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회 EBS 국제다큐영화제가 8월 22일부터 28일까지 열립니다. '다큐의 푸른 꿈을 찾아서'라는 슬로건으로 찾아온 이번 영화제에서는 총 24개국 63개의 작품이 소개됩니다. [편집자말]
* 주의! 이 글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시간의 조란학> 스틸컷 다큐멘터리 <시간의 조란학> 스틸컷

▲ 다큐멘터리 <시간의 조란학> 스틸컷 다큐멘터리 <시간의 조란학> 스틸컷 ⓒ EBS국제다큐영화제


01.

조란학(Oology)이라는 학문이 있다. 조류의 알을 수집하고 연구하는 학문이다. 독일 출생의 막스 쇤베터(Max Schönwetter) 박사는 조란학의 체계를 설립하는 일에 한평생을 바친 인물이다. 핌 즈비어르 감독은 이 작품 <시간의 조란학>(O, Collecting Eggs Despite the times)를 통해 그의 일생을 들여다봄과 동시에 아직까지도 기본 지침서로 활용되고 있는 그의 저서 '조란학 안내서'가 어떻게 세상에 나올 수 있었는지에 대해 조명하고자 한다.

작품은 이미 세상을 떠난 고인이 생전에 주고받았던 서신의 배치와 시대적 흐름의 순서에 따라 진행된다. 어린 시절의 그가 새알이라는 작은 대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의 이야기를 빠르게 훑어나간다.

02.

쇤베터 박사가 새의 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계기는 생각보다 평범하다. 어린 호기심에 바닷가에서 조개 화석을 모으던 것이 시작이었다. 어느 날 채집 중에 납작한 돌멩이를 찾게 되었는데 알고 봤더니 그건 자고새 알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조각이었다. 그 조각에 붙어있던 작은 핏줄이 어렸던 그의 흥미를 이끌어냈다고 한다. 이후 박물관에 전시된 알 컬렉션은 그때의 작은 흥미가 삶의 열정이 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작은 상자에 하나 둘 모으기 시작한 새알은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노후에는 커다란 캐비닛 일곱 개를 채울 만큼 늘어나게 되었는데, 그 수가 무려 4천여 종 2만 여개에 달했다.

작품 속 그의 말에 따르면, 새알의 껍질에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비밀이 숨겨져 있으며 철저히 조사하면 할수록 그 미스터리가 풀린다고 한다. 쇤베터 박사 본인은 수많은 알을 수집하고 서로 비교하는데 30년이라는 시간을 쏟은 후에야 그 비밀에 조금씩 다가설 수 있었다고 한다. 공휴일과 일요일도 없었다. 희귀한 알을 수집하기 위해 거금을 들여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것은 물론, 온갖 컬렉션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국내외 도서관을 찾아다녀야만 했다. 물론 스스로의 의지로 한 일이었다. 말년에 이루고자 했던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다.
 
다큐멘터리 <시간의 조란학> 스틸컷 다큐멘터리 <시간의 조란학> 스틸컷

▲ 다큐멘터리 <시간의 조란학> 스틸컷 다큐멘터리 <시간의 조란학> 스틸컷 ⓒ EBS 국제다큐영화제


03.

어려움이 없지는 않았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연 조류 보호법이 점차 엄격해지고 있음이 피부로 와닿았고, 이에 찬성하는 동물 보호 협회의 항의와 감시도 더 늘어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가 제작된 현재에는 야생 동물의 보호와 채집 및 수렵에 대한 엄격한 관리, 규제가 당연한 일이지만 쇤베터 박사가 활동하던 시기(1800년대 후반 - 1900년대 초반)에는 그렇지 않았다.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조란학이라는 하나의 학문이 처음 태동하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는 그런 규제와 항의, 시선에 어려움을 겪게 된 것도 사실이었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독일을 중심으로 한 2차 세계 대전(1939-1945)이 유럽을 중심으로 번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전쟁은 조란학이라는, 이념의 다툼과는 조금도 관계없는 영역의 학문에까지 어두운 그림자를 뻗어 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전쟁 중 예고도 없이 이어지는 공습과 폭격을 피해 오랜 시간 공을 들여온 컬렉션을 옮기고 보호하는 일이 시급했다.

국지전을 피해 숙소를 옮겨가며 작업을 어렵게 이어가기는 했으나 이때의 작업은 순수한 기쁨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의무감에 가까운 마음이었기에 불안이 훨씬 더 컸다고 박사는 회고한다. 주변에서는 다른 일을 구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냐는 제안도 종종 해왔다. 내일을 알 수 없는 이 상황 속에서 새알의 크기를 재고 모양을 관찰하는, 그 컬렉션을 애지중지하며 옮기는 모습이 쉽게 이해되지는 않았을 터다.

04.

1940년 12월 13일, 폰 복스베르거 박사(Dr. Leo von Boxberger)에게 쓴 편지에 따르면 쇤베터 박사는 말년에 자신이 이루고 싶은 유일한 목표로 조란학 안내서를 집필하는 일이라고 정확히 밝히고 있다. 수천 종에 달하는 새알의 치수와 무게, 학명과 같은 기본적인 내용은 물론 종과 과에 대한 정보도 빠짐없이 기입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도표를 통해 새알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점무늬를 설명하고 각각의 명칭을 정하는 일이다. 스스로 구분을 하고 나름의 명칭을 부여해 말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과 의미를 함께 사용하고 나누기 위해서는 조금 더 확실히 정의하고 통일감 있게 써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어려운 조건 속에서 자신의 마지막 꿈을 이루기 위해 '조란학 안내서'를 써내는 동안 그를 보필하며 지켜오던 아내의 건강이 심각하게 나빠지기 시작하며 그의 현실을 더욱 옥죄어온다. 실제로 박사는 조란학을 연구하기 시작한 이래로 처음 연구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현실 속 사랑하는 대상이 쇠약해지는 모습을 보며 걱정이 늘어나게 된 것은 물론 전쟁이라는 사회적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일어난 불행이었으니 말이다. 이때는 경제적으로도 큰 어려움에 놓이게 된 것 같다.

"부끄럽지만 도움을 요청하고 싶습니다. 상황이 너무나도 열악합니다. 아시겠지만 제가 집을 잃게 되면 컬렉션을 어딘가에 방치할 수밖에 없습니다. 집을 지키려면 월세 30라이히스마르크를 꾸어야만 합니다. 부디 도와주실 수 있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작품에 따르면, 쇤베터 박사는 자신의 꿈이 세상에 나오는 것을 지켜보지도 못한 채 1961년 눈을 감는다. 그의 '조란학 안내서'는 사후에야 출판될 수 있었으며 조란학계에서는 아직까지도 기본 지침서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의 컬렉션에 있던 약 2만 개의 새알은 캐비닛 7개에 그대로 보관되어 할레비텐베르크 마틴 루터 대학 자연사 컬렉션의 일부가 되었으며, 이제 세계적으로 자연 상태의 새알을 채집하는 일은 금지되었다.
 
다큐멘터리 <시간의 조란학> 스틸컷 다큐멘터리 <시간의 조란학> 스틸컷

▲ 다큐멘터리 <시간의 조란학> 스틸컷 다큐멘터리 <시간의 조란학> 스틸컷 ⓒ EBS국제다큐영화제


05.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조란학이라는 학문과 그 업적을 이룩한 이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치고 전쟁의 모습을 담은 장면들이 생각보다 꽤 길게 이어진다는 데 있다. 단순히 전쟁으로 인해 학자들의 삶이 무너지고 많은 컬렉션의 일부가 파괴되었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아닌 듯 보인다. 되려 그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의 학문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가고자 하는 이들의 뜻이 살아있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닐까?

그 유지가 누군가에 의해 이어지는 한, 모든 생명체가 생존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는 이상, 다른 종을 이해하고자 하는 학문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 작품이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쇤베터 박사가 일생을 헌신한 조란학이라는 학문의 모습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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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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