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국제평화영화제 방은진 집행위원장.

평창국제평화영화제 방은진 집행위원장. ⓒ 평창국제평화영화제

 
"뭐, 제 인생이 그렇죠! 가장 비가 세게 내리네요!"
 
올해로 4회를 맞은 평창국제평화영화제 개막식 날, 비바람을 헤치고 무대 위로 뛰어나온 방은진 집행위원장의 첫 마디였다. 평년보다 일주일 앞당긴 영화제 날짜와 장마가 겹쳐 궂은 날씨였지만, 밝게 상기된 그의 모습에서 해당 영화제를 만들고 성장시켜 온 원동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개막 이틀째인 24일 올림픽메달플라자에서 방 위원장을 만날 수 있었다. "비바람에 식겁해서 장소를 급히 옮겨 개막작을 상영하고, 리셉션 행사를 취소했는데 다음날부턴 날씨가 참 좋다. 어제 일이 꿈 같다"라며 그가 인사말을 건넸다. '위드, 시네마'(with, CINEMA)라는 슬로건으로 올해 총 28개국 88편의 작품이 상영되는데, 다른 국제영화제에 비해 다소 작아보일 수는 있지만, 그만큼 개성이 뚜렷하고 지역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특화된 행사가 꽤 알차다는 게 평창영화제만의 특징이다.
 
뿌린 씨가 싹을 틔우다
 
영화제를 3회 정도 운영하면 안정궤도에 오른다는 업계의 속설이 있다. 평창영화제 또한 1회부터 3회 때까지 뿌린 씨앗들이 싹을 틔워 하나둘 결실을 맺는 시기를 맞고 있다. 문화 인프라가 척박했던 강원도 내의 최초 국제영화제로서 세계 및 국내 영화인들의 교류의 장을 자처한 결과다. 야외상영 중심 행사라 지난 2년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도 무사히 오프라인 행사를 치러냈다. "올해엔 특별히 영화에 더 집중했다"라며 방은진 집행위원장이 운을 뗐다.
 
"국제경쟁과 단편경쟁에 들어온 작품들이 아주 세다. 위드 코로나, 뉴노멀이리는 키워드에 중점을 둬서 초청했는데 보시면 알겠지만 영화들이 다 좋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발단이 된 유로마이단 시위를 다룬) 개막작 <올가> 같은 경우엔 공을 많이 들여 어렵게 초청했다. 지난해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서 작가조합상을 받은 작품인데 평화영화제니까 감독님이 움직이신 거지. 상영 후 감독님이 전쟁 없는 세상이 됐으면 한다는 말에 관객분들도 크게 공감해주셨다.
 
그리고 그간 우리 영화제 피칭에 참여했던 영화들이 내년부터 하나둘 상영될 예정이다. 작년에 단편 경쟁에서 대상을 받은 임대청 감독님이 올해 피칭에 참여하더라. 우리를 거쳐 간 영화인들이 다시 찾아오니 반갑지. 관객분들의 호응도 커서 올해 모집한 (평창국제평화영화제 후원회원인) '핍스터' 클라우드 펀딩도 800프로를 달성했다."

 
야심 차게 올해 처음 도전하는 프로그램도 눈에 띈다. 대부분이 평창만의 지역 특색과 영화인을 중심에 두고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계방산, 어름치 등 평창 내 주요 캠핑장을 활용한 캠핑 시네마를 비롯해 강원, 광주, 대구, 대전, 부산, 인천, 제주 등 전국 7개 지역 영화인들이 중심이 된 명랑운동회도 진행된다.
 
"김진유 신임 정동진집행위원장 제안으로 지역 영화인들이 중심이 된 네트워킹 프로그램을 만들게 됐다. 정말 줄다리기, 이어달리기 등을 한다! 우승 상금은 영화 제작 지원을 위해 쓰인다. 야외공연도 선우정아, 10cm 같은 유명 뮤지션을 비롯해 조명섭, 김다현 등 지역민들을 위한 뮤지션도 초대했다. 야외무대 주변으로 버스킹 공연도 상시 열린다. 주민분들 반응이 좋다. 평창동계올림픽 때보다 실제적으로 매출이 올랐다고 지역 상인분들도 체감하시는 것 같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거리두기 방침을 지켰던) 지난해 총 관객이 1만 명 안팎이었다면 올해 두 배 정도가 찾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정도면 선전한 거라 생각한다."
 

실제로 평창영화제가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 한다는 게 수치로 증명되고 있다. 지난해 영화제 측이 강원도 등에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영화제 기간 체감매출액 평균은 평시보다 약 46%, 신용카드 매출액은 약 1억 7천만 원 가량 증가했다. KTX 승객 수나 대관령IC 통과 차량도 유의미한 증가폭을 보였다. 또한 지역 농가와 협업한 이벤트도 작년에 진행됐는데 방은진 위원장 특유의 넉살 덕에 강원산 파프리카가 순식간에 완판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지난해부터 평창국제영화제는 문체부가 주관하는 '국제문화예술행사 개최도시 시각이미지 개선사업'에 선정돼 국비 지원을 받고 있다. "해당 지원금으로 상영 공간의 음향 및 방음시설을 마련하게 됐다"라며 방 위원장이 설명했다.
 
 개막 이틀째인 24일 평창 올림픽메달플라자 메인 무대에서 뮤지션 선우정아가 공연하고 있다.

개막 이틀째인 24일 평창 올림픽메달플라자 메인 무대에서 뮤지션 선우정아가 공연하고 있다. ⓒ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처음엔 맨 땅에 헤딩, 이젠 안정적 시스템 구축돼"
 
멀티플렉스에서 상영관 없음, 상영관 아닌 곳에서 영화 상영. 평창영화제의 특성을 설명하는 문장이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강원도 최초 국제영화제로 자리매김해 성장할 수 있었던 건 방 위원장을 포함한 스태프들의 헌신 덕 아닐까. 강원영상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며 도내의 문화 인프라를 잘 이해하고 있던 그는 누구보다 문화의 힘을 믿고 있었다.
 
"도시 영화제의 멀티플렉스에서 보는 영화와 또다른 감흥이 있다. 음향이나 스크린은 우리나라 최고들에게 맡기고 있거든. 감자창고를 개조한 상영관에 들어가면 처음엔 감자 냄새가 훅 나는데 시간이 좀 지나면 적응된다(웃음). 처음엔 평창동계올림픽 레거시 사업으로 시작됐지만, 첫발을 디딘 이후 잘 성장하고 있다. 강원도가 남북으로 갈라진 유일한 동네다.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관계와 상관없이 경제적 교류는 가능할 수 있잖나. 특히 북한과 가까우니 인적 교류의 선봉이 될 수도 있고. 선댄스 영화제처럼 넒은 지리적 특징을 이용해 강원도 여기저기 순회 상영을 해왔다. 지금도 유효하다. 강원영상위원회와 힘을 모아 평창을 근거지로 강원도 관객분들에게 영화를 확장시키려는 게 핵심 계획이고 우리만의 경쟁력이다."


물론 변수 또한 있다. 강원도 예산이 절대적이기에 정치 사안에 따라 영화제 살림이 영향받을 여지가 있는 것. 세 번 연임했던 더불어민주당 최문순 도지사에 이어 당선된 국민의힘 김진태 신임 도지사 때문에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불참한 것에 대해 "아직 전임 임기가 끝나지 않아서 참석이 애매했을 것"이라며 방 위원장이 말을 이었다.
 
"우린 강원도에 가장 걸맞은 최초의 국제영화제를 만들었을 뿐이다. 무슨 정권이나 당선인에 따라 문화의 가치가 바뀌는 건 아니라고 본다. 정치인이 보기엔 강릉국제영화제와 합치라는 생각도 할 수 있지만 정체성이 전혀 다르다. 또한 대중영화의 오락적 기능과는 다른 영화제 만의 기능이 있다. 지금 세계가 전쟁으로 불안에 떨고 있고, 한반도 자체도 그리 좋은 분위기가 아닌데 그렇기에 평화 관련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고, 인권 영화가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전 세계 곳곳에서 우리와 같은 생각과 가치를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가 바로 이런 국제영화제다. 특히 평화라는 기치를 내걸고 남북 교류에 선봉이 되겠다는 게 우리 영화제의 정신이다. 평화 특별 자치도를 선언했던 강원도이잖나. 그 가치를 쭉 이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알고 보면 강원도는 모든 작품이 거쳐 가지 않은 게 없을 정도로 로케이션 1순위기도 하다. 산도 있고, 바다도 있고, 도로 협조도 잘된다. 강원영상위원회가 생기면서 로케이션 원스톱 서비스가 생겼다. 그만큼 한국 콘텐츠에 기여하고 있다."

 
방은진 위원장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약 4억 원의 영화제 예산이 줄어든 것과, 타 영상위원회에 비해 담당 지역은 월등히 넓지만 인원은 턱없이 부족한 강원영상위원회 인력 구조에 대한 지원을 호소했다.

방 위원장은 "없는 살림 아껴가며 이제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놓았다"라며 "4회가 되니 막상 외롭기도 하고 중압감도 생기는데 책임감이 크게 느껴진다.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라고 나름의 자신감을 드러냈다. 배우이자 감독, 그리고 영화행정인까지 대중의 큰 사랑을 받은 스타의 길이 아닌 스스로 길을 개척해 온 그다. "제 인생이 뭐 그렇죠"라는 자조가 다소 들어 있는 그 말엔 험지를 마다 않고 투신해 온 그의 인생 철학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영화제를 처음 만들기 위한 1년 6개월은 온전히 제 모든 걸 투자한 시기였고, 그때 가장 먼저한 게 김형석, 최은영 프로그래머를 모신 뒤 시스템을 만드는 거였다. 시간이 참 무서운 게 시스템이라는 게 정말 생기더라. 이젠 맨파워로 이 영화제가 돌아간다. 제가 다 나서지 않아도 팀별로 담당자들이 알아서 잘한다. 그 덕에 제가 연기도 종종 할 수 있었다. 최근 드라마 연출 계약도 했다. 아마 연말쯤 작품에 들어갈 것 같다. 저는 그냥 영화인이고 싶다. 행정가 뭐 그런 건 체질에 안 맞는다(웃음)." 
 
 평창국제평화영화제 방은진 집행위원장.

"지난해 총 관객이 1만 명 안팎이었다면 올해 두 배 정도가 찾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정도면 선전한 거라 생각한다." ⓒ 평창국제평화영화제

방은진 평창국제평화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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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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