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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지루하게 흘렀다. 그날이 그날인 듯 밋밋한 삶이었다. 그리워할 첫사랑도, 다시 만나고픈 인연도 없는 건조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내 삶은 마치 재미없는 독립영화처럼 단조롭지만 그 끝은 궁금한 저예산 스토리였다. 그리움의 여운이 남거나 다시 보고 싶은 명작은 아닌 게 분명했다.

시간을 거슬러 돌아볼 추억조차 없는 것에 문득문득 눈물이 날 뻔했다. 교감과 부교감 신경이 불균형했다. 말수는 점점 줄어들고 의욕보다는 무기력이 지배했다. 매 순간 의미 없이 흘러갔다. 그렇게 느꼈다. 오후 7시를 향해 가는 인생의 시계는 바람 부는 6월 저녁 혼자 있는 외로움. 늘 그날이 그날 같은 오늘이다.

'싸이월드'를 먼저 꺼낸 조카

그날 카톡 하나가 왔다. 지나였다. 대학생이 된 조카 지나. 예쁜 조카 지나가 나에게 먼저 톡을 해오다니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나를 찾는 일이 생기다니 무슨 일일까 바로 톡을 확인했다.

"이모 혹시 싸이월드에 내 사진 아직도 있어? 나 보여줄 수 있어?"

세상에! 20대 초반인 지나가 싸이월드를 찾다니, 아니, 싸이월드가 재개봉한다더니 벌써 한 건가, 싸이월드라는 말에 감정이 뒤죽박죽 섞인 채 저녁을 먹다 말고 부랴부랴 싸이월드를 찾아 접속했다. 동시에 지나와 톡을 주고받는 마음이 바빴다.

"네가 싸이월드를 어떻게 기억하니?"
"이모가 옛날에 알려주었잖아."


그랬구나. 오래 전 싸이월드를 시작하면서 어린 조카들과 소통하고 싶어 싸이월드를 알려준 적이 있다. 어린 조카들은 이모 말에 가입만 해놓고 활동은 잘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 혼자 조카들과의 추억을 사진으로 기록하며 흐뭇해했었다. 일촌이라곤 조카들밖에 없는 싸이월드는 나만의 아지트였다.

오래된 아지트에는 옛 흔적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 '봉이야' 일촌명처럼 그 당시 나는 조카들과 함께한 시간을 열심히 기록하며 혼자만의 짝사랑을 하고 있었다. 알아주지 않는 짝사랑이었지만 이렇게 다시 추억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살짝 흥분된 기분으로 복원된 사진첩을 클릭했다. 남는 것은 사진밖에 없다는 뻔한 말들이 새삼 벅차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모든 것을 다 기억할 수 없어 기록한다는 사실, 프레임 속에 담긴 사진들은 영화처럼 생생히 재생되어 그때의 순간들로 나를 옮겨 놓았다.

좋은 이모, 좋은 고모가 되고 싶어 조카들과 함께 여행했던 일들이 많았다. 그때의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클릭하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벅차오른다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괜히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사진 속의 우리는 모두 행복했다. 다시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표정으로 환하게 웃고 있다.

다시 갈 수 없는 시간이다. 그러기에 더욱더 그리운 것인지 모른다. 벌써 십 년이 넘었다. 그동안 나의 시간과 조카들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갔기에 그리움의 크기도 다를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늘 그립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싸이월드 복원이 잊힌 추억도 복원해주었다
 
싸이월드
 싸이월드
ⓒ 싸이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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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명의 조카들 중 그 시간을 기억한 지나가 갑자기 싸이월드를 소환하며 자신의 옛 감정을 그리워했던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런 지나에게 싸이월드를 찾는 이유를 따로 묻지도 않았다. 누구나 그리움에는 이유가 있고 그럴 때가 있기 때문이다. 지나는 싸이월드에 보관된 자신의 어릴 적 사진을 보면서 '이모 고마워 하트'를 남발하였다.

그리곤 제주여행 사진도 있냐고 물어왔다. 덩달아 신난 나는 내친김에 따로 보관되어있는 USB를 찾아 제주 여행뿐 아니라 같이 함께 한 모든 여행 사진을 찾아 보내주었다.

어린 조카들과 함께 제주도로 향한 그날, 처음 비행기를 탄 조카들은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제주도를 신기해했다. "이모, 제주도는 너무 작아 성냥갑만 한데 우리가 어떻게 걸어 다녀?" 아직도 생생한 귀여운 질문.

제주도를 여러 번 갔지만 그때 조카들과 함께한 제주도가 가장 즐겁고 행복했던 마음은 지금도 변함없다. 시간이 지나도 소중하고 그리운 것은 그때 그 시간이 다시 올 수 없지만 그 순간만큼은 언제나 영원하기 때문이다.

싸이월드가 한창  유행하던 그때 '싸이월드' 다음은 뭘까, 싸이월드를 능가할만한 게 있긴 있을까? 미래가 정말 너무 궁금하다며 호들갑을 떨었었다. 그때 우리는 싸이월드를 능가할만한 게 나오지 않을 것처럼 진지했다. 싸이월드는 영원할 것 같았다.

그러나 늘 그렇듯 '다음'은 있었다. 그 후 '인별' 같은 많은 SNS가 나왔지만 나는 싸이월드를 끝으로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이 든 탓일 수도 있겠지만 공부로 바빠진 조카들과 더 이상 추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중에 싸이월드의 복원 소식은 그리웠던 우리의 시간까지 다시 복원시켜 주었다. 스무 살 갓 넘긴 지나가 철 지난 싸이월드를 찾을 때 의외였지만 지나가 그때의 추억을 기억하고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뿌듯하고 기특했다.

특히, 지나랑은 일본 여행도 함께 했었다. 5살 때였으니 기억이 없을 줄 알았는데 기억하고 있었다. 그 기억 속에 이모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싸이월드가 쏘아올린 오늘의 힘
 
싸이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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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싸이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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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각자의 시간이 달라 함께 할 날이 많지 않겠지만, 매일이 그날 같은 오늘을 살고 있던 내게 다시 오늘을 활기차게 살아갈 힘을 준 것만은 사실이다. 별 볼 일 없는 오늘일지라도 어쩌면 먼 후일 오늘처럼 그리워할 날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

하루를 멋지게 살아보려는 노력을 하는 것만으로도 오늘은 내일을 향해 전진할 수 있는 기억임이 틀림없다. 돌아볼 추억이 있는 건 앞으로 전진할 힘을 주는 의미다. 반면 돌아볼 시간이 많아졌다는 건 앞으로의 시간이 짧아졌다는 얘기다.  

무기력했던 나의 하루에 지나가 쏘아 올린 싸이월드의 추억은, 진주알처럼 반짝이는 하루가 되었다. 그런 하루가 모여 행복이 된다는 소소한 말처럼 알알이 엮일 진주알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임을 왜 잊고 있었던 것일까.  

지나에게 톡을 넣었다. "방학함 밥 한번 먹을래?" 했더니 망설임 없이 "좋아"라고 했다. 예의상 한 말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릴 적 함께 여행했던 다른 조카에게도 톡을 넣었다. 대답은 "예스"였다. 우리는 7월 11일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실로 오랜만의 만남이다. 다들 멀리 떨어져 각자의 생활이 있음에도 흔쾌히 자신의 시간을 내어준 조카들. 역에서 기다리는 마음은 벌써부터 두근두근! 또 하나의 추억이 될 오늘을 기대한다.

태그:#싸이월드, #추억, #조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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