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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금속노조대전충북지부가 지난해 4월 22일 오후 대전 중구 용두동 더불어민주당 대전시당사 앞에서 '2021 총력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열어 '일상적 구조조정 중단'과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 제도 폐기'를 촉구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대전충북지부가 지난해 4월 22일 오후 대전 중구 용두동 더불어민주당 대전시당사 앞에서 "2021 총력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열어 "일상적 구조조정 중단"과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 제도 폐기"를 촉구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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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부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서울지부) 소속 13개 대학 사업장(연세대, 고려대 등) 비정규직 노조들은 16개 용역업체들과 임금·단체협약 집단교섭을 진행하였다. 현재는 각 사업장마다 처한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로 적법하게 확보한 쟁의권을 행사 중이다. 그런데 그 노조들이 이 집단교섭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다.

13개 사업장 대다수는 복수노조 체제다. 복수노조 하에서는 교섭창구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노동법의 절차대로 이 과정에 '무조건' 참여해야 사측과 교섭할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 그 다음으로 대표교섭노조 지위를 얻어야 한다. 그 지위는 다수노조만이 '쟁취'할 수 있는데, 다른 노조보다 단 한 명의 노조원만 더 가입시키면 된다. 이 13개 사업장의 노조들도 대표교섭노조의 지위를 얻었기에 쟁의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쟁의권은 교섭권이 존재할 때야 비로소 성립되는 충분조건이다.

이상한 조건

물론 사용자가 소수노조와도 교섭을 하겠다고 한다면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는 거치지 않아도 되지만, 그럴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애초에 이 법의 탄생 배경 때문이다. 사용자가 복수의 노조들과 교섭할 시 발생할 비용 상승을 최대한으로 줄이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어떤 사용자가 소수노조와도 교섭을 하려 할까? 이 법은 2010년 첫날 새벽에 국회의장이 직권상정 한 후 본회의에서 여당(한나라당) 의원들의 과반 투표로 가볍게 가결됐다. 당시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는 '기업 프렌들리'로 대표된다.

사측은 오히려 맘에 들지 않는 노조를 소수노조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다. 그 과정에서 불법적인 상황이 발생해도 수익 극대화를 최우선으로 삼는 기업 입장에서 이익만 된다면야, 강행할지도 모르겠다.

그 단적인 예로 연세대 청소노동자들과 같은 산별노조(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에 속해 있는 세브란스병원 청소노동자들이 있다. 그들은 현재 소수노조화됐는데, 그 과정에서 원·하청의 불법 정황이 드러났다. 그 결과에 따라 세브란스병원 사무국장과 용역업체 부사장 등 9명이 지난해 3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기소는 됐지만, 사실 형이 언제 확정될지는 현재로서 기약이 없다. 실형을 받을지, 벌금형을 받을지조차 모른다. 아예 무죄가 될 수도 있다.

그에 비하면 서울지부 소속 세브란스병원 청소노동자들은 지금 이 순간 연세대 청소노동자들처럼 시급 400원 인상과 샤워실 설치 등을 요구하기 위해 사측에 교섭을 하자고 해도, 사측은 그 요청에 응할 의무조차 없다. 같은 학교법인 내에 속해 있으면서, 바로 옆에 위치해 있는 연세대와 세브란스병원 청소노동자들의 현실은 교섭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갈린다.

그렇다. 연세대 학생의 고소·고발로 서울지부 소속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현실에 대해선 잘 알려져 있지만, 서울지부에 그 13곳 말고도 다른 대학이나 대학병원 등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이 가입되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들이 단지 소수노조라는 이유로, 그 쟁의 행위에 함께할 수 없는 현실적, 법적 상황에서 비롯됐을 터다. '투명인간' 취급받는 청소노동자의 현실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닐 텐데 말이다.

2017년 만해도 서울지부(당시에는 서울경인지역공공서비스지부였다) 소속으로 17개 대학 사업장의 노조가 집단교섭에 참여했었다. 그 수가 현재 13개로 줄어든 건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는 소수노조로 전락해 교섭권을 잃은 곳도 있기 때문이다.

그 중 한 곳의 사정은 과거, 서울지부 소속으로 집단교섭에 참여했을 때보다 확실히 열악해졌다. 이를테면 회사 측이 지정한 장소 3곳에만 노조의 현수막을 걸 수 있다는 황당한 조항이 단협에 새로 추가된 게 대표적이다. 사라진 것도 있다. 서울지부 소속 노조가 대표교섭노조였을 때는 '기본합의서'라는 사측과의 합의문서도 있었는데, 거기에는 이런 조항이 있었다. "회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따라 조합과의 자율(개별)교섭에 동의하고, 기타 교섭에 필요한 행정절차 진행에 적극 협조한다." 즉, 소수노조가 교섭을 '원한다'면, 사측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다수노조만 사측과 교섭할 수 있다. 그 외에도 많은 부분이 이전보다 후퇴된 상태다.

그곳의 서울지부 소속 소수노조는 현재의 단협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들이 다수노조였을 때의 단협으로 되돌릴 방법은 없다. 그들에게 단협 교섭권이 어떤 식으로든 주어지지 않으니 말이다. 교섭권이 없으니 그대로 따르는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법'에 따르면, 다수노조가 합의한 단협은 소수노조에도 적용된다. 단협 내용이 아무리 후퇴됐다고 하더라도 노동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 준용해야 한다.

교섭은 커녕 마주앉기도 힘든 노동자들
 
파리바게뜨 제빵 노동자 5명이 지난 4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SPC 본사 앞에서 단식 농성에 돌입하고 있다.
 파리바게뜨 제빵 노동자 5명이 지난 4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SPC 본사 앞에서 단식 농성에 돌입하고 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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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또 다른 곳에서는 민주노총(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파리바게뜨지회) 소속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들이 단식농성 중이다. 그 이유는 쉴 권리 등을 보장받기 위해서지만, 더 본질적인 사유는 '사측과 마주앉기' 위해서다.

이 사업장에서 민주노총은 소수노조다. 당연히 사측은 교섭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단지 사측과 교섭할 권한을 얻기 위해 단식농성까지 해야 한다면, 그 현실이 과연 제대로 된 '법치사회'의 모습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이는 '법 앞의 평등'과 '노동3권'을 보장하는 우리나라 최고 법규인 '헌법'과도 배치된다.

사용자와 노조의 관계가 전혀 동등하지 않다는 사실은 최근 대우조선해양과 연세대 등과 같은 곳에서도 드러났다. 그런데 복수노조 하의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는 노조에 그마저 남아 있는 힘까지 무력화시킬 수 있는 지극히 사용자 지향적인 제도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사용자가 회사의 수익성만을 고려한 채 소수노조와 교섭할지 말지를 선택하는 방식이 아니라, 노동자 자신이 어느 노조에 가입했든 상관없이 노조 할 권리를 주체적으로 누릴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노조의 존재 목적이 사용자의 착취를 방기하는 쪽(주로 어용노조의 존재 이유)보다는 '최소화'하는 방향이라면, 가장 합법적이면서도 가장 기본적인 소통수단인 교섭권은 무엇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다. 노조의 최후 보루인 쟁의권까지 적법하게 확보하기 위해서는 더더욱 필수적인 권리다. 그 연장선상에서 사용자와의 교섭이 가능한지 여부에 따라 노조의 존폐 문제가 대두될 수도 있다. 교섭권이 없는 노조에게는 사측과 '합법적'으로 맞설 방법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자 권리보다 사용자 비용 걱정하는 사회

12년여 전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당시에 교섭창구단일화 절차가 직권상정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이 야당(민주당·민주노동당) 소속 의원들의 환노위 회의장 진입을 막고, 해당 안건을 여당 소속 의원들과 강행 처리했기 때문이다. 그때 환노위원장은 민주당 소속의 추미애 의원이었다. 교섭창구단일화 절차 등이 포함된 '노동조합법' 개정안의 입법을 당 차원에서 반대했던 민주당은 그 기습처리 과정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었다. 민주당 내에서는 추미애 의원에 대한 징계 이야기까지 나오기도 했었다.

이젠 '그때의 민주당'이 할 수 없었던 일을 '지금의 민주당(더불어민주당)'은 할 수 있다. '지금의 민주당'은 개헌 빼고 다 할 수 있는 권한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소수라서, 쉴 권리 보장이나 샤워실 설치 등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노동자의 요구를 교섭 테이블 위에 올릴 수조차 없는 현실은 아무리 봐도 이상하지 않은가? '지금의 민주당' 의원들이 보기엔 어떤가? '그때의 추미애 의원'의 '독단적 행동'이 옳다고 생각되는가? 21대 국회 후반기 상임위원회 배정과정에서 환노위를 1순위로 지망한 민주당 의원이 단 한 명도 없다는데, 관심은 있는 것일까?

"소수노조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옛날에 다수였을 땐 느끼지 못한 감정이에요. 회사가 교섭을 거부하는 건 합당한 거고, 우리가 교섭을 요구하려고 사무실에 찾아가는 건 불법이래요. 그래서 업무방해죄로 고소당하기도 했어요. 경찰에도 갔었고, 검찰에도 갔었어요. 그러니 뭘 하겠어요? 합법이라는데. 그게 합법이면 우리가 거기에 맞서는 건 자연스럽게 불법이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지금은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어요.

사실 간신히 버티는 것뿐이에요. 노조원 수가 적다고 차별적인 대우도 많이 당해요. 회사랑 교섭조차 못하고 차별만 당하는데, 그런 노조에 누가 가입하고, 누가 남아 있으려 하겠어요? 노조에 애착이 없으면 솔직히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이제는 노조 탈퇴 못하게 설득하는 것조차 버거워요. 그래도 우리는 어떻게든 끝까지 버티려고 노력 중이에요. 정년을 다 채워서 나가든, 중간에 해고를 당하든, 어쨌든 이곳에서 지금의 노조로 최대한 남아 있는 게 지금으로서는 우리의 최고 목표예요."


서울지부 소속의 한 소수노조 간부가 예전에 한 말이다. 노동법에서는 '개인들의 합'이 적다고, 그 합계 안에 속한 개인의 권리마저 박탈당하는 경우가 교섭창구단일화 절차 과정에서뿐 아니라 5인 미만 사업장에서도 발생한다. 그 사업장 속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을 온전히 적용받을 수 없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5인 미만 사업장을 완전히 배제시켰다. 새로운 노동법의 적용에 있어서도 5인 미만 사업장은 가장 늦다.

이러한 종류의 차별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사용자가 과도하게 지출할지 모를 비용에 대한 '걱정'이 법을 만든 목적이나 개정해선 안 되는 이유로 명확하게 드러난다는 점이다. 노동자가 누려야 할 권리 보장보다 사용자가 치러야 할 비용 지출을 더 걱정하는 사회에서 그런 차별'쯤'은 어쩌면 필연적이지 않을까?

태그:#교섭창구 단일화 절차, #소수노조,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교섭권, #단체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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