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으로 휴가철입니다. 무더위까지 기승인데요. 산으로 바다로 떠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코로나19가 재유행기에 접어들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에 계획마저 쉽지 않은 요즘입니다. 이럴 때, 무더위와 여행에 대한 갈증을 동시에 해소시켜 줄 '나만의 휴양지'가 있다면 어떨까요? 직접 가지 못하더라도 잠시나마 추억 여행에 젖다 보면 답답함도, 무더위도 잠시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요? 영화 속 추억이 담긴 '나만의 휴양지'를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2019년 겨울까지는 절대 낯설지 않았던 해외여행. 그러나 3년째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코로나 시국 때문에 이 경험도 점점 낯설어지고, 또 그리워지고 있다. 공항을 출발하는 순간부터 여름 여행의 영원한 동반자인 무더위와 고생이 따라올 것을 알면서도, 그 갈증이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번 여름, 그 갈증이 깊어질 때 극장을 찾거나 OTT를 열어보는 것은 어떨까? 4가지 각양각색의 여행법으로 무장한 영화 덕분에 아쉽지만 무더운 이 여름을 탈바꿈할지도 모른다.
 
(1) 고전을 따라 영웅이 되어보자, <트립 투 그리스>
 
 영화 <트립 투 그리스> 스틸 이미지.

영화 <트립 투 그리스> 스틸 이미지. ⓒ 찬란 외

 
2010년 <트립 투 잉글랜드>를 시작으로 <트립 투 이탈리아>와 <트립 투 스페인>을 거쳐 2021년 <트립 투 그리스>로 이어지는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트립' 시리즈. 그 중 <트립 투 그리스>는 영국 유명 배우 '스티브(스티브 쿠건)'와 '롭(롭 브라이든)'의 그리스 여행을 담아냈다. 여름날 에게해의 바다를 수영하는 행복, 다 무너져가는 델포이 신전에서 안개 낀 그리스의 산등성이를 바라보는 벅참과 허무함, 그리스의 자랑인 꿀술에 곁들인 다양한 해산물과 육류 요리의 향연은 당장 그리스로 날아가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들의 여행이 특별한 이유는 터키 아소스를 시작으로 이타카에 이르기까지 고전 중의 고전인 <오디세이아> 속 오디세우스의 발자취를 따르기 때문. 가족 간의 사랑을 깨닫는 여행길을 걷는 롭과 사랑을 찾으며 여행을 즐기는 스티브. 그들은 집으로 가고 싶은 지친 여행자이면서 호기심 가득한 열정적인 여행자라는 입체적인 영웅 오디세우스의 삶을 간접 체험할 수 있게 해준다.

저승에서 어머니 안티클레이아의 혼을 만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깊은 슬픔을 표하고, 아들 텔레마코스가 자신을 대신해 가족을 지탱해야 했던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오디세우스. 그러면서도 키르케와 칼립소가 제안하는 안정적이고 죽지 않는 삶을 마다하고 바다로, 이타카로, 아내 페넬로페를 향해 끊임없이 항해하던 오디세우스. 빛나는 지중해를 배경으로 새롭게 태어난 그의 항해와 모험을 만나보자.
 
(2) 핵심 랜드마크만 골라 담았다, <스파이더맨> 트릴로지
 
 영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스틸 이미지.

영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스틸 이미지. ⓒ 소니픽처스코리아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막내 히어로를 위한 선물일까? MCU는 유달리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에게 진심이었고, 뉴욕에만 갇혀 지내던 그에게 적지 않은 여행 경비를 지원해주었다. 처음으로 등장한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그가 베를린과 라이프치히-할레 국제공항을 방문한 것이 그저 시작에 불과할 정도로. 덕분에 그의 거미줄이 닿는 곳만 따라가도 남부럽지 않은 대서양 여행기가 완성될 수 있었다.

그의 첫 번째 목적지는 워싱턴 D.C. 명실상부 미국의 수도.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을 비롯해 스미소니언 박물관이 위치한 이 도시는 미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자랑거리가 한곳에 집결된 미국의 상징 그 자체나 다름없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을 건국한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기리기 위해 건축한 기념탑에서 펼쳐지는, 뉴욕 외의 장소에서 펼쳐지는 스파이더맨의 첫 활공은 더위를 날리기에 충분해 보인다.

이후 마침내 대서양을 넘어가 여행에 나선 피터.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시작으로 체코 프라하, 독일 베를린, 네덜란드의 튤립밭과 영국 런던을 거치는 그의 투어는 빠트릴 수 없는 명소들로 가득하다. 베네치아의 곤돌라부터 하라드차니 성, 성 비투스 성당, 카를 다리 등 세계유산에도 등록된 기념물로 가득한 프라하의 중세시대 시가지를 거쳐 런던탑과 타워 브리지로 이어지는 위험천만하면서도 풋풋한 피터의 여행은 비록 경로가 조금 돌아가는 듯 보여서 이상하기는 하지만 유럽 여행 코스로 추천하기에 남부럽지 않다.

마지막으로 피터가 선택한 여행지는 역시나 마음의 고향인 뉴욕이다. 뉴욕의 자랑거리인 타임스퀘어에서 비를 맞으며 돌아다니는가 하면 자유의 여신상 야경을 즐길 줄 아는 그의 선택은 과연 뉴욕 토박이답다. 이름이 같은 두 동료가 추천하는 핫스팟,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크라이슬러 빌딩도 빼놓을 수 없다. 단지 피터가 거쳐 간 관광지들이 전부 부서질 뿐만 아니라, 애초에 그가 기쁜 마음으로 간 곳이 없다는 게 함정일 뿐이다.
 
(3) 도시의 역사와 아픔까지도 품고 싶을 때? <벨파스트>
 
 영화 <벨파스트> 스틸 이미지.

영화 <벨파스트> 스틸 이미지. ⓒ 유니버설 픽쳐스

 
각 도시의 랜드마크를 찍고 돌아오는 여행도 좋지만, 그 도시를 만들고 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접 만나보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여행의 묘미다. <벨파스트>는 도시의 공기까지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할 수 있는 영화다.

1969년 북아일랜드의 수도 벨파스트의 평화로운 일상과 예기치 않게 발생한 내전 상황을 담아낸 영화 <벨파스트>. 이 작품의 매력은 당시 '공간'에 깃들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차분히 담아냈다는 점이다. 오프닝 시퀀스만 보더라도 벨파스트의 다양한 공간이 가득하다.

가장 먼저 현대적인 조선소 일대를 비춘 카메라는 '타이타닉 호텔'의 표지판을 거쳐 오래된 배 건조장의 흔적을 담고, 고풍스러운 건물과 다양한 유적지를 비춘 후 서서히 아기자기하게 주택이 모여 있는 마을의 모습을 비춘다. 이때 카메라는 주택가 거리마다 위치한 벽들과 그 벽에 그려진 강렬하면서도 상흔이 느껴지는 그림을 보여준 후, 거리를 가로막고 있는 그 벽 너머에서 펼쳐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흑백으로 소개한다.

이러한 오프닝 시퀀스는 영화의 태도와 접근법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듯 보인다. 벨파스트라는 공간에 얽히고설킨 역사를 자세히 설명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체감할 수 있게 하려는 의도인 듯 싶다. 특히 오프닝에서 비추는 공간과 건물 하나하나가 벨파스트의 긴 세월을 모두 품고 있기에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타이타닉 호를 건조할 정도로 조선소가 발달했던 벨파스트의 영광을 보여주는 조선소와 신교도와 국교도 간의 충돌로 인해 만들어진 주택가를 가로지르는 벽들(peace line), 그리고 이 벽에 그려진 정치적, 역사적 벽화까지.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다시 그 건축이 우리를 만든다(We shape our buildings, thereafter they shape us)"라는 윈스턴 처칠의 말처럼 영화는 1969년 벨파스트 거리마다 생겨난 장벽들과 그 장벽들로 인해 만들어진 이야기들이 50여 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도시에 깃들어 있음을 보여준다. 도시의 숨결까지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4) 여름 하면 떠오르는 시원한 해변과 바다 - <스텝 업 4> & <탑건: 매버릭>
 
 영화 <탑건> 스틸 이미지.

영화 <탑건> 스틸 이미지. ⓒ 롯데엔터테인먼트

 
위에 나온 모든 영화와 장소들도 좋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여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역시나 뜨거운 햇살과 바다가 아닐까. 그 뜨거운 해변을 고스란히 담아낸 영화가 두 편 있다.

우선 마이애미의 여름을 스크린에 옮겨 온 <스텝 업 4>다. 댄스 영화의 모범적인(?) 시리즈라고 할 수 있는 <스텝 업> 시리즈. 그중 4편은 각양각색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플래시 몹이 핵심이다. 시작부터 마이애미 바닷가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댄스로 시선을 사로잡는 영화는 마이애미의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예상을 벗어나는 전율과 쾌감을 선사해준다. 로맨스가 꽃피는 해변에서의 댄스 배틀은 덤이다.

마지막으로 올해 여름 극장가의 예상치 못한 승자, 톰 크루즈의 <탑건: 매버릭>을 빼놓을 수 없다. 화려한 전투기 액션부터 전편을 떠올리게 만드는 수많은 오마주의 향연까지 장면 하나, 대사 하나도 놓칠 수 없겠지만 특히 눈을 사로잡는 장면이 있으니 바로 비치 풋볼 장면이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면 꼭 영화 속 해변이 아니더라도, 가까운 바닷가라면 어디든 좋으니 행맨과 루스터처럼 땀 흘리며 여름을 즐기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오를 것이다. 단 한 가지 아쉬움이라면, 슬슬 극장 상영이 끝나가고 있다는 것. 그게 전부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potter1113)와 브런치(https://brunch.co.kr/@potter1113)에 게재되는 글입니다.
영화추천 트립 투 그리스 스파이더맨 벨파스트 탑건: 매버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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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는 하루, KinoDAY의 공간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과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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