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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31일 까미노 4일차
Almaden->El real de la Jara 13.1km


잠결에 목이 아픈 게 왠지 수상하다. '초반인데 아파서 중단하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라고 생각하며 긴장이 되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종합감기약 2알을 먹고 평소보다 건강한 식단으로 든든하게 아침을 차렸다. 계란과 방울토마토, 오이를 챙겨 먹고 남은 건 도시락으로 쌌다.

아침 식사를 하며 'peregrino online' 앱에서 추천하는 코스를 참고하여 그날 걸을 거리를 정하는데, 그동안은 앱에서 추천해 주는 거리를 참고하여 20~30km를 걸었다. 그러나 오늘은 무리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앱 추천 일정대로 13.1km만 걷기로 했다. 먹구름이 잔뜩 드리운 가운데 한편에선 하늘이 벌게지며 동이 터 온다. 강렬한 빛이 느껴지지만 해는 보이지 않고 흐리기만 한 묘한 날씨다.
 
출발할때 섬머타임으로 8시 10분쯤의 모습, 동트는 모습이 강렬하다
▲ 새벽 출발할때 섬머타임으로 8시 10분쯤의 모습, 동트는 모습이 강렬하다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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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걱정이 고마웠다

출발 후 한 시간 정도 지나자 빗방울이 떨어진다. 나는 큰 나무 밑으로 가서 얼른 비옷을 꺼냈다. 배낭을 멘 채 그 위로 비옷을 입어야 하는데 혼자서는 잘 안 된다. 친구는 어느새 저 멀리 걸어가고 있다. 비옷은 목과 배낭 사이에 걸려 내려가지 않았고 혼자 끙끙대며 입었다 벗기를 반복하는 사이에 10여 분이 흘렀다. 겨우 비옷을 제대로 챙겨 입고 이삼백 미터쯤 갔으려나?
 
목장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걷는다
▲ 까미노길 목장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걷는다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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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참 앞에 가 있을 줄 알았던 친구가 그 자리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는 나를 보고 안심과 푸념이 섞인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왜 그렇게 늦으셨어요? 무슨 일 있으셨어요? 안 오셔서 엄청나게 걱정했어요. 길을 잃어버리신 건지, 다치신 건지, 혹은 또 다른 일이 있으신 건지, 찾으러 가야 하는 건지, 가다가 길이 엇갈리면 어찌해야 할지, 가족들에게 연락해야 할지를 심각하게 고민했어요."

친구는 매사에 설명이 자세하고 말이 빠른 편인데 나를 만나자 자기의 심각했던 걱정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비옷이 목덜미와 배낭 사이에 걸려서 내려가질 않는 거야. 지나가는 사람도 보이지 않아 도움을 받을 수도 없고, 그래서 혼자 끙끙거리다가 늦었어. 자기가 이렇게 걱정할 줄은 몰랐지."

친구는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았는데 내가 안보여서 기다리다가 '이렇게 많이 거리가 벌어질 리가 없는데...'라고 생각하며 그때부터 걱정이 되었다고 했다. 미처 생각지 못했던 친구의 걱정이 낯설기도 했지만 고마웠다. 그리고 이어서 걷기 시작했다.
 
목장에 소들이 먹을 물웅덩이가 있다
▲ 꽃길 목장에 소들이 먹을 물웅덩이가 있다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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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 따라가고 있음을 확인한 친구는 자신의 원래 속도대로 걷기 시작했다. 나는 또 뒤처져서 걸었다. 둘이 같이 걷는다고 하지만 걸음의 속도가 달라 나란히 걸을 수가 없다. 각자의 보폭대로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다. 생각이 많거나, 감정을 다스리지 않으면 에너지 소모가 많아진다. 한가롭고 여유로운 초원과 나무와 동물들을 보면 번잡한 마음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냥 혼자서 걷는 것만으로도 좋다.
 
밑둥껍질을 벗긴 코르크나무
▲ 코르크나무 밑둥껍질을 벗긴 코르크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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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길은 목장에 난 길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이 사유지여서 이렇게 문이 닫혀 있으면 열고 들어가고 들어간 다음 다시 닫아 놓아야 한다. 동물이 달아나지 않게 꼭 닫아야 한다.
▲ 목장출입문 까미노길은 목장에 난 길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이 사유지여서 이렇게 문이 닫혀 있으면 열고 들어가고 들어간 다음 다시 닫아 놓아야 한다. 동물이 달아나지 않게 꼭 닫아야 한다.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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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도시지만 있을 건 다 있다

마을에 들어서니 파란 하늘이 낯선 순례자를 반겨준다. 청명하게 맑은 하늘에 흰 구름, 하얀 벽에 붉은 지붕의 집들이 들어선 작은 마을이다. 마을풍경이 마음에 쏙 든다. 시에서 운영하는 공립 알베르게는 닫혔고 다음 알베르게까지는 700미터를 더 가야 한다. 사설 알베르게인 'Alojamiento del Peregrino'로 갔다. 2인실에 욕실까지 있다. 게다가 가격도 11유로.

짐을 풀고 식사를 하려면 중심가로 가야 하는데 오늘 찾은 식당은 'Casa el Capote de Galloso' 였다. 친구에게 물었다. "식당까지 1.1Km로 다소 멀어." "오늘은 짧게 걸었으니까 걸어가 보죠. 좋아요."

10여 분을 걸어서 식당에 도착했다. 난 새로운 메뉴에 도전하길 좋아해서 흔하지 않은 메뉴인 대구구이와 감자튀김을 주문했다. 와인1잔과 맥주 1잔도 주문했다. 친구는 엔살라다와 커피 1잔을 주문했는데 맛있다. 오늘 메뉴 역시 성공이다.
 
El Real de la Jara 마을 입구
 El Real de la Jara 마을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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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슈퍼에 해당하는 Tienda. 순례객들은 다음날 걷는데 필요한 먹거리나 생수를 구입한다.
▲ Tienda 동네 슈퍼에 해당하는 Tienda. 순례객들은 다음날 걷는데 필요한 먹거리나 생수를 구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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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식사를 하고 났더니 몸상태가 좀 좋아진 듯했다. 아직 초반이라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는 편이다. 식사를 마쳤는데 3시 10분정도로 시간이 매우 여유가 있었다.

친구는 오늘은 평균보다 적게 걸었으니까 동네를 한바퀴 돌아보는건 어떻겠냐고 묻는다. 친구의 말에 공감을 하고 천천히 동네 골목을 걸었다.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피사체를 무엇으로 잡고 찍던지 마음에 들었다. 하늘이 맑고 흰구름까지 있으니 안예쁠 수가 없다.

'El Real de la Jara'는 고도 500여 미터 높이에 있는 인구 1500여 명의 아주 작은 도시다. 중심가는 작아서 잠깐이면 돌아볼 수 있지만 있을 건 다 있는 곳이다. 물과 간단한 간식이나 과일을 살만한 미니 마트도 있고 경기장도 있고 공원도 있다. 마을은 아주 잘 관리된 듯이 보였다.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하고 예쁘다.

동네가 작아서 특별한 목적지을 정하지 않고 발길이 닿는 대로 걸었다. 골목 골목을 돌다 보니 동네 뒤로는 전망대(미라도르)가 있다고 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힘들이지 않고도 올라갈 만큼 전망대는 동네 바로 위에 있었다. 전망대에서 보면 작은 마을이 한눈에 쏙 들어오고, 건너편 언덕위에는 고성이 보인다.

난 내일 걸어가며 보겠단 생각으로 숙소로 돌아와 쉬었고 호기심이 많고 활동적인 친구는 고성으로 향했다. 오늘 쓴 돈은 알베르게 11유로, 점심 13.7유로, 마트 1유로 총 25.7유로.
 
마을 뒤에 있는 전망대에서 보면 마을이 한눈에 보이고 건너편 언덕에 성이 보인다.
▲ 전망대에서 본 전망 마을 뒤에 있는 전망대에서 보면 마을이 한눈에 보이고 건너편 언덕에 성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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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으로 먹은 대구구이와 감자튀김, 엔살라다(케이준샐러드와 비슷), 카페콘레체(카페라떼)
▲ 점심 점심으로 먹은 대구구이와 감자튀김, 엔살라다(케이준샐러드와 비슷), 카페콘레체(카페라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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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산티아고 순례길, #EL REAL DE LA JARA, #미라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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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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