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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수 피해로 희생된 관악구 세가족을 추모하는 분향소
▲ 추모 분향소 침수 피해로 희생된 관악구 세가족을 추모하는 분향소
ⓒ 최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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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일요일 오후 관악구 신사시장 입구 사거리. 반지하 침수피해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40대 여성 노동자와 그의 10대 딸, 발달장애인 언니 등 세 가족을 추모하기 위한 작은 분향소에 주민 추모의 발길이 이어졌다. 177개 단체가 함께하고 있는 '재난불평등추모행동' 차원으로 진보당 서울시당과 관악구위원회 주관 하에 지난 17일부터 관악구 반지하 사고 현장 인근에 분향소를 마련한 것이다.

추모제가 시작될 즈음, 분향소를 찾은 한 주민이 헌화와 더불어 추모 메시지를 작성하고 있었다. 분향소 한 켠에 마련된 '추모의 한마디' 게시판에는 지금까지 주민들이 남긴 추모의 글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그중에는 이번 희생된 아이의 친구로 짐작되는 글도 보여 보는 이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OO아, 다음에도 친하게 지내자."
"자주 지나가는 곳임에도, 위만 보고 아래는 보지 못했음에 죄송합니다."
"따뜻한 곳에서 편히 쉴 수 있기를, 죽음이 헛되지 않게 불평등이 사라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에 많은 나라를 가봐도, 서울 같이 반지하에 사는 분들은 드물다."

  
추모와 함께 시민들이 마음을 담아 포스트잇에 글을 남겼다.
▲ 포스트 잇으로 작성한 추모글 추모와 함께 시민들이 마음을 담아 포스트잇에 글을 남겼다.
ⓒ 최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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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제의 첫 발언자로 나선 이상규 전 국회의원(구 통합진보당)은 "지난 2010년, 2011년 2년 연속 도림천이 범람해서 수많은 피해를 입었는데, 그 이후에도 이 저지대는 해마다 장마철이 되고 비가 오면 하수가 역류해서 늘 피해를 봤던 곳으로 주민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을 지적하며, "오세훈 시장과 관악구청장은 왜 아직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지, 서울시와 관악구의 수해 제방, 재난대책을 어떻게 진행해왔는지 깊이 반성하고 돌아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이상규 전 의원이 거론한 해에 관악구는 비 피해로 4900여 세대나 물에 잠겼고, 특히 지대가 낮은 신사동과 조원동, 신림동 일대의 피해가 컸다.

이번 침수 피해를 계기로 우리 사회 구조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이은영 관악여성회 대표는 추모사에서 "우리 사회가 언젠가부터 국민소득이 굉장히 높아졌다,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하는데 정작 우리들은 그 변화를 전혀 체감하지 못하고, 가장 취약한 분들이 고통당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누구나 한번 밖에 살 수 없는데, 누구는 정말 아무 걱정 없이 살 수 있고, 누구는 재해로 하루아침에 목숨까지도 버려지는 것은 정말 잘못된 세상"이라며, "다시는 이런 슬프고 참담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구의원이나 구청장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우리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들이 함께 사고현장에서 먼지 않은 곳에서 추모제를 하고 있다.
▲ 추모제 사진 시민들이 함께 사고현장에서 먼지 않은 곳에서 추모제를 하고 있다.
ⓒ 최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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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여성 노동자로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앞장서 왔던 노동조합 활동가에 대한 추모도 이어졌다. 건설노조 서울경기북부지부 김창년 위원장은 "민주노총 조합원이었다는 얘기를 듣고 더 마음이 아팠다"면서, "지금도 현장에서 예고되고, 예측되었던 일임에도 산재사고로 돌아가시는 노동자들이 많은데, 우리 생명은 우리 스스로가 지켜야 되겠다는 생각이 더 크게 들었다"며 먼저 떠난 이의 못다한 길을 이어가겠다는 결심을 밝혔다.

추모사의 마지막으로 나선 오인환 진보당 서울시당 위원장은 작년 윤석열 대통령 후보 시절의 약속과 오세훈 서울시장의 취임사에서 밝힌 '약자와의 동행'을 거론하며, 사회적 약자를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만 대하는 인식이 이번 사태를 초래한 것이라고 규탄했다.

오 위원장은 사회적 약자에게 있는 그대로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보장할 것을 주장하면서, "오늘 추모의 자리에서 세 분의 희생을 단순히 안타까워하고 추모하는 것에서 그쳐선 안 된다. 그들이 시민으로서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분노해야 하고, 그런 사회를 만들어 내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이들을 추모하는 것"이라며 살아남은 우리에게 역할을 주문하기도 했다.

관악구 분향소는 작은 추모제를 끝으로 이날 마무리되었지만, 재난불평등추모행동의 서울시의회 앞 분향소는 추모 주간인 23일까지 계속 운영한다. 재난불평등추모행동은 이번 참사의 근본 원인이 예상 밖의 폭우 등의 자연재해가 아닌, '불평등'임을 제기하고,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대로 된 사과와 재발방지대책을 촉구하고자 시민과 함께 추모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23일에는 추모 주간을 마감하는 기자회견을 통해 관련 정책을 제안한다는 계획이다.

태그:#관악, #폭우, #불평등, #반지하,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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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구근로자복지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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