐거운 마음으로 건강하고 맛있는 제품을 선 보이고 싶었지만 현실 앞에서 마음의 힘은 약해져 갔다. 열심히 일해서 수익이 나는가 싶으면 월세로 고스란히 나갔으니. 열정만으로는 가게를 유지할 수 없다는 걸 배웠다. 그러니까 문을 열 때의 첫 마음을 간직하는 게 제일 어려웠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기쁨을 담아 디저트를 만들고 그걸로 손님들에게 다정한 위로를 건네고 싶다는 마음. 힘들수록 그 마음이 흔들렸다. 수익이 충분히 따라오지 않자 디저트를 좋아하던 마음도 시들시들해졌다. 그런데도 잘 버텼다면 노하우가 쌓이고 가게 운영도 괜찮아졌을까. 지쳐가던 마음에 코로나라는 재난이 불을 지폈고, 가게 자리의 계약이 만료되면서 문을 닫고 말았다.

사장님들을 향한 존경의 마음이 자라고
 
느린산책으로 향하던 길목의 작은 가게들
▲ 동네 가게들 느린산책으로 향하던 길목의 작은 가게들
ⓒ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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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로 출근하는 날이 쌓이는 만큼 골목을 채우고 있는 다른 상점 사장님들을 향한 존경의 마음이 자랐다. 김밥집, 칼국숫집, 문방구, 그림책방과 독립서점, 우리 가게 옆에 있던 슈퍼와 맞은편 꽃집까지. 짧으면 4년, 길게는 몇십 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장님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게 됐다.

작은 공간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걸 책임져야 하며 어떤 마음과 싸워야 하는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일하고 싶어 가게를 열었지만 가게야 말로 성실하게 문을 열고 닫아야 지속할 수 있는 일이다. 예측 불가한 인생에서 가만히 한 자리를 지키는 일은 상상보다 훨씬 어렵다. 누구도 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원칙을 지키고, 자기만의 규칙을 만들면서 개선과 발전을 꾸준히 도모할 수 있어야 한다.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건 단순히 상품을 관리하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가게를 오가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알게 모르게 삶의 일부를 공유하면서 공간은 유지된다. 

동네의 작은 가게에서 사장님이 내 얼굴이나 이름을 기억해주고 때로는 지난번에 사간 물건까지 알아채줘 감동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작은 가게를 해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내 공간이 소중한 만큼 내 가게에 와주는 한 명 한 명이 고맙고 귀했다. 단순히 물건을 살 손님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공유해주는 사람, 내 진심을 알아채 주는 사람으로서 한 명 한 명이 반가웠다.

5000원짜리 상품권을 내며 계산하는 내게 다시 상품권을 돌려주는 사장님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원래도 구입액의 10%를 적립해주는 곳이니 당장의 수익보다 손님들이 기분 좋게 다시 찾는 빵집이 되길 바라는 마음일 거라고. '침착하고 느린 손'이라는 이름에서도 천천히 공들여 빵을 만들겠다는 사장님의 의도가 읽히니까. 이름처럼 차분하게 말을 건네는 사장님에게서 빵과 함께 단단하고 겸손한 마음을 받아 온 것 같다.

서두르지 않고 진실되게 자신의 일과 자리를 지키는 마음, 다시 돌아올 것을 믿으며 더 크게 내어주는 마음을. 그 넉넉함을 감사히 받으며 조만간 다시 와야겠다고 다짐했다. 한동안 집에서 더 가깝다는 이유로 프랜차이즈 빵집으로 갔던 게 미안해졌다. 

동네 빵집이 오래오래 잘 되면 좋겠습니다
 
좋아하는 소금 빵, 무화과 크림치즈 빵, 치아바타는 동네 빵집에서만 살 수 있다.
▲ 동네 빵집의 빵 좋아하는 소금 빵, 무화과 크림치즈 빵, 치아바타는 동네 빵집에서만 살 수 있다.
ⓒ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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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빵집에는 내가 좋아하는 소금 빵도 없고 치아바타도 없고 무화과 빵도 없다. 빵에 어떤 마음이 담겼는지 알 수 없고 침착하고 느린 손으로 매일 정성 들여 빵을 만드는 사람도 만날 수 없다.

기계화된 시스템이 많은 공정을 대체하고 빵이 만들어낸 이익은 빵을 만드는데 수고한 사람들보다 기업주의 주머니로 더 많이 돌아가는 곳. 어떤 재료로, 어떤 마음으로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채, 그저 물건으로서 빵을 사고팔 수밖에 없는 곳. 그곳에서 빵에 온기가 스며들 새가 있을까. 

동네 빵집에서는 누군가의 마음과 삶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고, 그런 관계 맺음을 통해 빵이 오간다. 빵 속에 마음이 담긴다. 그런 동네 빵집이 오래오래 잘 되면 좋겠다. 

자신이 하는 일에 진실하고자 '침착하고 느리게' 마음을 담아 만든 빵을 산다. 빵을 매개로 고마움과 응원의 마음이 교차하는 거래가 요즘 세상에도 가능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태그:#동네빵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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