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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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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살장에 끌려가는 것 같다."

지난 13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박경석 상임공동대표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의 1:1 TV 토론회에 가면서 한 말이다.

도살장에 끌려가 본 적 없으니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이 어떤지 잘 모른다. 하지만 '짐작' 할 수는 있다. 억울한 일을 당하고 선고를 받으러 재판정에 들어가는 기분, 왠지 가고 싶지 않은 곳에 억지로 끌려가는 기분, 유쾌하지 않은 기분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박경석의 사과에, 나는 화가 났지만
 
박경석
 박경석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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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연이 출근길에 지하철을 탄 이유는 "기획재정부는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예산을 확보하라"고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어서다. 이 시위로 많은 시민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욕을 해도 전장연은 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만 전장연의 목소리를 들을 테니까. 그래야만 시민들이 공기처럼 이용하는 지하철을 장애인도 탈 수 있으니까. 

이준석 대표는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타기 시위를 '비문명적 행위'라고 비난했다. 현대는 문명사회다. 이준석 대표가 말한 '비문명'이라는 말은 전장연의 활동가를 원시사회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한 것과 같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비장애인들이 자연스럽게 이용하는 지하철을 타지 못한다. 휠체어가 탑승할 수 없는 버스가 수두룩하다. 이동권은 인간의 기본권이다. 이동을 해야만 사람을 만날 수 있고, 공부하러 갈 수 있고, 장을 봐서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비장애인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평범한 일들이 장애인에게는 험난한 과정이 된다. 방구석에 갇혀 지내는 건 동물도 싫어한다. 이러한 기본권을 보장하라고 시위를 한 건데 보수정당의 대표는 '비문명' 운운하며 비하했다. 

그토록 원했던 방송국 토론회가 결정된 후, 박경석은 토론회 날 새벽까지 활동가들과 준비를 했다고 한다. 나는 박경석과 이준석의 토론이 너무 궁금했다. 일하는 중에 틈틈이 핸드폰으로 토론회를 보았다. 토론회가 시작되자마자 박경석은 이렇게 말했다. 

"이 토론회 자리를 빌려 먼저 시민들에게 진심으로 사과 말씀을 드리고 싶다. 시민 여러분의 바쁜 출근길에 장애인들이 지하철을 타서 불편을 끼쳐서 죄송하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기를 부탁드린다. 전장연은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서민들의 일상을 방해했다. 시민들이 쏟아내는 온갖 욕설을 감수하면서 시위를 하는 이유는 장애인의 이동권은 생존권이자 시민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말을 21년째 하고 있다."

나는 박경석이 저렇게 말하는 걸 들으면서 화가 났다. 나 같으면 사과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나는 "당신들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 우리에게는 왜 특별한 일이 되어야 하느냐"라고 따졌을 것이다. 더 나가서 "장애인은 사람이 아니냐"며 울부짖었을지도 모른다. 

코로나 3년은 청각장애인에게 지옥 같은 나날

나 역시 청각장애를 가지고 산 지 40년이 되었다. 전장연 활동가처럼 이동의 불편함은 없지만 소리를 듣는 데 불편함이 있다. 나의 장애가 중증이 아니라, 경증이라고 해도 청각장애는 치명적이다. 시각 장애도 마찬가지다. 듣지 못하는 것과 보지 못하는 장애는 생존과 직결된다. 물론 이동의 장애도 생존과 직결되기는 하지만, '소통'의 장벽과는 차이가 있다. 

2020년 초 코로나19가 지구촌을 강타한 약 3년 동안 그야말로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청각 장애를 가지고 산 40년의 세월 중 가장 힘들고 괴로운 시간이다. 그 이유는 전염병의 전파를 막기 위해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다.

청각장애가 있는 나는 입모양을 보고 소통하는데 입모양을 볼 수 없으니 소통이 안 된다. 집 밖을 나서면 마스크 쓴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취업을 위해 면접을 보러 가도 마스크를 쓴 면접위원들 때문에 질문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고, 시장에 가서 물건 값을 흥정하기도 어렵다.

모르는 길을 물어보려고 해도 물을 수 없고,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을 때도 궁금한 점에 대해 정확한 답변을 듣기가 힘들다. 의사들도 위험한 상황이라 마스크를 내리지 않고 말한다. 친절한 의사는 필담으로 얘기해 주기도 한다. 3년째 이렇게 살고 있다. 어느새 나는 마스크 트라우마까지 생겼다. 밖으로 나가면 소통의 장벽에 부딪힐테니... 이런 나는 팬데믹이 끝날 때까지 방구석에 처박혀 있어야 할까.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타기 시위를 보면서 나도 청각장애인들과 함께 광화문 네거리에 모여서 집회를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청각장애인을 만나면 투명마스크를 써달라, 마스크에 가린 입모양을 볼 수 없어 소통이 어렵다. 청각장애인도 코로나 시대에 인간답게 살고 싶다"라고 외치면서 말이다. 이준석 대표가 이를 본다면 과연 뭐라고 말할지 궁금하다. 우리에게도 비문명적 시위를 중단하라고 할까. 문명사회에 살고 있는 인간이 비문명 인간이 되는 건 순식간이다. 이준석 대표는 그렇게 장애인의 시위를 비하했고 주관적인 근거로 낙인 찍었다.

야학 교사로만 살도록 놔두지 않은 건 이 사회

지금으로부터 27년 전인 1995년도에 처음 만난 박경석을 기억한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서 배우고 싶어도 이동의 제약 때문에 배움의 기회를 놓친 사람들을 위해 장애인 야학을 만들어 교사로 활동하던 청년이었다. 하지만 사회는 박경석을 야학의 성실한 교사로만 살도록 놔두지 않았다.

2001년 오이도역에서 휠체어 리프트를 타고 이동하던 장애인이 추락해서 숨졌다. 너무나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장애인도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고 싶다, 모든 지하철역에 장애인을 위한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라"면서 격렬하게 싸웠다. 지하철 선로에 내려가 쇠사슬을 목에 걸고 달리는 열차를 멈춰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은 너무나 느리게 변했다. 21년째 지하철 타기 시위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먹고사는 일 때문에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타기 시위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시위가 끝나면 전장연의 사무실에는 협박 전화가 수도 없이 걸려 온다고 한다.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말로 가득한. 

비장애인들은 이동의 어려움이 어떤 건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았을 테니 출근길에 지하철이 지연되는 것에 분노를 가질 만하다. 그렇다해도 한 번쯤은 전장연이 왜 시위를 하는지, 그들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며칠 전 제주 풀무질 서점 페이스북 담벼락에 아래와 같은 글이 써 있었다.  

"이준석류의 독선과 아집, 소수자에 대한 혐오화 차별이 사라져야 비로소 문명사회인 것이다. 3월은 비수기지만 그럼에도 전장연에게 후원을."

아차 싶었다. 미처 생각지 못한 전장연 시위의 연대 방식을 제주 풀무질의 포스팅을 통해 상기했다. 제주 풀무질이 아니어도 이미 이와 같은 방법으로 전장연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으리라 짐작한다. 이준석 대표가 '비문명' 시위라 일컬은 시위에 시민들이 이런 방식으로 연대하는 것을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나도 일단 지갑을 열어 릴레이 후원에 동참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JTBC>에서 시사프로 ‘썰전라이브’에서 일대일 토론 출연을 앞두고 흡연장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에서 시사프로 ‘썰전라이브’에서 일대일 토론 출연을 앞두고 흡연장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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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석과 이준석 대표의 1:1 토론회가 시작되기 전, 박경석이 담배 한 대를 피우고 들어가겠다고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박경석이 담배 피우는 장면이 찍힌 사진을 보며, '박경석이 무엇을 잘못했다고 저리 쫄아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쓰렸다. 하지만 반전은 다음 날 일어났다. 그의 페이스북 담벼락엔 아래와 같은 가사로 랩을 불렀다는 포스팅이 써 있었다. 

"내 모습 지옥 같은 세상에 갇혀 버린 내 모습, 큰 모순,
 자유 평등 지키지도 않는 거짓 약속, 흥! 닥쳐라고 그래,
 언제나 우린 소외 받아왔고, 방구석에 폐기물로 살아있고,
 그딴 식으로 쳐다보는 차별의 시선, 위선 속에 동정받는 병신이 아냐.
 닥쳐! 닥쳐라, 우린 병신이 아냐."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에도 싣습니다.


태그:#전장연, #박경석, #지하철 타기, #비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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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받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 인터뷰집,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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