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녀>에서 백 총괄 역을 맡은 배우 조민수.

영화 <마녀>에서 백 총괄 역을 맡은 배우 조민수. ⓒ NEW


 

4년만에 공개되는 영화 <마녀>의 속편에서 조민수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었다. 초인을 만들어내기 위한 일종의 생체 실험인 '마녀 프로젝트'의 시작이자 끝인 닥터 백, 그리고 닥터 백과 쌍둥이 자매인 백 총괄을 연기한 그의 입장에선 두 캐릭터의 차별점을 두기 위해 치열한 고민을 해야 했을 것이다.
 
막상 공개된 < 마녀 Part2. The Other One >(아래 <마녀2>)를 두고, 8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조민수는 만족감을 드러냈다. "한국에서도 드디어 이런 히어로 시리즈가 나올 수 있다는 걸 실감했다"라며 이후 이어질 시리즈에 대해서도 기대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이야기 확장을 위한 가교 역할
 
그의 말대로 <마녀2>는 전편보다 더욱 만화적 요소가 강조됐다. 1편의 초인이었던 자윤(김다미)이 사라진 이후 그보다 월등한 능력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소녀(신시아)가 등장한다. 초인이 아닌 척 사람들을 농락했던 자윤과 달리 소녀는 진심으로 자신을 대하는 이들의 마음을 느낀다. 더불어 그를 없애려 하는 백 총괄과 중국 상해 지역의 토우 4인방, 그리고 소녀를 관리하던 책임자 미스터 장(이종석)을 향해선 순수한 적의를 드러낸다.
 
1편의 닥터 백이 생체 실험 집행자였다면 2편의 백 총괄은 일종의 기획자다. 성격 또한 이기적이고 베타적이었던 닥터 백과 달리 백 총괄은 속을 알 수 없는 정적인 인물. 분량이 적으면서 동시에 강한 이미지를 풍겨야 했던 두 캐릭터를 연기한 조민수는 나름의 철저한 분석 끝에 자신만의 연기를 해냈다.
 
"원래 1편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백 총괄은 없던 캐릭터였다. 근데 박훈정 감독님이 보충촬영한다며 대본을 보냈는데 그게 백 총괄이었다. 2주 안에 많은 얘길 하면서 급히 만들었고, 이번에 그 캐릭터를 안착시킨 건데 연기자 입장에선 (닥터 백과) 눈빛도, 대화 톤도 달라야 했기에 여러 생각을 하면서 연기했다. 대본에 나오진 않았지만, 닥터 백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고, 겉으로 표현은 안 하지만 더 무서운 인물이라고 해석했다.
 
(실험대상) 아이들을 부드럽게 대하는데 그 안에 무서움이 있는 거지. 말로는 괜찮다 하는데 뭔가 섬뜩함이 있다. 솔직히 백 총괄 이야기를 더 만들어 줬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웃음)."

 
 영화 < 마녀 Part2. The Other One >의 한 장면.

영화 < 마녀 Part2. The Other One >의 한 장면. ⓒ NEW


 
애초에 닥터 백과 백 총괄, 두 인물을 놓고 조민수는 평소 본인이 싫어하던 사람들의 면모를 투영했다고 말한 바 있다(관련기사: 총상 입는 장면까지... '마녀'에 온몸 던진 배우 조민수).

조민수가 설명을 좀 더 보탰다. "자기 자신의 아픔은 크게 알고 남의 아픔은 쉽게 생각하는 그런 이기적인 사람의 모습이 닥터 백에 있다면 백 총괄은 뭔가 소름 끼치는 인물"이라며 조민수는 "감독님이 원하는 것과 제가 준비한 거를 잘 밀착시키려 했다"라고 전했다.
 
<마녀> 시리즈를 애정하는 이유
 
1편의 자윤과 2편의 소녀에 대해서도 막힘 없이 자신의 해석을 전할 정도로 조민수는 열정적이었다. "기존 배우가 아닌 흰 도화지 같은 배우, 이미지가 소모되지 않은 배우를 발굴해 이야기를 이어가는 게 이 시리즈의 출발점이라 생각한다"며 그는 "1편이 분명한 목표를 두고 확 지르는 이야기였다면, 2편은 뭐가 설정이 많다. 무한하게 열려 있는 게 <마녀> 시리즈의 매력 같다"고 짚었다.
 
"4년 전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만 해도 이 영화를 호감으로 보는 시선이 많진 않았던 것 같다. '한국에서 이게 돼? 하는 분위기였지. '아니 왜 우린 할리우드 마블처럼 못해?' 그 얘길 감독님에게 했었다. 우스갯소리로 내가 '<어벤져스>는 왜 서양에서만 모아, 동양권에서도 모을 수 있잖아' 그랬다(웃음). 그렇게 툭 던지듯 말했는데 2편 대본을 보니 정말 그렇게 갈 수 있는 요건이 갖춰진 것 같더라."
 
이 이야길 하며 조민수는 여전히 첫 촬영 때마다 설레고 떨린다는 감흥을 전했다. 중년의 여배우로 누군가의 엄마, 아내 역할도 중요하지만 박훈정 감독의 <마녀>, 연상호 감독의 <방법> 시리즈같은 판타지물을 할 때도 뭔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고 그는 고백했다.
 
"솔직히 찢어지게 힘든 건 멜로지. 멜로도 해본 지 오래됐네(웃음). 감정을 쪼개 쓰는 거라 손끝이 찌릿할 때가 있다. 그건 그것대로 맛있고, <마녀>나 <방법> 같은 장르물은 현실과 밀착된 게 아니잖나. 내 안의 것이 아닌 다른 걸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 그걸 표현해내면 짜릿하다. 이 인물은 어떤 과거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영화 <마녀>에서 백 총괄 역을 맡은 배우 조민수.

영화 <마녀>에서 백 총괄 역을 맡은 배우 조민수. ⓒ NEW


 
<초미의 관심사> 같은 독립영화에서부터 판타지 장르물까지. 최근 들어 꾸준히 소환되는 자신을 두고 조민수는 "정말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다.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일수록 작품 기회가 줄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며 그는 새삼 최근의 활동을 통해 생각하게 된 연기 철학의 일부를 꺼냈다.
 
"문화를 소비하는 주요 세대가 2·30대잖나. 그래서 그들의 얘기를 다룬 작품이 많은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 어렸을 때 저도 정신없이 일했던 걸 돌아보면 선배들이 서포트해주는 역할을 하셨는데 그땐 미처 몰랐지. 내가 잘난 줄만 알았지. 그래서 지금 왜 50대·60대 이야기가 없냐고 뭐라 하면 심통만 부리는 셈이다. 물론 다양한 세대가 위로받을 수 있는 작품이 나오면 좋겠다는 기대는 하지.
 
그래서 <방법> 같은 작품을 만나면 신난다. 내가 모르는 걸 공부하는 거니까. 신내림 받은 사람도 만나 공부하고, 그렇게 안 해봤던 걸 하면 그리 좋더라. 과정의 재미가 있다. 첫 촬영 때의 떨림, 첫 대사를 위해 입을 열 때 짜릿함이 있다. <마녀>도 제겐 젊은 친구들이 절 기억할 수 있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됐다. 우리 나이는 결국 그 친구들과 멀어지기 십상인데 이름을 알릴 수 있게 되잖나. 너무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다.

저 정말 죽어라고 열심히 한다. 창피하게 살다 죽지는 말자 주의다. 많은 작품을 하진 못해도 하나하나가 다 기록이고 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이 산업이 되게 냉정하잖나. 기억해달라고 떼를 쓴다고 해주는 것도 아니고. 갑질 안 하고 열심히 하는 거다. 남들보다 1년 더 산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뭘까 생각하며 살려고 한다."
조민수 마녀2 김다미 신시아 박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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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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