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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사전투표 둘째 날인 지난 28일 오후 강원 춘천시 신사우동 사전투표소가 마련된 춘천북부노인복지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선거인이 어린 딸과 함께 투표하고 있다. 2022.5.28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사전투표 둘째 날인 지난 28일 오후 강원 춘천시 신사우동 사전투표소가 마련된 춘천북부노인복지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선거인이 어린 딸과 함께 투표하고 있다. 2022.5.28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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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 국가 독일이 존경받는 나라로 발돋움하는 데 걸린 시간은 60여 년에 불과했다. 오늘날 독일은 모든 지표에서 1위에 올라있다. 경제력은 당연하고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공동체를 위하는 의식수준은 놀랍다. 독일이 나치와 홀로코스트라는 어두운 과거를 딛고 일어선 배경에는 교육과 정치제도가 있다. 독일 국민들은 히틀러를 통해 선동이 초래하는 위험을 절감했다. 연동형비례제는 선동을 억제하고 다당제 기반을 마련한 제도다. 지난해 출범한 '신호등 연정'(사민당, 자민당, 녹색당)도 이런 결과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사민당과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주장하는 자민당이 정치성향은 달라도 공동정부를 꾸릴 수 있는 이유다.

성숙한 정치제도 덕분에 독일은 지방정부까지 다양한 정당 분포를 형성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무지개 연정'은 견제와 균형을 토대로 건강한 독일을 만든 비결이다. 독일에 비하면 한국 정치는 지독히 폐쇄적이다. 지난 70년 동안 정당 이름만 바꿨을 뿐 양당 독점 구도는 심화돼 왔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과 이재명에게 던진 표는 정확히 반으로 갈렸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주도하는 증오와 대결 정치는 이번 지방선거에도 되풀이되고 있다.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영남과 호남에서 양당 독점은 유독 심각하다. 무투표 당선자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가운데 영남과 호남에 집중된 건 이 때문이다. 견제가 실종된 김빠진 지방선거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6·1 지방선거에서 무투표 당선자는 509명(비례대표 포함)에 달한다. 기초 자치단체장 6명, 광역의원 106명, 기초의원 381명, 교육의원 16명이다. 전체 4132명 가운데 12.3%를 차지한다. 4년 전, 2018년 지방선거 때 무투표 당선자는 89명이었다. 이와 비교하면 무려 5.7배 급증한 수치다. 지방의원은 예산심의와 조례제정 권한을 갖고 지방정부를 견제해야 할 책임이 있다. 지방의원들이 무더기 무투표 당선됨에 따라 견제와 균형은 기대하는 건 어렵게 됐다. 무엇보다 무투표 당선자 대부분은 국민의힘과 민주당 소속으로 영남과 호남에 집중돼 있다. 해당 지역에서 정치 혐오와 무관심을 초래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무투표로 당선된 기초단체장 6명은 모두 호남과 영남이다. 대구 중구청장과 달서구청장, 광주 광산구청장, 전남 보성군수와 해남군수, 경북 예천군수다. 광역의원 무투표 당선자도 마찬가지다. 호남의 경우 전북도의회는 40명 가운데 55%에 달하는 22명이 무투표 당선을 확정지었다. 38명을 뽑는 전남도의회 또한 26명(68%)이 무투표 당선이다.

이들은 모두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민주당 강세 때문에 국민의힘은 아예 후보를 내지 않았다. 현재 전북과 광주‧전남지역 선출직 628명 가운데 보수정당은 한 명도 없다. 호남에서 경쟁은 공천경쟁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영남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민의힘 텃밭인 대구·경북 역시 무투표 당선자가 무더기로 나왔다. 대구는 광역의원 29명 중 20명(69%)에 달한다. 10명 가운데 7명이 선거도 치르기 전에 당선된 것이다. 경북도의회 또한 55명 가운데 17명이 무투표 당선됐다. 호남과 영남에서 무투표 당선자가 속출함에 따라 해당 지역 유권자들은 무력감에 빠졌다. 무투표 당선 예정자는 선거 운동이 금지되고 선거 공보도 발송하지 않는다. 유권자 입장에서 참정권과 투표권을 박탈당한 셈이다. 후보자 자질과 공약을 검증할 수 없으니 무기력하다. 유권자에 의해 당락이 결정되는 게 아니라 정당 공천에 의해 판가름되다보니 정치 무관심은 당연한 결과다.

특정 정당 쏠림을 막고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중·대선거구제 확대와 복수 공천 폐지에 답이 있다. 1~2인 선거구는 줄이는 대신 3~5인 선거구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제기돼 왔다. 여야는 대선 당시 이 같은 정치개혁 취지에 화답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자 미루다가 6.1지방선거에서 기초의원 지역구 30개만 시범 적용하기로 타협했다. 그나마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복수 공천하는 바람에 소수정당은 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3~5인 선거구에서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3~4명씩 공천했다. 5명을 뽑는 대구 수성구(마)의 경우 국민의힘(4명)과 민주당(2명)은 6명을 공천해 소수정당에게 지방의회 문턱은 높다.

3~5인 선거구를 늘리고 복수 공천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래서 설득력 있다. 그런데 충남·전북·전남은 오히려 2인 선거구를 늘렸다. 겉으로는 정치개혁을 외쳤지만 뒤로는 구태를 반복했다. 부산에선 선거구 획정위원회가 총 10곳을 4인 선거구로 주문했지만 시의회는 9곳을 2인 선거구로 쪼갰다. 이러다보니 전국 1030곳 기초의원 선거구 중 2인 선거구는 542곳(52.6%)에 달한다. 양당 독점 구도 아래서 소수정당은 후보 내는 게 여의치 않은 구조다. 더구나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당선 가능성이 없는 특정 지역에는 아예 후보를 내지 않았다. 전북(70명), 전남(57명), 경북(44명), 부산(35명), 대구(31명)에서 무투표 당선이 많은 까닭이다.

영국 언론인 존 캠프너는 <독일은 왜 잘하는가>라는 책에서 성숙하고 부강한 나라, 독일의 비밀을 언급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다양성을 토대로 갈등을 조절하고 균형점을 찾아가는 독일 정치에 그 답이 있다. 우리 정치도 다양성을 확보하고 이를 토대로 국가 발전을 도모할 때다. 중·대선거구제 확대와 복수 공천 금지는 그 마중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입니다. 이 글은 <한스경제>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연동형비례제, #무투표 당선, #양당 독점 구도 , #중대 선거구제 확대, #정치 무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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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 여행, 한일 근대사, 중남미, 중동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중남미를 여러차례 다녀왔고 관련 서적도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중심의 편향된 중동 문제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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