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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를 보러 동네 내과에 갔다. 접수를 하고 빈자리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생각보다 대기시간이 길어졌다. 안내데스크를 마주하고 있는 소파에 앉아 있던 터라 자연스럽게 시선이 병원을 오가는 사람들 쪽으로 흘렀다. 

병원은 시장 주변에 자리 잡고 있어서 그런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았다. 연세가 있으시다 보니 무릎에 주사를 맞거나 관절염 같은질환을 치료하러 오신 분들이 대다수였다. 
 
다리가?불편한?할머니의?안부를?묻기도?하고,?거동이?불편한?할아버지를 진료실까지?부축해드리기도?했다.?다정한?광경이었다.?
 다리가?불편한?할머니의?안부를?묻기도?하고,?거동이?불편한?할아버지를 진료실까지?부축해드리기도?했다.?다정한?광경이었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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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을 드나드는 어르신들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노라니,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공통점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어르신들은 거의 90%의 확률로 대부분의 질문을 한 번에 알아들으시지 못하고 "네?" 또는 "어?", "잉?" 하고 되물으셨다.

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 시국인지라 접수대에는 간호사들과 환자들 사이에 투명 아크릴로 된 가림막이 단단히 세워져 있고, 병원 직원과 환자 모두 다 마스크를 끼고 있으니 이중에 삼중으로 말소리가 막혀 의사 전달이 잘 되지 않았다. 

게다가 나이가 들면 청력도 조금씩 떨어진다고 하니,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은 의사소통을 하는 데 있어서 곱절로 어려움을 겪으신 듯싶었다. 

"아버님,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 잉?"

"아버님 성함이요~"
"….. 네?" 


어르신들은 자꾸 되묻고, 간호사는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는 답답한 상황이 이어졌다.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간호사도 점점 체력에 부치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목소리에 더욱 힘을 주어 "그러니까 제가 아버님 성함 여쭤본 거예요~" 하고 거듭 대답했다. 

이후로도 어르신들은 물밀듯이 병원에 들어왔고, 답답한 상황은 반복되었지만 그는 용케 친절함을 잃지 않고 꿋꿋이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했다. 게다가 다리가 불편한 할머니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를 진료실까지 부축해드리기도 했다. 다정한 광경이었다. 

바쁘게 굴러가는 일상에서 타인의 속사정들을 세세하게 헤아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요즘 세상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유독 더 이해가 없고 가혹해 보인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온 나라를 뒤덮은 이후로 카페나 식당에서 어르신들이 키오스크로 주문을 하지 못해 좌절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는 뉴스를 심심찮게 본 적이 있다. 뿐만 아니라, QR 체크인을 하기 위해 스마트폰에서 QR 코드를 찾는데 한참 시간이 걸리는 몇몇 어르신들 때문에 식당 대기줄이 길어지자 누군가가 한숨을 푹 내쉬는 모습을 보고 씁쓸함을 느낀 적이 적지 않았다.

평소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서였는지 병원에서 우여곡절 끝에 접수를 마치고 내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어르신들의뒷모습이 쓸쓸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넉넉히 드리워진 따뜻한 볕이 그들의 등을 훈훈하게 덥히고 있는 듯했다. 얼어붙은 마음들에도 온기가 돌았다. 나는 조용히 마음속으로 간호사분께 무언의 감사를 전했다.

달갑지 않은 상황에서도 다정함을 잃지 않던 안내데스크의 간호사처럼, 우리 개개인에게는 어르신들에게 따뜻한 한 줌의 볕을 드리울 수 있는 작은 힘이 아직은 남아 있다고, 나는 믿는다. 

더 나아가 공적인 힘이 반드시 닿아야만 하는 영역의 일들, 즉 노인 빈곤이나 노인 복지와 같은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큰 노력들도 결국 어르신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들과 작은 행동들에서 시작될 거라고 생각한다. 

신은 인간에게 유효기간이 정해진 젊음과 에너지만을 준다. 그렇기에 언젠가 우리도 걸어가게 될 그 길을 몇 걸음 앞서 걷고 있는 어르신들이 조금 더 따뜻한 순간들에 머무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태그:#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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