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대작전>을 연출한 문현성 감독.

영화 <서울대작전>을 연출한 문현성 감독. ⓒ 넷플릭스


 
연출 데뷔작인 <코리아>, 그리고 두 번째 영화 <임금님의 사건 수첩>을 두고 한 감독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남북 탁구 단일팀 실화를 감동적으로 풀어낸 전자와 사극에 코미디를 접목한 후자는 어쩌면 문현성 감독의 넓은 스펙트럼을 상징하는 사례일지도 모른다. 지난 26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영화 <서울대작전> 또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힙합과 시대극, 코미디가 어우러진 결과물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을 전후로 벌어진 VIP 비자금 추적 활극으로 정의해 볼 수 있는 <서울대작전>의 연출자 문현성 감독을 29일 온라인으로 만날 수 있었다.
 
균형 잡기
 
그 탄생 배경을 들여다보면 <서울대작전>은 일종의 미국 문화를 동경했던 청소년들과 민주화 운동 이후 독재 정권에 꾸준히 저항해 온 평범한 시민들, 그리고 힙합이라는 음악 장르가 지닌 특징이 일종의 원류였다. 1981년생인 문현성 감독은 자타 공인 '미국빠'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청소년시기 미국 음악에 심취했다고 한다. 
 
"나름 요란한 10대를 보냈다. 힙합에도 빠져 있었고, 여러 음악을 들었다. 우리 어머니게 절 보고 '미국병'이 들었다고 하실 정도였다. <서울대작전> 속 동욱(유아인)처럼 차나 운전에 빠진 아이는 아니었지만, 미국 문화를 너무 좋아했던 아이였다. 마침 우리 영화 기획자도 비슷한 청소년기를 보냈더라. 우리가 생각한 다양함을 영화에 다 담진 못했지만, 보편성과 오락성 사이에서 여러 시도를 해보려 했다."
 
VIP 비자금 운반책으로 발탁된 '상계동 빵꾸팸' 팀원들이 결국 독재자인 VIP의 뒤통수를 친다는 통쾌한 설정을 두고 일각에선 너무 나간 것 아닌지, 다소 산만한 구성 같다는 평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찬영 작가의 원안을 토대로 초고가 나온 게 4년 전 무렵, 이후 각색과 기획 개발 과정을 거쳐 지금의 혼종 활극이 탄생했다. 문현성 감독은 "힙합 자체가 여러 요소를  하나의 칵테일처럼 섞어 놓은 것"이라며 "단순히 음악으로써 힙합이 아닌 문화로써 힙합 이야기를 만들면 재밌을 것 같았다"라며 말을 이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서울대작전> 스틸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서울대작전> 스틸 ⓒ Netflix


 
"1988년, 올드카, 서울올림픽, 그리고 당시 여러 정치적 배경이 담긴 이 영화가 엉뚱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 입장에선 그 자체가 힙합처럼 느껴졌다. 1970, 1980년대 미국 힙합이 탄생한 배경도 기존의 여러 재료와 요인을 토대로 창작자들이 하고 싶던 이야기를 만든 거잖나. 영화에 담긴 여러 요소 사이에 개연성을 찾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그 자체가 하나의 팝 아트같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겠다 기대했다.
 
여러 사람이 각색 과정에 참여했는데 마치 믹스 앤 매치(Mix & Match) 하듯 주고받았다. 물론 복잡한 과정이었지만 그래서 서로 더 능동적으로 아이디어를 냈던 것 같다. 제 입장에서 그런 아이디어 사이에서 균형감을 잡는 게 어려웠다. 약 3년의 과정을 거쳐 지금의 결과물이 나왔다. 이게 실화도 아니고 정극도 아니다. 기존에 1980년대를 다룬 한국영화와 확실히 다른 노선이다. 일반 시청자분들이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많이 걱정할 수밖에 없다. 정답은 없지만 조금씩 수정하면서 음악, 이야기, 오락성의 비율을 수정해가며 작업하는 게 꽤 까다로웠다."

 
청춘의 다양한 생각을 담아내다
 
주인공들의 활동 근거지가 당시 철거 대상이던 상계동이라는 점, VIP가 독재자 전두환을 상징하는 요소가 곳곳에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완전히 현실에서 벗어난 오락 영화만은 아니라는 게 드러난다. 얼핏 올림픽을 핑계로 삶의 위기에 내몰린 사람들 이야기를 다룬 김동원 감독의 다큐멘터리 <상계동 올림픽>이 떠오른다. 문현성 감독 역시 제작 과정에서 주요하게 참고했다고 말했다.
 
"<상계동 올림픽>뿐 아니라 1970, 1980년대 미국 뉴욕 뒷골목을 담은 여러 다큐를 꽤 봤다. 제가 1988년 당시 상계동엘 직접 가보진 못했지만, 나름 소소하게 당시 시대상을 곳곳에 숨겨놨다. 물론 (VIP 비자금 수사를 지휘하는) 안 검사(오정세)나 (비자금 관리 책임자) 강 회장(문소리) 등은 완전 허구지. 가급적 전형적이지 않은 조합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었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그 인물의 말과 행동을 통해 명확히 드러나는 식으로 말이다.
 
저도 1988년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것 같은데 꼬마였기에 그때를 생생하게 기억하진 못했다. 그래서 다른 선배들처럼 1980년대 어두운 과거를 분명하게 다룰 순 없었다. 제가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세대가 아니기에 1988년을 고민하면서 어떤 때였는지 생각해 봤다. 명암이 아주 격렬하게 대립했고, 공존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시대의 암울함도 있었지만, 한국 사람들이 꿈꿔 온 희망에 부풀었던 시대였다. 그래서 빵꾸팸 같은 유별난 아이들도 서울 어딘가에 있지 않았을지 상상했다. 제 학창시절이 그랬듯이."

  
 영화 <서울대작전>을 연출한 문현성 감독.

영화 <서울대작전>을 연출한 문현성 감독. ⓒ 넷플릭스


 
이런 시대 정신과 더불어 문현성 감독은 힙합 정신을 강조했다. "기성세대에 대한 생각이나 감정을 물리적으로 표출하는 게 아닌 예술적이고, 문화적인 무언가를 실어 표현하는 흐름이 힙합 정신 아닐까 싶다"라며 그는 "그래서 <서울대작전> 속 주인공들이 소위 잘 나가는 유능한 젊은이들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는 친구들이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런 메시지 측면과 별개로 <서울대작전>은 현재 보기 힘든 올드카와 형형색색의 소품들, 그리고 1980년 느낌 물씬 나는 여러 힙합 음악을 만날 수 있다. 말 그대로 다채로운 문화적 요소들이 가득하다. 문현성 감독은 미술팀과 소품팀, 강네네 음악 감독과 DJ 소울스케이프 슈퍼바이저 등이 수고한 결과라고 공을 돌렸다.
 
"이미 대한민국은 20세기 시대극도 찍기 어려운 환경이다. 1980년대를 구현하기 어려운데 그만큼 소품과 세트, CG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우리 영화도 원하는 공간과 배경을 얻기까지 굉장히 긴 시간을 투자했다. 특히 올드카는 3, 4개월 간 전국을 뒤졌는데 못 구하는 차도 있었고, 겨우 구해도 촬영하기 어려운 상태인 경우도 있었다. 촬영 내내 '제발 시동이 꺼지지 않길' 간절히 빌었다. 노이로제 수준이었지. 안 검사의 비밀 창고에 가득한 외제 슈퍼카들 장면이 있는데 원래는 좀 더 많은 물량을 보여주고 싶었다. 쉬운 차가 하나도 없었는데 가장 구하기 어려웠던 건 갈치(송민호)가 타고 다니는 브리사였다.
 
음악에선 힙합을 공격적으로 쓰고 싶었다. 하지만 뮤직비디오가 아니니까 정해진 시간에 흐름에 맞는 곡을 넣어야 했고, 빵꾸팸들이 듣는 믹스 테이프에 다양한 스타일의 노래를 담고 싶었다. 강네네 음악 감독님이 훌륭하게 해주셨다. 엄청 부담이셨을 것이다. 원래 마르셨는데 작업 후 살이 더 빠지셨더라."
 

문현성 감독은 "어떤 특별한 역사의식이 있어서 이 작품을 만들게 된 것 같지 않다"라며 영화에 담긴 문화적 측면을 새삼 강조했다. "다양한 문화적 혼을 1988년 서울에 담아내는 게 그저 발칙한 상상에서 끝날 수도 있었는데, 배우분들과 스태프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라고 그는 감사의 마음을 인터뷰 말미에 전했다.
 
<서울대작전>의 바이브를 한참 느끼고 난 뒤 문현성 감독은 멜로 드라마를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사실 꽤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프로젝트다. 또 어떤 상상력을 발휘해낼지 기대해봐도 좋겠다.  
서울대작전 문현성 유아인 문소리 오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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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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