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최수연을 연기한 배우 하윤경.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최수연을 연기한 배우 하윤경. ⓒ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방영 초반부터 화제가 되기 시작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두고 주인공 우영우보다 그 주변 캐릭터들이 더 판타지 같다는 평이 나오기도 했다.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지닌 이가 대형 로펌 변호사가 돼 활약하는 데에 시니어 변호사 정명석(강기영), 직원 이준호(강태오) 등 동료들의 배려와 이해가 마중물처럼 작용했기 때문이다.
 
편견과 혐오가 종종 득세하는 현실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인물들이 정명석, 이준호라면 우영우의 로스쿨 동기이자 주니어 변호사 최수연은 보다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인물이다. 구김살 없고, 타의 모범이 됐을 재원인 최수연은 드라마에서 우영우를 질투하기도 하고, 냉담하려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내 아닌 척 우영우를 돕거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영우를 지원하게 된다. 그래서 우영우로부터 '봄날의 햇살'이란 별명으로 불리게 된다.
 
최수연에 담은 디테일
 
22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하윤경 또한 본인이 연기한 최수연 어딘가와 많이 닮아 있었다. "후배 배우나 스태프들을 챙기다가 정작 내 연기에 집중하지 못할 때가 있어 손해인가 싶으면서도 주변 사람들이 위안이 된다는 말을 종종 할 때가 있었다"라며 하윤경은 "수연을 연기할 때, 영우에게도 그런 마음일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본에 없는 디테일을 살려, 평소의 모습을 투영한 결과였다.
 
"대본대로 해버리면 조금 불친절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말투가 틱틱거렸거든. 그러면서도 영우를 생각하고 진심으로 대하는 모습을 나름 배치하려 했던 것 같다. 영우를 보는 시선이라든가, 순간적으로 보호하려고 한다든가. 또 영우의 특성을 잘 알기에 스킨십을 할 때도 놀라지 않게 아주 천천히 하는 식이었다. 예를 들어 '소금군과 후추양, 그리고 간장 변호사' 에피소드에서 살짝 쓰다듬어주는 모습이 있는데 현장에서 만든 것이다. 감독님이 보시고 좋아해 주셨다."
 
변호사 역할이었지만, 하윤경은 직업적 면모보다 우영우와 자폐스펙트럼을 대하는 일반인의 태도에 고민이 많았다고 고백했다. 그도 그럴 것이 드라마에서 최수연은 우영우의 절친 동그라미(주현영)와 함께 시청자의 마음 한쪽을 따뜻하게 지탱하는 캐릭터였기 때문일 것이다. 대본을 쓴 문지원 작가의 전작 영화 <증인>을 찾아본 것은 물론이고, 유튜브와 여러 영상을 보며 공부했다고 한다.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어느 정도 이해했어도 그 중 내가 어떤 걸 취해야 하는지, 심지어 정말 이해한답시고 하는 게 맞는지 고민이었다. 가감 없이 영우를 친구처럼 대해야 하는 건지, 무조건 도와야 하는 건지 아마 극중 수연이도 로스쿨을 다니며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아마 쓸데없이 도와준 때도 있었을 거고, 여러 시행착오를 겪다가 영우의 친구 수연으로 거듭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봄날의 햇살'이란 대사가 적힌 대본을 읽었을 때 충분히 상상됐다. 읽는데 수연의 표정이 나오더라. 박은빈 배우의 말투와 표정도 예상이 갔다. 정말 현장에서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제 마음을 울릴 정도로 해주시더라. 눈물이 고이면서 흐르진 않을 정도의 벅찬 감동을 느끼며 촬영했다. 사실 흔히 찾아오는 감정은 아니다. 생각했던 만큼 현장에서 표현해내는 순간이 오기 어려운데 이번에 딱 떨어진 거다. 영우에게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영우 또한 수연에겐 봄날의 햇살이었다. 서로 소중함을 알고 지지해주고, 함께 사건을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이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 ENA

 

많은 호평과 함께 화제가 된 드라마였지만 동시에 하윤경 또한 여러 논란이 있을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부터 잘 될 줄 알았다. 당장에 시청률이 나오지 않더라도 나중에라도 회자가 될 거라 확신했다"라며 "채널 접근성이 좀 떨어지기도 했고, 한 끗 차이로 논란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작가님의 고민 흔적이 역력했고, 균형감을 잘 잡아서 당장에 화제가 안 되더라도 나중에 회자가 될 작품이라 확신했다"라고 말했다.
 
"최수연으로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준호가 영우를 좋아하는 걸 확신할 때다. 영우가 사람들이 자길 좋아하는 건 쉽지 않다고 말할 때 수연이 보이는 행동이 있다. 질투가 나는데 인정하면서도, 그런 친구 모습에 속상해 하는 복합적인 감정으로 대한다. 순간적으로 느끼고 표현하는 장면이라 기억에 남는다.
 
드라마 전체로 보면 영우가 고래와 교류하는 모든 장면이 남는다. 자폐가 있는 의뢰인 앞에서 한계를 느끼는 영우에게 혹등고래가 나타나는데, 위로인지 함께 슬퍼하는 건지 알 수 없겠지만, 왠지 모르게 슬펐다. 마지막화에 영우가 사랑하는 고래들이 총출동하잖나. 영우의 세계를 온전히 이해해주는 존재가 고래이기에 그런 장면이 항상 인상적이었다."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
 
20대 후반일 때 만난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그리고 30대가 되어 만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대중에 얼굴을 각인하게 됐지만 사실 하윤경은 영화 <소셜포비아>(2015)를 비롯해 <고백>(2020), <경아의 딸>(2022) 등 독립예술영화에서 꾸준히 활동한 배우다. 중학생 때 본 뮤지컬 <라이온 킹> 이후 배우가 되고 싶어했고, 고교생 때 본가인 일산에서 서울을 오가며 입시를 준비할 정도로 진심이었다.
 
결과적으로 크게 흥행한 드라마에 출연한 것에 하윤경은 스스로 "운이 맞아서"라고 표현했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건 20대 중반까지 꽤 오랜 공백기를 버텼기 때문이 아닐까. 이번 드라마가 배우로서 오디션을 보지 않고 처음 발탁된 작품이라고 하니, 더욱 하윤경에겐 특별한 감회가 있을 것 같았다.
 
"오디션은 사실 숙명이었다. 그 피로도가 은근 크다. 작은 역할을 하더라도 오디션을 보지 않고 작품에 출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산뜻할까 그런 생각을 하던 때가 있었다. 막상 실현되니 좋기는 한데 새로운 감정이 든다. 부담감 같다. 오디션 봤을 땐 날 택한 감독님 책임도 일부 있는 건데 이전 오롯이 내 책임이 되는 거잖나. 제작진이 기대하는 걸 해내야 한다는 부담도 있고, 근데 한편으론 이제 인정받는 건가 자신감도 생기고 참 복합적인 감정이다(웃음).
 
제가 짜왔던 수연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피드백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작품을 하고 그런 피드백이 없으면 외롭다고 느끼는 것 같다. 열심히 준비한 흔적을 알아봐 주시는 것에 대한 감사함이 크다. 동시에 인기도 한 순간일 것이고, 지나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20대 중반에 학교를 졸업하고 애매하게 나이 먹었다는 생각에 많이 조급했었다. 서른이 되어 돌아보니 늘 일을 하고 있더라. '내가 필요하니까 작품을 했겠지'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몸이 건강하면 뭐라도 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나 혼자만 고생하는 것도 아니고 다들 비슷하니까."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최수연을 연기한 배우 하윤경.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최수연을 연기한 배우 하윤경. ⓒ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하윤경은 "연기를 너무 사랑했을 때가 오히려 더 위태로웠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그 하나가 전부였기에 오디션 결과가 안 좋다거나, 본인 연기에 만족하지 못했을 때 타격감이 더 컸던 것. 지금의 그는 "좋은 사람이 돼야 좋은 연기가 나온다는 믿음"이 있다고 한다. "너그럽고 열려있으료 다짐하며 보다 삶도 건강해진 것 같다"고 그가 덧붙였다.
 
"결과론이지만 딱 힘들 때 작품이 오는 것 같다. 친구들끼리 아 적성에 안 맞아. 이렇게 힘든 게 없어 한탄하다가도 이런 작품을 만나면 그래도 연기를 계속 하라는 건가 싶다. 물론 앞으로도 지치는 날이 오겠지. 하지만 그럴 때마다 작품이 찾아올 거라고 믿는다. 아무 것도 안할 용기도 필요하다. 강박이 좀 있어서 시간 죽이기를 못하는데, 일상을 건강하게 잘 보내야겠다.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까. 일단 노력한다는 것 자체로 절반은 한 거라고 본다. 스스로 칭찬하면서 좋은 사람이나 좋은 배우가 설령 될 수 없어도 그 노력을 포기하지 말자! 운칠기삼? 운이 아니라 노력을 7로 하고 싶다(웃음). 운이 7이라면 힘이 좀 빠질 것 같다. 정의는 항상 승리한다는 것, 좋은 사람이 나쁜 사람보다 잘 된다는 걸 믿고 싶다. 현실에서 그게 아닌 경우가 종종 있다 해도, 그게 전부면 너무 속상하니까."
   
하윤경 우영우 최수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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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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