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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편의점>은 책의 표지처럼 벚꽃이 이제 막 필까 말까 하던 무렵 아는 선생님으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파란 하늘 아래 편의점 건물을 눈꽃처럼 날리는 벚꽃들, 그냥 그 화사한 표지만으로도 봄을 선물받은 듯이 고마웠다.

<불편한 편의점>은 봄날의 벚꽃과도 같다. 266쪽이 술술, 어느새 'Always'에 도착하고 보니 지는 벚꽃을 보는 양 아쉽다. 그래도 고운 꽃을 보며 느꼈던 그 감흥처럼 내 마음이 훈훈하다. '평범 속의 진리', 아마도 그게 우리 사회 속 가장 평범한 공간인  '편의점' 군상들을 통해 김호연 작가가 우리에게 전하고픈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불편한 편의점
 불편한 편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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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해 봐야 알게 되는 사람살이 

'불편하다'란 말은 어떻게 쓰일까? 우선은 '처지'에 관한 말이지 않을까? 불편한 옷에서부터, 불편한 의자, 불편한 신발 등등, 나를 둘러싼 제반 물질적 조건들이 나에게 '맞춤'이 아닐 때 우리는 불편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냥 내가 물건 '선택'을 잘못해서인 경우도 있지만,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내가 처한 상황이 나와 어긋나 발생하는 '불편함'들이 있다. 나이가 들며 회사에서 밀려날 처지에 있다든가, 시험을 보는데 자꾸만 떨어진다든가, 혹은 사업을 해도 자꾸 망한다든가, 글이 안 쓰여진다든가, 그리고 노숙자가 된다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불편해~', 그런데 요즘은 이 말을 '처지'보다는 '관계'에서 더 많이 쓰지 않을까? 그 사람이 불편해, 하면 그 '불편해'라는 말로 다 설명되어지는 관계의 느낌. 그렇게 불편하다는 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소통'이 편치 않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불편한 편의점>의 '불편함'은 어떤 것일까? 둘 다이다. 처지이기도 하고 관계이기도 하다. 이 책을 한 줄 요약하면 이 책 말미에 엄영숙 여사가 한 말 한마디, '사람들 불편해 봐야 된다'가 될 것이다. 불편해 봐야 알게 되는 사람살이, 그게 '불편한 편의점'의 메인 품목이다. 

그런데 하나가 빠졌다. '불편한 편의점'의 불편함은 편의점 자체에서 오는 '불편함'도 빼놓을 수 없다. 청파동 오래된 골목의 편의점은 갈수록 손님들이 줄어드는 처지이다. 왜냐하면 동네 사람들에게는 이 편의점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진열해 놓은 물건 종류도 적고, 이벤트도 다른 데 비하면 없는 편이고, 동네 구멍가게처럼 흥정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주인장 엄여사는 겨우 직원들 월급이나 나오는 이 편의점을 접을 생각이 없다. 사업을 합네 하는 아들이 자기 몫인 것인 양 이 편의점을 둘러 엎을 생각을 해도 말이다. 
 
불편한 편의점
 불편한 편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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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의 도미노 게임 

장사도 안 되는데 왜 엄여사님은 '처분'하지 않을까? 편의점에서 일하는 직원들 때문이다. 오전 알바를 하는 오선숙씨는 집 나간 남편에 고시 준비 핑계로 히키코모리처럼 지내는 아들 대신 편의점 일을 하며 생계를 책임진다.

오후 알바는 하는 시현씨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알바 인생의 종착점으로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중이다. 야간 알바를 책임지는 성필씨 역시 '가장의 무게'를 짊어진 사람이다. 엄여사님은 직원들에게 주휴수당까지 꼬박꼬박 챙겨주며 그들의 '생업'을 보장해 주고 있다. 

맹자는 어짐(仁)의 시작을 우물을 향해 기어가는 아기를 구하려는 사람의 마음으로 부터 찾았다. 그처럼 위기의 사람들에게 기꺼이 손을 내미어 주는 엄영숙 여사의 '인정'이 <불편한 편의점>의 시작이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엄여사에게 먼저 손을 내민 사람이 있다. 연세가 연세니만큼 70줄의 엄여사님은 종종 깜빡한다. 동생네 집을 가려고 서울역에서 KTX를 탔는데 아차, 지갑, 신분증이 다 들어있는 파우치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놓고 온 것일까? 그때 걸려 온 전화, 흡사 '겨울잠을 끝낸 곰이 동굴에서 나와 처음 입을 열먼 나올 법한 거칠고 불분명한', 심지어 더듬거리는 어조의 인물이 엄여사님의 파우치를 주웠다는 것이다. 

파우치를 주운 당사자는 '독고'라는 이름의 정체불명이 서울역 노숙자였다. 노숙자가 파우치를 주워 그 안에 든 걸로 진수성찬을 누리는 대신 엄여사님께 전화를 했다니! 이렇게 엄여사님과 독고 씨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사례 대신 편의점의 폐기 도시락을 원하던 사람, 그 사람에게 편의점에게 제일 비싼 '산해진미 도시락'을 보답한 엄여사님은 직장을 구해나간 성필씨 대신 야간 알바에 스카우트한다. 

그리고 이제 이야기는 졸지에 서울역 노숙자에서 불편한 편의점에 야간 알바가 된 독고씨를 중심으로 풀려져 나간다. 도미노 게임 속 직사각형 조각들이 서로를 건들이며 차례로 쓰러지는 것과 달리, 엄여사님의 파우치를 찾아준 독고씨, 그런 독고씨를 서울역 노숙자에서 편의점 알바로 고용한 엄여사님의 관계처럼, 편의점에서 조우한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소통하며 서로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들이 '소통'하고 선한 영향력을 주게 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말이 편의점 야간 알바지, 엄여사님이 선불해준 돈으로 말쑥하게 차리고 나타났지만 여전히 노숙자의 향기를 온전히 지우지 못한 채 말조차 더듬거리는 독고씨에서 처음부터 '호의'적이기가 쉬울까.

하지만 '편견'을 가지고 지켜보던 시현씨도, 오선숙씨도 성실하기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고씨, 게다가 '매의 눈'처럼 상대방의 어려운 지점을 예리하게 짚어내는 그의 우직한 '인간미'에 봄눈 녹듯 마음이 열려간다. 

책 속에 등장 인물들은 모두 독고씨 앞에 무장해제를 당하고 만다. 한겨울에도 야외 탁자에 옥수수 수염차를 놔두고 기다려주는 정성? 혹시나 추울까 온풍기까지 대령해 주는 성의? 아니 그것들보다도 이 책 속의 인물들이 결국은 독고씨 앞에서 눈물 콧물까지 흘리게 되는 이유는 독고씨가 그들을 눈여겨보아 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소박한 미담식의 구성과 달리, 책 속의 등장인물들은 편의점이라는 이 시대의 가장 평범한 공간만큼, 이 시대를 살아가는 고달픈 군상의 표본들이다. 소제목의 목차 또한 '원 플러스 원', '삼각김밥'처럼 편의점답다.

이 직업 저 직업을 전전하다 결국은 공무원 시험이라는 무한궤도에 자신을 맡긴 청춘, 직장을 다니면 다닐수록 보람보다는 자괴감만 늘고 가족들과도 소원해져만 가는 가장, 가부장적 태도로 평생을 일관하다 결국 가족들에게마저도 외면당한 가장, 그리고 그 반대로 바람처럼 떠도는 남편처럼 아들이 그럴까 노심초사하다 아들과의 관계조차도 어긋나버린 중년의 엄마 등등. 그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고달픈 삶을 노숙자 출신의 독고 씨를 통해 <불편한 편의점>은 끌어안는다. 

독고씨로 부터 풀려나간 그들의 마음은 또 다른 이들과의 '소통'으로 그 맺힌 응어리를 풀어져 간다. '소통의 역 도미노'이다. '소통'을 중요시하는 시대이지만, 그만큼 사람과 사람 사이에 깊은 강이 흐르는 시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책을 읽고 보면 안다. 그 '한마디'의 소통이 비록 넘기 힘든 벽이지만,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그 '진솔한 한마디'로 인해 얼어붙은 빙벽 같은 관계가 봄눈 녹듯 녹을 수 있다는 것도.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https://blog.naver.com/cucumberjh에도 실립니다.


불편한 편의점 (40만부 기념 벚꽃 에디션)

김호연 (지은이), 나무옆의자(2021)


태그:#불편한 편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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