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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씁니다.[편집자말]
몇 주째 우리 집 제라늄 화분에 꽃이 피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고민만 하던 차에, 식물상담소 '허밍 그린'에서 열린 '그린 라이프: 반려 식물 키우기와 케어의 노하우' 수업을 들었다.

사람마다 기질이 다르듯이 식물 역시 타고난 습성이 달라서 필요한 환경과 조건에 맞춰 끊임없는 관심으로 보살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식물의 원산지를 알아봐서 기후(온도와 습도)와 키우는 환경을 최대한 비슷하게 맞춰주면 좋다고 한다.

몰라서 죽였구나
 
제라늄 화분에 드디어 꽃이 피었다
 제라늄 화분에 드디어 꽃이 피었다
ⓒ 전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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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내가 기르는 식물의 고향이 궁금해 본 적이 없었다. 얼마나 무심했는지. 그러면서 식물이 왜 이렇게 잘 죽는지, 나는 식물을 키우는데 소질이 없다고만 자책했다. 풀 한 포기라도 생명을 돌본다는 것은 깊이 알아가고 다정함을 쏟는 일이구나 싶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식물은 광합성을 위해 햇빛과 물이 필요하다.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충분한 바람이다. 단지 창문만 열어놓는 정도가 아니라 잎이 흔들릴 정도여야 한다(통풍이 힘든 상황이라면 선풍기나 서큘레이터를 이용하면 좋다).

통풍이 원활해야 벌레나 곰팡이가 생기지 않는다. 무엇보다 식물이 바람을 맞으며 흔들릴 때, 식물은 땅에서 뽑히지 않고 똑바로 서 있기 위해 뿌리를 더 튼튼하고 깊게 내리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식물들도 환경에 적응하며 치열하게 삶을 살아간다. 이탈리아 식물학자 스테파노 만쿠소는 "식물은 동물보다 덜 발달한 존재도, 더 단순한 존재도 아닌 다양한 삶의 한 형태다"라고 했다.

식물은 동물과는 다르게 움직일 수 없다. 숨거나 도망갈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더 주어진 상황을 최대한 활용하고 모든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존재다. 그런 식물을 우리가 자연을 가까이 하고픈 욕심에 집에 들였다면, 알아보고 보살피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이번 식물 수업을 들으면서 나의 잘못된 상식이 깨질 때마다 내가 기르던 식물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식물이 앞으로 자랄 것을 생각해서 화분이 넉넉할수록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화분이 크면 식물이 양껏 물을 빨아들이고 남은 흙의 물 때문에 과습으로 뿌리가 썩기 쉽다. 그래서 뿌리 길이보다 조금 큰 화분에 심고, 계속 갈아주어야 한다. 아이가 몸이 크면 옷과 신발을 바꿔주듯이 말이다. 화분 받침도 치워야 한다. 화분 받침에 고인 물이 과습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물을 주는 시기 역시 식물의 종류에 따라 다르고 토기, 도자기, 플라스틱 등 화분 재질에 따라서도 다르다. 식물이 놓인 곳의 온도와 습도에 달라지는 것은 물론이다. '일주일에 한 번' 같은 방법이 있을 수 없는 이유다.

물을 줄 때는 커피 드립 하듯이 천천히 조금씩 그러나 충분히 준다. 더 중요한 것은 식물이 충분히 흡수하고 흙이 마를 시간을 충분히 주는 것이다. 어느 책에서는 물을 주고 싶을 때 '하루만 더 참고' 주라고 조언할 정도니까.

나는 지금까지 식물 잎이 조금만 쳐져도 목이 마른가 싶어 물부터 주고, 화분 흙에 손가락을 살짝 넣어봐서 마른 듯하면 물을 주었다. 하지만 잎이 처지는 원인은 다양하며 화분 속 흙은 여전히 젖은 상태일 수 있다. '그래서 멀쩡해 보이던 식물들이 어느 날 픽 쓰러져서 보면 뿌리가 물러있던 거였군'. 그렇게 죽어간 염좌, 아가판투스, 문주란... 지켜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뒤늦게나마 사과했다.

우리는 모두 의지하는 존재

독일의 원예학자 안드레아스 바를라게는 저서 <실은 나도 식물이 알고 싶었어>에서 부드러운 말이나 아름다운 음악을 들은 식물들이 통제 집단보다 번성한 실험결과를 보여준다. 사람이 말을 할 때 배출하는 이산화탄소가 식물에 좋은 작용을 한다는 과학적 사실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식물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이라면 자기가 아끼는 초록 친구들의 다른 모든 요구에도 귀 기울였으리라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물도 때맞춰주고 안성맞춤인 자리도 찾아주고, 비료도 알맞게 주었을 것이다. (64쪽)"
 
이제 '반려 식물'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우리는 모두 의지하는 존재다. 작은 초록 생명도 물과 흙, 빛과 공기의 도움이 필요하고, 우리 역시 말 없는 초록 존재에게 위로를 받는다. 우리가 식물에 애정을 쏟는 만큼 식물은 더 큰 긍정적인 에너지를 우리에게 주리라 믿는다.

식물 수업을 받고 집에 오자마자 수납장에 넣어두었던 커피 드립 포트(주둥이가 얇고 긴 주전자)를 꺼냈다. 예전에는 같은 날 한꺼번에 물을 확 주고 했는데, 커피 내리듯이 물을 담아 드립 하듯이 천천히 준다(물론 답답하다).

이제는 같은 제라늄 화분이어도 화분 하나씩 들여다보고 흙 상태를 보면서 날짜를 다르게 해서 물을 준다. 흙이 굳었으면 작은 삽으로 살살 깨서 솎아주었다. 그렇게 여러 날... 우리 집 제라늄 화분에 드디어 꽃이 피었다!

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씁니다.
태그:#중년, #반려식물, #원예, #분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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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으로 세상의 나뭇가지를 물어와 글쓰기로 중년의 빈 둥지를 채워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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