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쓰 캘린더> 영화 포스터

▲ <데쓰 캘린더> 영화 포스터 ⓒ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되어 휠체어에 의존한 채로 강아지 마빈과 살아가는 전직 발레리나 에바(유제니 드루앙 분)는 친구 소피(오노린 마니에르 분)로부터 오래된 어드벤트 캘린더를 생일 선물로 받는다. 거기엔 '1. 일력마다 사탕이 들어있고 한 번에 먹을 것', '2. 마지막 문을 열 때까지 모든 규칙을 지킬 것', '3. 이걸 버리지 말 것'이란 규칙과 함께 어길 시엔 죽을 것이라 적혀 있다. 

캘린더를 열 때마다 나온 초콜릿과 캔디가 예상치 않은 행운을 선사하자 에바는 점차 캘린더의 메시지에 집착하게 된다. 급기야 캘린더는 에바에게 다시 걸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 유혹하고 걷잡을 수 없는 저주의 위험이 에바와 그녀의 주변으로 번지기 시작한다.

'어드벤트 캘린더'는 성탄절이 오기 전 4주간 이어지는 그리스도 교회력 절기인 대림절에서 유래한 것으로 19세기 독일에서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대림절을 세기 위한 달력을 처음 만들면서 시작했다고 알려진다.

오늘날엔 날짜마다 작은 물건이 들어있는 어드벤트 캘린더를 주로 판매하는데 보통 1일부터 25일까지 날짜에 맞는 칸을 열면 그림, 시, 이야기, 장난감, 간식이 들어있는 식으로 구성되어 매일 새로운 선물을 받으며 성탄절을 기다리는 재미를 준다.
 
<데쓰 캘린더> 영화의 한 장면

▲ <데쓰 캘린더> 영화의 한 장면 ⓒ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프랑스의 시인 샤를 보를레르의 "인위적인 행복을 맛보려면 그것을 삼키려는 용기가 필요하다"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영화 <데쓰 캘린더>는 어드벤트 캘린더를 공포의 소재로 삼은 작품이다. 연출은 벨기에 출신의 배우 겸 감독인 파트리크 리드로몽이 맡았다. 그는 배우로 활동하다 2012년 코미디 영화 <데드 맨 토킹>으로 연출 데뷔를 했고 2018년에 만든 단편 영화 <주유소>는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초대를 받은 바 있다. <데쓰 캘린더>는 그의 2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영화 속에 나오는 어드벤트 캘린더는 소유자의 욕망을 실현해주는 대가로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요구한다. 소원을 이루려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데쓰 캘린더>의 설정은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 영국의 작가 윌리엄 위마크 제이콥스의 단편 소설 <원숭이 손>, 리처드 매드슨의 단편 소설 <버튼, 버튼>과 이것을 영화화한 <더 박스>(2009), TV 시리즈 <환상특급>, 영화 <위시마스터> 시리즈와  <위시 어폰>(2017) 등 숱한 문학, 영화, TV 드라마에서 다루었던 것이라 새롭지 않다. 문제는 어떤 내용을 통해서 '당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무엇을 기꺼이 포기할 것인가?'란 질문을 하느냐다.

에바는 하반신 마비로 인해 숱한 좌절과 차별을 겪는다. 직장에선 장애인이라 무시당하기 일쑤다. 수영장에서 만난 남자는 그녀의 장애를 보고 겁을 먹고 어떤 남자는 성폭행을 하려고 달려든다. 아버지는 치매에 걸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며 계모는 재산을 가로챌 궁리만 한다.

이처럼 영화는 냉혹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에바를 묘사하는 데 정성을 기울여 보는 이로 하여금 다시 걷고 싶은 그녀의 '욕망'에 연민하도록 이끈다. 그리고 소원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가족, 친구, 낯선 사람의 희생이란 '대가'를 이해하게끔 만든다. 
 
<데쓰 캘린더> 영화의 한 장면

▲ <데쓰 캘린더> 영화의 한 장면 ⓒ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어드벤트 캘린더에 깃든 악마의 이름은 '나'를 의미하는 독일어 대명사 '이치(ich)'다. 자신의 욕망을 거울(영화 속엔 거울을 공포의 장치로 사용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처럼 비추었다는 뜻이다. 관객은 에바가 처한 도덕적 딜레마를 보며 우리 내면에 감춰진 악마를 돌아보게 된다. 마지막 선택의 갈림길에서 "당신이라면 어떤 걸 고를 것인가?"라고 영화는 묻는다. 영화가 열린 결말을 선택한 이유는 아마도 선택을 관객의 몫으로 남기기 위함이라 생각한다.

<데쓰 캘린더>는 놓치기 아까운 공포(정확히는 초자연적 스릴러) 영화다. 친숙한 설정을 기반으로 하되 "프랑스, 벨기에 스타일의 공포(시드니 모닝 헤럴드)"와 "악마와의 거래를 소재로 하는 매혹적인 이야기(데일리 데드)"로 재미를 안겨준다.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고 도덕적 갈등을 겪는 유제니 드루앙의 연기도 훌륭하거니와 중세적 느낌이 물씬 풍기는 소품 어드벤트 캘린더도 인상적이다. 주인공의 사연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의 묘사도 탄탄하다. 에바를 사랑하는 사람 또는 에바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이치가 내리는 다양한 처벌 방법은 다소 관습적인 영화의 구조에 신선함을 더한다.

아마도 가까운 시일 내에 할리우드의 감독과 배우를 기용한 리메이크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제54회 시체스 영화제 판타스틱 파노라마 초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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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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