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가족
 가족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지난 14일 저녁 아버지와 통화한 지 한 시간 만에 전화가 왔습니다. 오전에 어머니가 호흡곤란으로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다녀왔습니다. 큰 문제는 없고 다음 주 월요일에 추가 검사를 신청했다는 소식에 안심했는데, 갑작스럽게 어머니가 숨을 거두셨다는 연락이었습니다. 믿기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10년 전 허리 수술을 한 이후로 거동이 불편했고, 6년 전에는 대동맥 파열로 큰 위기를 거쳤습니다. 3년 전부터는 치매까지 와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모든 과정에서 아버지가 적극적으로 돌보셨습니다. 아버지의 건강을 우려한 자녀들이 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보내자고 제안해도 아버지는 절대 반대했습니다. 아무리 어머니가 아프고 힘들어도 함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하다며 아버지는 눈물을 글썽이었죠. 

응급실을 다녀온 후 자녀들은 모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두 분만 남았을 때 어머니는 조용히 아버지 뺨을 어루만지고 눈을 감으셨습니다. 아마도 "당신을 만나 행복했어요. 사랑해요"라고 말하고 싶었을 겁니다. 10년 동안 건강하지 못해 신체적으로 힘들었지만 평생 남편의 사랑과 자녀의 존경을 받으며 봄꽃 가득한 따뜻한 날에 양지바른 곳으로 평안하게 가셨습니다. 살아생전 구경도 못 한 리무진을 임종 후에야 타본 게 아이러니였습니다만.

위로 오빠만 셋인 막내이자 외딸인 저는 오빠들에게 불만이 많았습니다. 부모님이 베푸는 만큼 혹은 기대 수준만큼 따라주지 않으니 속상했어요. 저 역시도 마찬가지였고요. 사회생활을 시작하고선 고향을 떠나 서울살이했는데 부모님과 함께 산 시간보다 독립한 서울에서의 삶이 더 깁니다.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지도 않았어요. 

장손의 맏며느리로 시집가서 명절날 친정에 가본 적이 없고, 어머니보다 연세가 더 많으신 시어머니께 더 신경을 써야 했습니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다 보니 어머니가 방문하기 힘들었고, 막상 뒤늦게 분가한 이후에는 어머니의 건강 악화로 딸 집에 놀러 오는 일은 아예 불가능하게 되어 버렸어요. 나쁜 딸입니다. 

겉으로는 다들 우애가 좋아 보여도 면밀히 들여다보면 문제없는 집안은 없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고 시작하는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처럼 말이죠. 세월의 무게만큼 형제에 대한 섭섭한 마음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아마 형제들도 역시 저에게 불만이 컸을 겁니다. 그런데도 부모님 앞에서만은 다정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습니다. 형제자매가 우애 있게 지내는 모습을 가장 바라셨으니까요.

크게 볼 것도 없습니다. 제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와 남편도 그렇고, 아들과 남편은 말만 하면 부딪힙니다. 성인이 되어 뿔뿔이 흩어져 사는데 가끔 만나면 처음엔 반갑다가 대화가 오가면 비난이 난무합니다. 사회인으로서는 다들 젠틀하고 훌륭한 매너를 보이는데 가정 내에서는 원색적인 표현을 쓰네요.

회사에서 '비폭력 대화' 강의를 진행했을 때 알아차렸습니다. 외국계 대기업에 다니는 직원으로 모두가 기본적인 매너를 갖추어서 직원 간에는 폭력적인 대화를 하지 않더군요. 문제는 가정 내에 있었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이나, 부부 간에 너무 가깝고 편하다 보니, 자신이 원하는 바를 관찰, 느낌, 욕구에 맞게 부탁하지 않고 비난을 앞세웁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욱 조심해야 하는데 우리는 망각합니다.

생전에 전화를 드려도 치매로 대화가 어려웠고, 일 년에 한두 번 방문했다 보니 사실 아직도 어머니의 부재가 실감 나지 않습니다. 입관 전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평소 모습처럼 생생해서 모니터로 본 화장 후 수골 장면이 꿈 같이 여겨집니다. 아직은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그리워지겠지요.

7월 초에 가족이 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아들은 아빠와의 불편함 때문에 조금 망설였습니다. 사람이 변한다, 변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분분한데 조금 노력해 보려고 합니다. 틈이 커져 완전히 갈라지기 전에 막아야겠습니다. 가족 여행에서 무조건 칭찬만 하는 그라운드 룰을 정하기로 했습니다. 누군가를 비난하면 벌금을 받으려 합니다. 조금씩이라도 시도하는 게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낫겠죠? 

이미 갈라져 버린 형제와의 관계는 아직 미묘합니다. 제가 아직 많이 부족하고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지난 일을 모른 척하고 무작정 덮기가 어렵네요. 부모님에게 겉으로 보여주기식이 아닌 진심으로 우애 있는 형제자매가 되어야 가능할 텐데 말이죠.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 회복될까요? 

여러분 가족과의 관계는 어떤가요? 저처럼 미묘하지 않길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일과삶 브런치, 블로그와 뉴스레터에 동시 발행됩니다.


태그:#어머니, #가족, #관계, #죽음, #사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일하고 배우고 느낀 점을 나누며 삶의 성장으로 안내하는 글을 씁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