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진보당 당원 청년들이 16일 오전 '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을 찾아 추모하는 모습. 지나가던 시민들도 묵념하고 메모지를 작성하며 고인을 추모했다.
 진보당 당원 청년들이 16일 오전 "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을 찾아 추모하는 모습. 지나가던 시민들도 묵념하고 메모지를 작성하며 고인을 추모했다.
ⓒ 공동취재사진

관련사진보기

  
2016년 강남역 여성살인사건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임당할 수 있는 현실을 깨닫게 했다면, 이번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은 젠더폭력의 가해자들이 '괴물'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 존재하며 여성의 안전을 끊임없이 위협한다는 사실을 실감케 합니다.

가해자인 전아무개씨(31)는 피해자의 서울교통공사 입사 동기였습니다. 실제로 여성의 안전을 위협하는 이들 중에는 '낯선 흉악범'이 아니라, 그와 매우 친밀한 관계에 있었거나, 평소 일터나 공동체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사람들도 꽤 많습니다. 특히나 스토킹의 경우 가해자의 상당수가 면식범입니다. 

'운이 없었다'라며 그저 안타까워만 할 일이 아닙니다. 스토킹이 '살인의 전조'라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피해 역무원을 살릴 수 있는 기회는 충분히, 최소 세 번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사기관·법원·회사, 주변의 그 누구도 그를 지켜주지는 못했습니다.

피해자는 왜 보호받지 못했나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피의자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피의자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첫 번째 기회는 지난해 10월에 있었습니다. '불법촬영 유포' 협박을 받은 피해자는 서울 서부경찰서에 가해자 전씨를 성폭력처벌법 위반(촬영물등이용협박)등으로 고소합니다. 이때 서부경찰서는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서울서부지법이 이를 "도주와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합니다. 

두 번째 기회는 지난 1월에 있었습니다. 피해자는 스토킹처벌벌 위반 혐의 등으로 전씨를 추가 고소합니다. 경찰은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이번엔 구속영장 신청을 하지 않고 넘어갑니다. 검찰 역시 가해자인 전씨에게 무려 징역 9년의 중형을 구형했음에도, 법원에 구속영장 청구를 청구하진 않았습니다.

세 번째 기회는 지난 9월 13일, 바로 피해자가 사망한 날이었습니다. 가해자인 전씨는 불법촬영 혐의로 지난달 10월 직위해제 됐지만, 정작 징계 조치가 확정되지 않아 내부 인트라넷에 접속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인트라넷을 통해 피해자의 업무일정과 근무지를 파악하고 살인을 계획할 수 있었습니다(관련 기사: 신당역 가해자, 교통공사 내부망 접속 가능... 피해자 노출됐다 http://omn.kr/20q0r ).

불법촬영과 유포협박, 지속적인 스토킹까지 저지른 전씨가 구속은커녕 내부 인트라넷을 들여다보고 후속 범죄를 준비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경악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와 통화한 서혜진 변호사(여성가족부 여성폭력방지위원)는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은 책임을 물어야 할 사안이라고 지적합니다. 서 변호사는 "2007년부터 법원이 구속사유를 심사함에 있어 범죄의 중대성, 재범 위해성, 피해자 및 참고인에 대한 위해 우려 등을 고려해야 한다. 이건 영장전담 판사가 판단할 수 있는데, (법원 측은) '중대한 범죄'라는 게 누가 피 흘리고 다쳐야만 되는 줄 아는 것 같다"라고 꼬집었습니다.

서 변호사는 "다면적이고 입체적으로 범죄 특성을 살폈어야 했다. 불법촬영물로 협박하는 연락을 하고, 만남을 강요한 사건 아닌가"라며 "얼마 전엔, 같은 아파트에 사는 10대 여자 청소년을 납치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40대 남성의 영장도 기각된 적이 있다. (실제) 피해자가 있는 상황이라면 피해자의 안전과 보호까지 고려해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나아가 그는 '2차 고소'때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은 경찰뿐만 아니라 검찰 역시 안일했다고 지적합니다. 9년의 중형을 선고할 범죄였으면, 검찰이 판단해서 영장을 청구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는 겁니다. 

서울교통공사 측은 "판결이 나면 징계하려고 했다"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지난해 10월에 직위해제를 했음에도 이후 11개월 가까이, 근 1년이 다 돼가도록 징계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문제입니다. 전씨가 가벼운 비위행위가 아닌 '불법촬영'이라는 범죄로 수사를 받고 있다는 걸 고려했다면, 직원 보호 차원에서라도 징계는 서둘러서 이뤄져야 했습니다. 

젠더 폭력의 해법은 '성차별적 구조'의 개선이다
 
16일 오전 서울 중구 신당역 여성화장실 입구에 스토킹 살인사건의 희생자인 여성 역무원을 추모하는 국화꽃과 시민들이 작성해 붙인 메모가 붙어 있다.
 16일 오전 서울 중구 신당역 여성화장실 입구에 스토킹 살인사건의 희생자인 여성 역무원을 추모하는 국화꽃과 시민들이 작성해 붙인 메모가 붙어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정부와 국회는 부랴부랴 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법무부는 스토킹 범죄의 '반의사 불벌죄(피해자가 처벌 않을 시 기소할 수 없는 범죄)'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국회는 스토킹 피해자 보호법이 발의된 지 150일이 지나서야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관련 법 제·개정은 물론 꼭 필요한 일이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순 없습니다. 이러한 범죄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살펴야 합니다.

불법 촬영과 스토킹 범죄는 대표적인 '젠더폭력' 중 하나이고, 이것은 "성차별적 의식이 많이 반영되며, 여성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고 지배하는 잘못된 통념이 작동하는 범죄"(9월 16일 권인숙 민주당 의원·여가위원장 발언)입니다. 즉, 젠더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사회의 성차별적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여성을 억압·착취하는 행위들이 용인돼올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성차별적 구조가 강고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불법 촬영과 스토킹에 고통받는 여성들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것이 '중대 범죄'로 규정된 지는 채 5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어디 이것뿐이겠습니까? 남성 중심 사회의 성차별적 구조가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관습화하고 정당화했고, 그 안에서 '젠더폭력 가해자'가 길러져 왔습니다. 

남성중심적인, 동시에 여성착취적인 관성은 너무나 강력합니다. 법원만 봐도 그렇습니다.  <시사저널>이 지난 5월 스토킹처벌법 관련 판결문(1심)을 분석한 결과, 스토킹 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징역형이 선고된 경우는 56건 중 9건에 불과했습니다. 징역 2년 이상이 내려진 경우는 단 2건이었습니다.

심지어 6개월간 이혼한 부인의 주거지와 직장을 90여회 찾아간 남성에 대해서도 결론은 '집행유예'였다고 합니다. 아직 대법원은 스토킹 범죄에 대해선 양형기준을 세우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는 법의 개정만큼이나, 그걸 다루는 '사람'의 인식도 바뀌어야만 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거꾸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2021년 5월 당시 한 언론 인터뷰에서 '여성이 안전하지 않은 걷기 환경'을 언급한 조남주 작가의 발언에 대해 "망상에 가까운 피해의식"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지난 1월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는 "여자라서 죽었다" 또는 '교제살인' '데이트폭력' 등 용어를 거론하며 "여성계가 단순히 감정적인 면만 계속 부각한다"는 취지로 지적하기도 했죠(관련 기사: "20대 여성, 어젠다 형성 뒤처지고 구호만" http://omn.kr/1wz3l ).

그의 언행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과 더불어 "안전하게 살고 싶다"라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사소하게 만들고 주변화하는, 동시에 젠더폭력을 한 개인의 일탈적 행위로만 치부하게 만드는 '백래시(변화에 대한 반발)'를 불러오게 됩니다.

대선까지만 하더라도 이 전 대표와 함께하던 윤 대통령은 선거 과정에서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내걸고,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라고 발언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도 '성차별'이 전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한 정부·여당의 행보는 계속 됩니다.

일례로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인하대 성폭력 사망 사건이 "여성에 대한 폭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가 뒤늦게 발언을 정정했고, 이번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에 대해서도 '여성혐오 범죄는 아니다'라고 해 논란이 됐습니다. 온 세상이 젠더폭력 피해자 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도, 정작 정부는 피해자 보호의 주무부처가 없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서글픈 상황입니다.

누군가는 '성범죄는 성차별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합니다. 누군가는 '이제 여성을 위한 정책은 그만해야 된다'고 말합니다. 그 와중에 성평등한 사회를 위해 싸우던 이들이 깨부수려고 했던 '관성'은, 언제 그랬냐는 듯 아주 자연스럽게 다시 작동하게 될 것입니다.
  
여성의 안전 문제를 '망상'이나 '피해의식'으로 치부하지 않는 사회였다면, 남성의 불법촬영과 스토킹을 엄중한 문제로 다뤘다면. 분명 피해자는 살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이번 사건은 결코 단순한 '사고'가 아닙니다. 젠더폭력 방지와 여성 안전에 대해선 수 천 번, 수 만 번 문제제기하고 논의해도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댓글8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