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인생의 새로운 길에 섰습니다. 늘 누군가의 엄마로, 아내로 살아온 삶을 마무리하고, 이제 온전히 '내 자신'을 향한 길을 향해 가보려 합니다.[기자말]
"전자레인지만 있으면 돼."

남편과 살림을 나눌 때 그가 한 말이다. 그러더니 며칠이 지나고 무슨 마음에서인지 "전기 밥솥 가져갈 거야? 에어프라이어는?" 하고 묻는다. 그래서 다 남편에게 보냈다. 

처음엔 어이가 없었다. 전기 밥솥은 게다가 큰 아이가 사준 거였다. '다른 것도 아니고, 아들이 사준 건데... (그걸 가져가냐?)' 이러고 '씩씩' 대다가 문득, '(남편이 두고 가면) 이제 또 매일 밥 하고 에어프라이어에 요리하고 그러고 살래?' 이런 말이 내 속에서 불쑥 솟아 올랐다. '더는 이렇게 살지 않는다며?'

그랬다. 더는 이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니 더는 이렇게 살 수 없게 되었다는 게 솔직한 표현이겠다. 스물 다섯에 웨딩드레스 챙길 사이도 없이 헐레벌떡 연분홍색 한복을 입고 '가든'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이제 해가 바껴 내 나이 쉰 하고도 아홉, 낼 모레 육십을 앞두고 결혼을 '작파' 할 처지에 놓였다.

남편과 살림을 나누기로 했다
 
작년 한 해 동안 서너 차례 돈 사고가 터졌고 우리집 빚은 감당할 처지를 넘어섰다.
 작년 한 해 동안 서너 차례 돈 사고가 터졌고 우리집 빚은 감당할 처지를 넘어섰다.
ⓒ envato elements

관련사진보기

 
우리 연배의 '이혼율'이 가장 높다는 말에도 '그렇구나' 했다. 말이 좋아 '졸혼'이 유행어가 될 때도 꿋꿋하게 남의 이야기려니 했다. 지난해 봄 나를 역성 들다 작은 녀석이 남편과 부자지간에 못볼 꼴을 봤을 때도, 아들 녀석이 엄마가 더 실망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남편의 편을 들었다. 

돌아보면 귀신에 씌였나 싶다. 내가 '가정을 지켜야지'라고 다짐을 할 때마다 마치 '그건 아니지'라고 하는 듯 일이 터졌다. 작년 한 해 동안 서너 차례 돈 사고가 터졌고 우리 집 빚은 감당할 처지를 넘어섰다. 아마도 언젠가 그 사람도 되돌아 볼 날이 있다면 자신이 뭐에 씌였나 싶게 작년 한 해 동안 우리 가정은 말 그대로 풍비박산이 났다.

물론 처음엔 가지고 있는 돈을 끌어모아, 마이너스 통장을 털어 감당을 했고, 이 정도만 해도 됐다 했다. 하지만 그 다음이 또 있었다. 은행으로 안돼서, 제2 금융권의 문을 두드렸고, 그래도 그 정도는 갚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나한테서 끝나지 않았다. 직장 생활을 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혹은 이제 겨우 사회 초년생인 아이들에게 그 여파가 흘러갔다. 끝도 없이 터져나오는 빚에 온 가족이 고사 당하겠다 싶었다.

내 의지대로 살고 싶다
 
해질녁 풍경. 막상 매달 빚을 갚으며 보니 참 나도 대책이 없다 싶다. 낼 모레 환갑인 나이에 말이다.
 해질녁 풍경. 막상 매달 빚을 갚으며 보니 참 나도 대책이 없다 싶다. 낼 모레 환갑인 나이에 말이다.
ⓒ 이정희

관련사진보기

 
결국 알량한 집 보증금을 빼서 다만 얼마간의 빚 잔치를 하기로 했다. '가정 경제 복구'를 위해 경제적 파산을 종용하는 남편에게 내 이름으로 된 빚은 내가 다 갚으며 살테니 각자 살아보자고 했다. 2026년이 될 때까지 갚아야 하는 빚, 저 빚을 갚고 살겠다고? 막상 매달 빚을 갚으며 보니 참 나도 대책이 없다 싶다. 낼 모레 환갑인 나이에 말이다.

남들은 '은퇴'를 할 나이에 본격적으로 '돈'을 벌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래도 그런 결정을 내린 건 나를 후려치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저 빚이 다 그동안 내가 먹고 산 돈이구나, 라는. 예전 어른들 말씀처럼 '남편 덕 보고 살 팔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형제들에게 여차저차해서 이렇게 됐다는 보고를 한 날, 작은 언니가 대뜸 '다 니가 잘못해서 그런 거'라며 사태를 이렇게 만든 데 안타까워 했다. 이른바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인데, 그 남편 하나 요리를 못 했냐는 거였다. 그 자리에서는 발끈했지만, 그래, 남들 다 한다는 남편 요리, 거기에 이제 두 손을 들 때인가 싶다.  

그런데 이젠 더는 그 '요리'를 하느라 전전긍긍하며 살고 싶지 않다. 아니 요리는커녕, 늘 나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휘말리는 '부부'라는 이름으로 밀려오는 파도에 더는 나를 내맡기기 싫었다. 이젠 더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더는 그렇게 살면 안 될 거 같았다.

태그:#독립
댓글6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