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악카펠라>의 한 장면.

MBC <악카펠라>의 한 장면. ⓒ MBC

 
항상 남들을 더 빛내주는 조연, 작품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악역의 이미지에 익숙했던 배우들이었지만 이날만큼은 인생에서도 무대에서도 누구보다 빛나는 '주연'이었다. 프로젝트 배우 아카펠라 그룹 '도레미파(오대환, 김준배, 이호철, 이중옥, 현봉식, 최영우, 던밀스)'가 처음이자 마지막 공연에서 환상의 호흡을 선보이며 성공적인 피날레를 장식했다.
 
7월 7일 방송된 MBC 예능 <악카펠라> 6회에서는 도레미파의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 특별 공연기가 그려졌다. 영화제 개막식 오프닝 무대를 책임지게 된 도레미파는 디데이 4일을 앞두고 대학로 공연장에서 지인들을 초대하는 프리미어 시사회로 최종 점검에 나섰다. 가수 테이, 개코, 딘딘, 박준형, 넉살, 배우 황석정, 황영희 등 다양한 지인들이 도레미파를 응원하기 위하여 찾아왔다.
 
키즈카페 공연 이후 처음 관객들 앞에 선 도레미파 멤버들은 다소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도레미파는 첫 곡인 '신세계 OST-Big sleep'를 기대 이상의 화음으로 소화해내며 순조롭게 출발하는 듯했으나, 이어진 노래에서 연달아 실수가 쏟아져 나왔다.
 
'상어가족' 공연에서 멤버들은 각자 흥은 넘쳤지만 제각기 따로노는 음정과 박자에, 끼어들 타이밍을 놓친 이호철의 파트가 아예 생략된 채 노래가 끝나는 등, 대환장 파티가 펼쳐졌다. 급기야 이중옥은 제 멋대로 '노래 끝'을 외치며 공연을 중단했고 지인들은 일제히 박장대소했다.
 
지인들은 각자 다양한 반응으로 감상평을 전했다. 뮤지션인 개코는 "화음이 잘맞을땐 놀라웠고 잘 안맞을 때는 되게 무서웠다"는 촌철살인의 평가를 남겼다. 딘딘은 "오대환 형님의 베이스는 아마추어 느낌이 아니었다"고 극찬하면서도 "화음이 하나씩 얹어지면서 '아, 재밌는 프로구나, 이거 예능이었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디스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배우 안창환은 "서로 뭔가 들으려고 계속 집중하는 모습이 눈물이 났다"며 의외의 호평을 남겼다. 반면 안창환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한 황석정은 "사회를 향한 경종이 아닌가 싶다. 모자람, 혼돈, 카오스가 주는 위로가 있다"며 난해한 감상평을 남기더니 급기야 자리에서 일어나서 사람들과 일일이 아이컨택트를 하며 장황한 넋두리를 이어갔다. 데프콘은 "황석정이 3년 만의 외출이라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서 그런다"고 설명하며 양해를 구했다

황영희는 "저렇게 생긴(?) 사람들이 집중해서 열심히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박준형은 도레미파 맏형 김준배와 동갑내기라는 사실을 듣고 놀라움을 드러내면서도 "근데 계속 존댓말이 나오게 된다"고 고백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박준형은 "준배씨도 노래 못한다. 근데 자신감을 가지고 하니까 멋있거든, 이호철도 그렇게 하면 된다"며 격려했다.
 
가장 뜻밖의 반응은 테이였다. 공연 내내 눈물을 흘렸다는 테이는 "멤버들이 진짜 백퍼센트 집중하고 있는 표정들이 보였다. 음이 나가고 안 나가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진심이 느껴져서 울컥했다. 이런 게 내가 하고자했던 진심어린 음악이라는 생각도 들었다"며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지인들의 따뜻한 응원과 격려에 리더 오대환을 비롯하여 도레미파 멤버들의 눈시울도 어느새 촉촉해졌다. 데프콘은 "테이가 흘려준 소중한 눈물을 잘 모아서 저희가 예고편에 쓰겠다"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유쾌하게 전환시켰다. 중간 평가 무대를 마친 도레미파는 지인들과 훈훈하게 인사를 나누며 성공적인 공연을 다짐했다.
 
전주국제영화제 개막 하루 전, 도레미파와 스승 메이트리 멤버들까지 모두 전주에 집결했다. 멤버들은 숙소에서 모두 실전처럼 해가 질 때까지 끊임없이 최종연습을 진행했다. 공연 당일날이 되어 매니저 데프콘과 정형돈도 합류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개막식 무대인 전주돔에 도착한 멤버들은 2300여 석이나 되는 규모를 실감하고 일제히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대기실에서 연습하고 있던 멤버들에게 이중옥의 작은 아버지인 이준동 전주영화제 집행위원장(영화감독 이창동의 동생)이 방문했다. 이준동 위원장은 "다들 기대가 아주 크다. 배우들이 주요 구성원인 영화제인만큼, 도레미파가 무대를 휘어잡아주지 않을까"라며 덕담을 건넸다. 도레미파의 공연이 확정되면서 다른 무대 섭외도 중단했다고. 덩달아 부담감이 더욱 커진 도레미파는 억지 미소를 띄면서도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데프콘이 "조카 이중옥의 공연을 보면 깜짝 놀라실 것"이라고 장담하자 이준동 위원장은 조카를 지그시 바라보며 "정말 놀라고 싶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난감해진 이중옥은 "여러 종류의 놀람이 있으니까요"라고 둘러대며 웃음을 자아냈다.
 
데프콘은 즉석에서 숙부와 조카간의 포옹을 제안했다. 두 사람 모두 손사래를 치며 거부했지만 김준배가 이중옥을 번쩍 안아들어 이준동 위원장의 코앞까지 배달했고, 두 사람은 결국 쑥스러운 표정으로 가볍게 포옹하여 억지로나마 훈훈한 광경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도레미파 멤버들은 무대 의상으로 환복하고 전의를 다졌다. 메이트리가 대기실을 찾아와 거북이의 '비행기'를 아카펠라로 선보이며 긴장한 멤버들을 다독였다.
 
 MBC <악카펠라>의 한 장면.

MBC <악카펠라>의 한 장면. ⓒ MBC

 
개막식이 시작됐다. 이중옥의 두 숙부인 이창동 감독과 이준동 위원장을 비롯하여 많은 배우와 감독, 영화인들이 자리를 채웠다. 배우 장현성-유인나의 사회로 진행된 개막식에서 정형돈과 데프콘이 먼저 등판하여 축하무대를 선보이며 분위기를 띄웠다. 도레미파는 멤버별 소개 영상이 나가는 동안, 무대 뒤에서 마지막으로 파이팅을 외치며 즐기는 공연을 다짐하고 무대로 올랐다.
 
막내인 래퍼 던밀스가 오프닝을 장식했다. 던밀스는 영화 <신세계>의 명대사를 패러디하여 "아카펠라하기 딱 좋은 날씨네, 할 때 하더라도 음 한번 맞추는건 괜찮잖아?"라는 대사를 실수없이 깔끔하게 소화해내며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호철이 전달해준 피치파이프를 던밀스가 연주한 것을 시작으로 도레미파는 첫 곡 'Big sleep'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관객들의 감탄을 이끌어냈다.
 
이어 검은 외투를 벗어던지고 하얀 연미복을 드러낸 도레미파는 두 번째 노래인 싸이의 '예술이야'를 열창하며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흥겨운 리듬과 멤버들의 쇼맨십에 지켜보던 관객들의 얼굴에 하나둘씩 미소가 피어올랐다. 오대환과 던밀스의 리드 하에 점점 자신감을 찾은 멤버들은 과감한 제스츄어와 애드리브까지 선보이며 무대에 깊이 몰입했다. 어느새 관객들은 뜨거운 박수로 함께 호흡을 맞추며 무대의 열기에 빠져들었다.
 
마지막 노래로 스승 메이트리와 함께하는 '라이온킹 ost-서클 오브 라이프(Circle of life)' 무대를 선보였다. 이중옥의 열창으로 시작된 도입부에 이어 도레미파와 메이트리 멤버들은 70여 일간의 노력을 결산하는 무대에서 최선을 다한 하모니를 선보였다. 중간에 이호철과 김준배가 박자가 놓치거나 밀리는 실수도 있었지만, 메이트리가 노련하게 중심을 잡아줬다. 노래의 가사이기도 한 '희망을 안고 우리는 간다'는 메시지는 그간 도레미파의 도전 여정을 함축하는 듯한 표현으로 먹먹함을 안겨줬다.
 
무대가 끝난 순간, 잠시 몇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이어 관객석에서 하나둘씩 파도같은 박수와 환호가 쏟아져나왔다. 평소 극중에서의 악역 이미지는 자취를 감춘 아름답고 따뜻한 하모니에 관객들은 예정에 없던 앙코르까지 쏟아내며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메이트리가 대신 나서서 영화제 맞춤 선곡인 <주말의 명화>(MBC) OST를 아카펠라로 선보이며 아름답게 대미를 장식했다.
 
성공적으로 모든 무대를 마친 도레미파와 메이트리 멤버들은 공연장 밖으로 나와서 뜨거운 포옹을 나누며 서로를 격려했다. 특히 김원종과 오대환은 진한 여운에 눈시울을 붉혔다.
 
메이트리 강수경은 "생각보다 너무 잘했다. 이때까지 고생한게 주마등처럼 스쳐가면서 너무 대견했다. 여러분들이 진짜 연습으로 이뤄낸 결과라서 자랑스럽다"라며 칭찬했다. 이중옥을 전담 지도했던 임수연은 "처음 시작할 때 장문의 문자를 보내서 '선생님 정말 막막하네요'라고 하더라. 하지만 오늘은 중옥님이 제게 최고의 스타셨다."라며 극찬을 보냈다. 감동한 이중옥은 눈물을 흘렸다.
 
 MBC <악카펠라>의 한 장면.

MBC <악카펠라>의 한 장면. ⓒ MBC

 
<악카펠라>의 여정을 마무리하며 이중옥은 "뭔가를 같이 하고 있다는 게 활력이 넘치더라. 이런 게 요즘 있었나 싶었다"고 밝혔다. 현봉식은 "이 경험들이 너무 좋았다. 우리들 나름의 성장드라마였다"고 자평했고, 이호철은 "귀한 사람을 얻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감사하는 말로 다 표현이 안 될 정도"라고 이야기했다. 김준배는 "가족같은 느낌"이라고 전했고, 오대환은 "보고만 있어도 미소가 지어진다"며 멤버들을 향한 깊어진 애정을 드러냈다.
 
<악카펠라>는 영화와 드라마속에서 주로 강렬한 이미지로 각인된 악역 전문 배우들과, 성스럽고 감미로운 아카펠라(Acapella)라는 음악 장르와의 이색적인 반전 조합으로 눈길을 끌었다. 반주없이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음악을 만들어내는 아카펠라는 오직 몸짓과 언어로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표현해내는 배우들의 정체성과도 닮아있다.
 
도레미파 멤버들은 본업인 연기에서는 항상 남들을 빛내주는 조연이거나, 작품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해야하는 악역 이미지에 익숙한 배우들이었다. 하지만 <악카펠라>에서 이들은 모두가 동등한 '공동의 주연'이었고, 강렬한 인상과 극중 이미지 뒤에 가려진 유쾌하고 인간적인 반전 매력을 선보이며 호감을 자아냈다. 연출을 맡은 채현석 PD도 온라인 제작발표회에서 "출연자들이 이 프로그램에서만큼은 조연이 아니라 주연으로 서길 바랐다"며 애정을 드러낸바 있다.

<악카펠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도레미파 멤버들의 음악적 성장기를 비롯하여, 대중적 이미지와 현실적 생계 문제 등으로 고민할 수밖에 없는 배우들의 고충을 그려내며, 스타들이 출연한 배우 예능에서는 볼 수 없는 따뜻하고 서민적인 공감대를 자아냈다.
 
험악한 인상 때문에 가만히 있어서 신고를 당하거나 불심검문을 당했다는 악역 배우의 고충, 연기자임에서도 항상 거친 캐릭터만 맡느라 자녀에게 보여줄 만한 작품이 없었다는 고백, 비슷한 처지에 있는 동료에게 자신만 작품에 캐스팅된 소식을 차마 말하기 미안했다는 일화. 대학로에서 무명 연기자로 오랜 설움을 버텨내며 뒤늦게 빛을 발하기까지의 현실적 애환 등은, 악역 배우들 역시 우리와 같이 전쟁같은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이웃이라는 사실을 공감하게 했다.

초보 아카펠라 그룹으로서 도레미파가 전해준 진정한 감동은, 뛰어난 가창력이나 기교가 아닌, 하나의 팀이 되어 진심으로 무대와 도전을 즐긴 배우들의 진정성에서 나왔다. 너무 짧께 끝난 아쉬웠던 도레미파의 여정은, 앞으로 더 많은 조연배우들과 예능원석들을 재발굴하데 마중물이 될 수 있을 만한 가능성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악카펠라 도레미파 전주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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