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헤어질 결심>의 주역들.

영화 <헤어질 결심>을 연출한 박찬욱 감독. ⓒ CJ ENM

 
엇갈린 운명과 사랑의 감정이 박찬욱을 만나니 또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영화 <헤어질 결심>을 간단히 표현하자면 사랑을 감지한 두 사람이 실행력의 차이로 안타까운 결과를 맞는다는 정도겠지만, 많이 부족하다. 남편을 살해한 용의자로 지목된 여자, 그를 조사하는 형사 사이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감정 변화와 관계의 전복이 박찬욱 감독 특유의 미장센을 만나 깊은 애틋함을 불러일으킨다.

23일 제75회 칸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후 평단의 호평이 이어지는 가운데 24일 팔레 데 페스티벌의 한 호텔에서 박찬욱 감독을 만날 수 있었다.
 
미국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 촬영 중 영국에 놀러 온 정서경 작가와 다음 영화 이야기를 하다 나온 아이디어였다.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이 평소 탐독하던 소설 <마르틴 베크> 시리즈에, 고전영화 <밀회>, 그리고 가수 정훈희의 노래 '안개' 또한 주요한 영감의 원천이 된 작품이기도 하다.

박찬욱 영화의 변곡점

기본적으로 멜로 서사인데 왠지 현대 사회와 조금 거리를 두고 있는 듯한 두 남녀가 격정적인 내면의 소통을 통해 서로가 본능적으로 짝임을 인지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간 말초적 감각을 건드리며 관객에게 감흥을 불러일으키곤 했던 감독의 전작과는 결이 많이 다르다. 박찬욱 감독은 "관객분들 스스로 들여다보게끔 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분명 시작할 땐 이전 영화와 달라야겠다고 의식했다. 그러다 각본 초기 단계에선 이미 그 생각에 익숙해져, 스토리에 어울리는 형식이 뭔지 그 고민만 남기에 전작과 달라야겠다는 생각은 안 하게 되지. 자극적인 건 줄이자는 생각이 있었다. 전부터 제 영화를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영화로 표현했는데 그에 비해 이번 영화는 감각적인 면이 아주 없진 않지만 관객분들이 다가오게끔 만들고 싶었다."
 
그렇기에 노골적 폭력이나 섹스 등에 대한 과감한 묘사는 이번 영화에선 찾을 수 없었다. 다만 주인공인 형사 해준(박해일)이 남편 살해 용의자 서래(탕웨이)를 만나면 만날수록 느끼는 편안함과 어떤 설렘, 나아가 에로틱한 부분이 일상의 소품이나 어떤 행동을 통해 상징적으로만 제시된다. 이는 소위 클래식 누아르로 표방되는 장르와도 일맥상통한다.

23일 프리미어 시사에서 상영 직후 박 감독은 "이렇게 지루하고 올드한 영화를 봐주셔서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영화 <헤어질 결심> 관련 이미지.

영화 <헤어질 결심> 관련 이미지. ⓒ CJ ENM

 
"이런 영화를 만들게 된 특별한 사건이나 심경 변화는 없었다. 고전적인 품위를 가진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했다. 그때 노래 '안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노래가 주제곡인) 김수용 감독님의 영화 <안개>는 시나리오를 쓰는 중에 보게 됐다. 거기 나오는 윤정희 배우가 매우 모던하잖나. <안개>의 원작인 소설 <무진기행>과는 많이 다른 뭔가 앞서간 면이 있었다. 그 영화가 <헤어질 결심>에 전혀 영향을 안 줬다고 할 순 없지. 그리고 <밀회>라는 영화는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제겐 마치 어른스러운 사랑의 원형처럼 남아 있는 작품이다."
 
현대인치고는 욕망에 찌들지 않은 품위가 있는 인물들, 해준과 서래를 표현하기 위해 탕웨이와 박해일은 박찬욱 감독에겐 나름 간절한 캐스팅이었다. 애초부터 여성이 주인공인 서사였고 탕웨이를 점 찍은 상태로 기획했기에 시나리오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배우들을 만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두 배우 모두 고민의 시간이 길지 않았다.
 
한국어가 익숙치 않은 탕웨이는 대사만 단순히 외우는 게 아니라 직접 문법을 공부하면서 의미를 익혀갔고, 박해일은 특유의 신중한 분위기를 담아 대사를 표현했다. 두 캐릭터의 대사가 문어체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여기에 더해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출연진에 관객이 다소 놀랄 여지도 있다. 영화 후반부 두 번째 살인 사건이 벌어지며 해준의 후임 경찰 역으로 개그맨 김신영이 등장한다. 박정민 또한 짧지만 특정 사건을 촉발하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이에 박 감독은 "<웃찾사> 시절 '행님아'라는 코너를 너무 좋아했고 (김신영이) 불세출의 천재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 생각이 해가 지나도 바뀌지 않았다"라며 "박정민씨는 이번 기회에 알아놓고 싶었다. <시동>이라는 영화를 보고 좋아하게 됐다"라며 섭외 이류를 밝혔다. 
 
해당 영화가 칸영화제에서 호평받게 되며 박찬욱 감독 또한 개봉 이후 관객의 반응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칸영화제 공식 데일리 소식지 <스크린>은 24일 현재까지 공개된 경쟁부문 12편의 작품 중 가장 높은 평점인 3.2점을 <헤어질 결심>에 부여했다.
 
한편 영화는 오는 6월 29일 한국에서 개봉한다.  
헤어질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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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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