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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비정규직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소속 학생들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백양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가 청소ㆍ경비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에 책임을 다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 연세대 청소노동자 지지하는 학생들 "수수방관하는 학교 규탄한다" 연세대학교 비정규직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소속 학생들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백양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가 청소ㆍ경비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에 책임을 다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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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연세대 학생 3명이 학내에서 집회를 연 청소·경비노동자들에게 학습권 침해 등을 이유로 638만여 원을 지급하라는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 5월에 이미 형사 고소까지 한 상태였다. 이에 대해 김현옥 연세대 청소노조 분회장은 <한겨레>에 "15년째 해마다 같은 장소에서 농성을 해왔지만, 생전 처음 있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여론은 대체적으로 '생전 처음 있는 일'에만 주목하는 모양새다. 어떻게 진리의 전당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느냐는 개탄부터, 개인의 소송이 연세대생 절대다수의 의견과는 무관하다는 반박, 선량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 옳은 일이냐는 동조, 청소·경비노동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학교에 책임을 물었어야 했다는 주장 등이 오가고 있다.

그만큼이나 이목을 받아야 하는 것이 '15년째 해마다 같은 장소에서 농성을 해왔다'는 이야기지만, 생각보다 관심 밖에 있다. 그들의 요구가 학교(원청) 내에서 쟁의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절대' 해결될 수 없음에도 말이다. 그것도 15년이란 세월이 말해주듯, 꽤 고착화됐다.

'15년'이란 세월

이 문제는 연세대 관계자가 <한겨레>에 "학교와 노조와의 문제가 아니라 용역 업체와 노조와의 임금 협상 문제"라면서 결국 '학교도 피해자'라고 말한 부분과 맞닿아 있다. 외형상, 그의 말이 맞다. 연세대 청소·경비노동자들은 연세대가 아니라, 연세대와 용역계약을 맺은 업체들과 근로계약서를 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노동법은 노동자와 '직접' 근로계약을 맺은 자만을 대체로 사용자라고 인정한다.

현재 연세대 청소·경비노동자들은 시급(청소노동자 400원, 경비노동자 440원) 인상과 샤워실 설치, 정년퇴직에 따른 결원 충원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용역업체가 독자적으로 들어줄 수 없는 조건들이다. 

청소·경비 업무는 서비스 업종이므로, 그 특성상 원청이 노동자 개인당 인건비를 얼마로 책정하느냐에 따라 용역업체의 수익이 결정되는 구조다. 대개의 용역업체는 노동자들을 원청 사업장에 파견한 대가로, '최저'의 임금과 '최악'의 처우에 맞춰진 용역비를 받는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그 이상을 요구하면, 그때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이미 계약을 통해 받는 용역비로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맞출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요구 액수에 걸맞은 용역비를 원청이 새로 산출해줘야만 해결될 문제다. 정년퇴직에 따른 결원 충원 문제도 결과적으로는 시급 인상과 같은 비용문제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원청의 권한 안에 있다. 샤워실 문제도 그렇다. 학교 내부에 설치돼야 하는 시설이므로, 용역업체가 아니라 원청이 최종적으로 결정해야 할 사안이다.

상황이 이런데, 노조가 아무리 하청업체들과 교섭자리를 많이 마련한들 무엇이 달라질까. 해결될 수 없는 문제를 교섭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니, 교섭은 '당연히' 파행으로 치닫는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로 노동자들은 지난 15년간 제3자라고 말하는 학교를 향해 자신들의 요구안을 들어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청노동자가 왜 학교(원청) 내에서 투쟁하느냐는 말은 결국 이 모든 절차를 손쉽게 무시한 결과다.

지난 4월부터 국내에서 발효되기 시작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중엔 '고용조건을 결정할 수 있는 자와 노조 사이의 단체교섭은 항상 가능해야 한다'는 입장이 포함돼 있다. 이 협약대로라면, 연세대는 하청노동자들과 단체교섭을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는 이 협약은 여전히 국내법과 동등한 대우는커녕 '하위법' 취급을 받고 있다.

물론 그런 국내법을 ILO 협약과 비슷하게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의 전신인 민주통합당은 지난 2012년 총선을 앞두고 비정규직 대책으로, 사내하도급 노동자들이 원·하청과 공동으로 교섭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때는 결과적으로 과반 의석을 얻지 못해 본회의에서 법안을 통과시킬 힘이 없었다고 변명할 수 있지만, 지금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10여년 전 일이라 기억을 못하는 듯, 원·하청 공동교섭 제도를 법제화하겠다는 주장이 민주당 내부에서 잘 들리지 않는다.

대학 입장에서는 여론의 눈치 탓에 할 수 없었던 일을 학생들이 알아서 해주니, 현재로서는 가장 바라던 모양새가 됐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고소·고발한 학생들이 주목받는 상황은 지난 15년간 고착화된 원·하청 관계의 구조적 문제를 지워버리기에 충분했다. 당장 겉으로는 구조적 문제의 핵심 당사자로 보이지 않으니, 결국 학생들만큼이나 학교도 '피해자'였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2030세대를 중심으로 꽤 힘을 얻고 있는 '나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남에게 피해를 입히면 안 된다는 논리'가 그런 식으로 은유되고 있는 셈이다.

내년이라고 다를까?
 
연세대학교 청소ㆍ경비노동자들이 지난 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백양로에서 집회를 열고 임금인상과 정년퇴직자 인원 충원, 샤워실 설치 등을 요구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청소ㆍ경비노동자들이 지난 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백양로에서 집회를 열고 임금인상과 정년퇴직자 인원 충원, 샤워실 설치 등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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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당장 내년이라고 다를까? 연세대 청소·경비노동자들은 자신의 권한 밖이라는 말만 되풀이할 하청업체와의 교섭을, 원청 사업장에서 쟁의권을 행사하기 위한 과정상의 명분 정도로 여길지 모른다. 그 다음으로 학내에서 16년째 농성을 이어갈지도 모르고, 그 사이 학습권 침해가 또다시 대두될지도 모른다. 이 모든 사태의 해결 주체인 연세대는 여전히 피해자로 둔갑된 채 말이다. '국제노동기준'보다 더 구속력을 가진 국내법이 당사자임에도 당사자가 아니라고 아직 인정하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자 결말은 아닐까?

이 상황은 연세대만의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기업화된 지 오래지만 아직 진리의 전당이라는 별칭이 남아 있는 대학에서, 그것도 과거에는 지식인이라 불렸던 대학생이 사회적 약자인 청소·경비노동자들을 고소·고발한 초유의 상황이 주는 반전 탓에 유독 돌출됐을 뿐이다. 혹시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1미터짜리인 철판 안에 자발적으로 들어가 있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의 사진을 본 적 있는가? 하청업체들과의 교섭 결렬로 파업권을 얻은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은 현재 그들의 일터이자, 회사가 건조 중인 대형 원유 운반선 화물창에서 파업 중이다.

그들의 파업 이유는 조선업 불황과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그동안 삭감 또는 동결돼 왔던 임금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서다. 그들의 임금을 결정하는 곳은 하청업체들이 아니라 원청인 대우해양조선이다. 그러므로 대우해양조선과 직접 교섭이 필요하지만,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오히려 그들의 파업으로 회사가 수천억 원의 손실을 얻었다며 피해자임을 자처했다.

지난 6일부터는 고려대 청소·경비·주차관리 노동자들이 학교 본관 안에서 밤샘 연좌농성중이다. 그들도 연세대 청소·경비노동자들과 같은 산별노조(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소속으로, 연세대 노동자들과 같은 요구안을 주장 중이다. 연세대처럼 하청업체들과의 교섭이 결렬돼서 쟁의권을 확보한 것도 똑같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해당 농성에 대해 고려대 측은 용역업체에 이렇게 공문을 보냈다고 한다. "이 같은 행위는 형법상 업무방해, 주거침입, 집회·시위법 위반에 해당해 형사처벌 대상이며 이로 인한 피해 발생시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말이다. 역시나 '피해'부터 이야기한다.

이 사회의 수많은 하청노동자들은 원청 사업장에서 쟁의행위를 하는 순간, 형법상 '가해자'가 될 위험에 항상 놓여 있다. 원청의 판단 없이는 하청이 아무 결정도 내릴 수 없는 구조적 현실에서, 하청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원청 사업장에 가서 저항하는 일이 전부다. 그렇지 않으면 원청은 뻔뻔하게 하청노동자들과 관련이 없다며 버틸 것이 뻔하다. 겉보기와는 다르게, 하청노동자들의 고용조건을 최종 결정하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말이다. 어쩌면 이 사회가 하청노동자를 가해자로 내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조하는 기업가와 관료, 정치인, 판검사 등은 왜 원·하청 간의 노동문제 앞에서만큼은 '로컬 스탠더드'를 고집하는 걸까? 그 의도가 뭐든 지금도 수많은 원청 대기업과 대학들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그 이분법적 대치가 여전히 여론에 잘 먹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연장선상에서 기업과 자본에 유리한 흐름을 만들어내기 때문일 터다. 여러 모로 대한민국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인 게 분명해 보인다.

태그:#청소노동자, #경비노동자, #연세대, #원하청 공동 교섭, #쟁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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