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난생처음 휠체어를 타봤다. 운전에 미숙해서 그런지 휠체어를 타고는 책상 사이 통로에도 못 들어가 조회시간에는 잠시 교실 뒷편에 주차(?)시켜 놓았다.
▲ 교실 뒤 휠체어 난생처음 휠체어를 타봤다. 운전에 미숙해서 그런지 휠체어를 타고는 책상 사이 통로에도 못 들어가 조회시간에는 잠시 교실 뒷편에 주차(?)시켜 놓았다.
ⓒ 조은지

관련사진보기


[시작] 초 5부터 고3까지

중학교 1학년 때, 알고리즘의 추천으로 '굴러라 구르님'이라는 분의 유튜브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의 첫 영상은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장애인 이야기"라는 제목의 2분 남짓한 영상이었다. 그 영상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길을 가다가, 혹은 생활하면서 장애인과 마주친적이 있어? 만약 있다면 한국 드라마나 영화 예능에서 장애인이 활동하는 것을 본 적이 있어?아마 거의 없을 거야. ...(중략)... 어디에도 없는 것 같지만 어디에나 있는 사람들 이야기를 하는 거 겠지?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는 사람'이라는 그의 표현이 정말 와 닿았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는 '특수반'이 있었다. 우리 반 발달장애를 가진 한 남자 아이도 주로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 아이가 교실에 있을 때면 비장애인 남자아이들이 떼로 몰려가 그 아이를 놀려대기 바빴다.

가끔 비장애인 남자 애들에게 따가운 눈길을 보내거나 도대체 왜 그러는 거냐고 묻는 정도, 그게 내가 했던 모든 것이었다. 당시 나는 여러 장애 관련 콘텐츠를 보며 이미 장애 인권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의 용기는 너무나도 부족했다.

그렇게 덜 자란 용기를 가지고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고등학생이 되면 뭔가 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그대로였다. 여전히 친구들의 혐오 발언에 침묵하고, 어떨 때는 웃어넘기기도 하였다. 중학생 때 좋아했던 한 구호가 있다.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고 속상해하지 말아라, 네가 바뀌었다."

그때 나는 내가 무슨 빨간약이라도 먹은 양 깨어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난 잠든 그대로였다.

하지만 올해 4월, 진심으로 분노할 만한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국민의힘 대표 이준석이 장애인 이동권을 위한 지하철 시위를 두고 '시민을 볼모로 잡는다'라는 글을 SNS에 게시하였다. 곧이어 유튜브 채널 '씨리얼'에는 한 영상이 업로드 되었다. "지하철 시위를 단순히 '불법'이라고만 말한 당신에게"라는 제목이었다.  

영상에는 모순적으로 이준석과 같은 국민의힘 소속 시각장애인 국회의원 김예지 의원이 출연하였다. 같은 날 한 사람은 지하철 시위를 맹비난했고 한 사람은 시위 현장에서 무릎을 꿇었다. 또한 영상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장애인은 시민이 아닌가요?' 이 말을 듣고 난 우리 학교를 떠올렸다. 휠체어를 타고 학교에 다닐 수 있을까? 궁금했다. 

[조금의 용기] 사회문제탐구 '갤러리 워킹'

그러던 중, 사회문제 탐구 시간에 '갤러리 워킹'이라는 활동을 하게 되었다. 조를 짜 관심 있는 사회문제를 선정하고 이를 조사하여 다른 조에게 소개하는 일종의 '부스' 같은 수행평가다.

'갤러리 워킹'을 기회로 삼아 우리 학교에서도 장애 인권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그렇게 '지역사회 내 장애인 이동지도 만들기'를 주제로 선정했다. 우리 조는 장애인 화장실 팀과 경사로 팀으로 나눠 청주 시내 일대를 답사하였다. 한 시간 반가량 돌아다니며 찾은 것은 경사로 30여 개, 장애인 화장실 5개였다.

그중에서는 장애인 편의시설의 법령 기준에 맞지 않아 사실상 '유명무실'한 시설들도 많았다. 유명무실한 건물들 중에는 즐겨 찾던 영화관도 있었다. 관계자에게 용기 내 인터뷰를 청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은 어떻게 영화를 관람할 수 있냐고, 돌아오는 답변은 이러했다.

"맨 앞자리에서만 볼 수 있어요."

요즘은 집에서도 영화를 볼 수 있고, 크게 불편하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가는 곳에 '장애인'이 못 갈 이유 따위는 없다. 현재 각 지자체에서는 장애인 탈시설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그러나 그들이 막상 밖으로 나오면, 어디에나 갈 수 있을까?

비장애인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턱이 휠체어 사용 장애인에게는 장벽같이 느껴질 수 있다. 우리에게는 '배리어(장애물) 프리'한 사회가 필요하다.

[움트는 용기] 휠체어 대여
 
보건실은 2층, 3학년 교실은 3층. 엘리베이터를 통해서만 이동할 수 있다.
▲ 휠체어 대여 후 엘리베이터로 올라가는 중 보건실은 2층, 3학년 교실은 3층. 엘리베이터를 통해서만 이동할 수 있다.
ⓒ 조은지

관련사진보기


'우리 학교는 과연 배리어 프리 할까?'라는 의심 속에서 휠체어 체험을 계획하였다. 사실 이 체험을 기획할 때 실제 휠체어를 이용하시는 분들께 기만적 행위가 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내가 진짜 휠체어 사용자이든 아니든 학교의 시설은 달라지지 않는다. 나라도 우리 학교의 문제점을 직접 인식해야 했다.

그렇게 보건 선생님께 가서 "진로 활동으로 휠체어 체험하고 기사 쓰려고 하는데, 혹시 휠체어 빌릴 수 있을까요?"라고 취재 계획서와 함께 여쭤보았다. 선생님께서는 긴급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당부하며 몇 가지 유의 사항을 설명해주신 뒤 대여를 승낙하셨다.

그렇게 호기롭게 시작했는데, 결과만 먼저 스포하자면 한 시간 만에 그만뒀다.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변명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실행] 이방인 
 
우리반은 3-9, 이동수업반은 3-10. 이 사진을 찍을 떄까지만 해도 이 몇 발자국이 고행이 될 줄은 몰랐다.
 우리반은 3-9, 이동수업반은 3-10. 이 사진을 찍을 떄까지만 해도 이 몇 발자국이 고행이 될 줄은 몰랐다.
ⓒ 조은지

관련사진보기

 
① 좁은 통로 : 1교시 이동수업이 바로 그 과목,  '사회문제 탐구'였다. 우리 반은 3-9반, 이동하는 교실은 3-10반으로 꼭 붙어 있다. 불과 5m 남짓할 복도가 휠체어를 탄 그 순간 500m처럼 느껴졌다. 첫 번째 난관은 교실에 늘어선 책상들이었다.

휠체어가 지나가기에 그사이는 너무 좁았다. 뒷문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이내 휠체어를 다시 돌려 앞문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난관은 자리 잡기였다. 의자를 빼고 앉아야 하는데, 휠체어를 타고는 책상에 편히 앉을 수 없었다. 교실 책상에 앉기에는 휠체어가 너무 컸다.

② 시선 : 쏟아지는 시선들, 물론 차가운 시선은 아니었다. 대부분 놀라움과 걱정어린 시선들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어떡하지?", "진로 활동으로 기사 쓰려고 휠체어 타고 있어..." 뿐이었다. 학교에서 휠체어를 타기란 아무래도 좀 눈에 띈다.  본투비 '관종'으로 유명한 나지만, 이런 시선은 처음이었다.

복도를 지나가면 모두가 날 쳐다보는 것 같고, 몇 친구들이 저희끼리 귓속말하는 게 꼭 나더러 "별 생쇼를 다 한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 같이 들렸다. 이방인이 된 기분이었다. 왜 정치인들이 '휠체어 체험' 하면서 언론플레이 하는지 정확하게 이해된  것 같다. 휠체어를 타면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다. 

[용기의 결론] 나는 소망한다
 
수업 듣는 중
 수업 듣는 중
ⓒ 조은지

관련사진보기

 
사실 이 기사의 원제는 "휠체어 타면 급식도 못 먹나요?" 였다. 난 급식에 그 누구보다 진심인 학생이어서 급식실에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적잖은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난 내가 점심시간까지는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아직은 용기뿐인 것 같다. 의지만 있고, 끝까지 해낼 자신은 없었다.

내가 그동안 살아온 세상이 얼마나 꽉 막힌 세상이었는지 알지 못했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대충 세운 모래성 같다. 얼핏 보면 뭉쳐있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난 '두꺼비 집' 같은 사회가 만들어지길 소망한다. 여러 번 토닥이고 또 토닥여 그 어떤 흙조차 떨어지는 일 없이 단단하게 뭉친 두꺼비 집.

태그:#휠체어체험, #고등학생
댓글15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9,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안녕하세요. 약자와 사회 사이의 매개체가 되고 싶은 기자 조은지 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