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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5일 경기도의회 앞에서 열린 중대선거구제 도입 촉구 기자회견
 지난 4월 15일 경기도의회 앞에서 열린 중대선거구제 도입 촉구 기자회견
ⓒ 정의당 경기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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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개혁이 화두다. 대선 이후 한 언론사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지지한 이유로 '정치개혁 공약이 마음에 들어서'라는 답변이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놀랐던 기억이 난다. 구체적인 정치개혁의 내용은 다당제, 기초의회 3~5인 선거구 확대, 연동형 비례대표제, 결선투표제 등이다.

최근 민주당이 장악한 경기도의회에서 선거구 쪼개기와 같은 언행불일치가 자행되는 점을 볼 때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의 공약이 진심이었는지 심히 의심이 가지만, 어쨌거나 이런 조사결과는 생각보다 많은 유권자가 정치개혁을 꽤나 중요한 의제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결선투표제는 개헌이 필요한 사항이다. 약간의 논란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헌법학계에서는 대개 개헌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는 분위기다. 개헌이 필요한 사항이라니 분명히 쉽게 도입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다. 정치는 극단화되고 있고, 양당제는 공고화되는데 개헌하지 않고서야 결선투표제를 도입할 수 없다는 건 비극적인 일이다.

그런데 결선투표제, 꼭 공직선거에서만 도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 먼저 시행해보면 어떨까? 청소년들이 결선투표제가 무엇인지 인식할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될 것이고, 결선투표제를 시행하면 어떤 점이 좋고 나쁜지 분명하게 가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학교에서 한 번 시범 실시해보는 셈이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선거는 생각보다 많다. 일 년에 한 번, 세 명을 각각 선출하는 학생회장단 선거가 진행되고, 한 번씩 학급별로 반장과 부반장을 선출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정당성과 대표성을 확보하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선출 단위가 커질수록 그렇다. 대표성을 띄기 위해서는 과반수의 지지가 필요한데 교내 선거에서 과반수를 득표하는 일은 쉽지 않으며, 심지어는 후보가 난립해 매우 적은 득표율로 당선되는 경우도 있다. 결선투표를 시행하기에 좋은 조건이 갖춰졌다.

학교에서 결선투표제를 시행하는 것보다 더 중요할 공직선거에서의 결선투표 도입 필요성은 한 단어로 정리하면 '극단화'라고 할 수 있다. 정치가 극단화되는 데는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나는 거대양당의 독점이 정치 극단화를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확신한다.

결선투표제가 없기 때문에 설사 선택지가 세 개더라도 실질적으로는 2.1개다. 선택지가 두 개 밖에 없을 때만큼 "나 빼고는 모두 나쁜 놈"이라는 논리가 잘 통할 때가 없다. 선택지가 두 개이기 때문에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을 적으로 돌려도 1대 1의 싸움, 괜찮은 싸움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정치는 점점 극단화되고, 소수 극렬 지지층에 휘둘리는 정치가 된다. 그 결과가 대한민국의 지난 5년이다.

결선투표제는 제3의 선택, 합리적인 선택을 가능케 하는 선거제도다. 제도의 특성상 과반수의 지지를 얻지 못하며 시작하는 대통령은 존재할 수 없다. 다수에게 최악으로 여겨지는 상황을 피할 수 있는 선거제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도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결선투표제가 있었다면 결과가 달랐을지 모른다. '대통령 노태우'는 아마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고, 민주주의의 운신의 폭을 줄인 '3당 합당'도 없었을지 모른다. '3당 합당'에 "이의 있습니다"를 외쳤던 노무현도 없었을지 모른다.

마음만 같아서는 이번 지방선거 끝나고 개헌 국민투표를 제안하고 싶다. 검찰의 수사권을 박탈하느니 마니와 같은 문제보다는 훨씬 더 생산적이고, 정치의 양극화를 끝낼 수 있는 혁신적인 국민투표인데 말이다. 대통령 결선투표만 문제가 아니고, 국회의원부터 지방의원까지 모조리 결선투표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학교에서 먼저 해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학교는 지금까지 사회의 변화를 가장 늦게 받아들이는 곳이었다. 토요일에 쉬는 변화가 정착된 지 십 년이 채 되지 않았다. 학교 밖의 군대식 질서, 상명하복 질서 역시 많이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학교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

학교가 주체적으로 먼저 시대를 앞서 변화를 만들어나가는 일도 하나쯤 있어야 한
다. 간단한 일부터 하자. 학교부터 결선투표, 꽤나 설레는 변화다. 학교가 먼저 사회의 변화를 만들어나갈 때 비로소 학교가 민주주의의 배움터라는 제 가치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학교에 결선투표를 도입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각 학교의 학생생활인권규정에 있는 투표 방식을 바꾸기만 하면 된다.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학교부터 결선투표제를 도입해보자.

- 안승민 동탄중앙고 학생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화성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정치개혁, #화성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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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빠진 독 주변에 피는 꽃, 화성시민신문 http://www.hspublic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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