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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서 점심 급식을 먹지 않는 사람은 나 혼자다. 초등교사인 아내와 1학년 학생인 큰 딸, 병설유치원에 다니는 작은 딸 모두 같은 학교에서 같은 점심을 먹는다. 육아휴직 중인 내가 하교 시간에 맞춰 나가면 큰 딸은 대뜸 퀴즈를 낸다.

"아빠! 오늘 내가 먹은 점심 중에 가장 맛있는 음식이 뭐게?"

퀴즈라고는 하지만 자랑에 가깝다. 행복에 겨운 표정이다. 퀴즈 맞추기는 쉽다. 영험한 신통력 없이도 나는 정답을 거의 유추할 수 있다. 매일 아이앰스쿨이라는 학교 애플리케이션에서 급식 메뉴가 올라오기 때문이다. 메뉴 중 하나를 고르면 된다. 멸치 꽈리고추볶음은 아닌 것 같고, 오이 당근 스틱도 패스, 오늘은 한우불고기일 확률이 높다. 

"크림 파스타?"
"땡! 고기지롱."


나는 일부러 틀린다. 자기가 얼마나 훌륭한 음식을 먹었는지 자부심 가득한 얼굴이 되는 딸이 좋기 때문이다. 나는 휴직 이후 점심을 가볍게 때우고 있다. 직장에 나가지 않으니까 여유롭게 맛집 투어를 할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생각보다 시간이, 에너지가, 돈이 부족하다. 

내가 끼니를 대충 때우는 이유 

나는 요리를 제외하고 집안일 일체를 담당한다. 아침에 아이들과 아내가 집을 나서고 나면 이부자리 정리를 하고, 청소를 한다. 빨래를 돌리고, 널고, 마른 옷가지를 개킨다. 분리수거를 하고, 장을 본다. 매일 계획을 종이에 적고, 완료한 과업은 지운다. 적지 않으면 집안일에 구멍이 발생한다. 

1시 20분까지 학교에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므로 시간이 촉박하다. 가정 주부들 논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서두르는 느낌은 아니어도, 게으름을 피우지 말아야 한다. 열심히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돌려야만 한 시간쯤 짬이 생긴다. 점심 먹는 시간을 포함한 짬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단 십 분이라도 늘리고 싶어 나는 밥을 대충 해결한다. 아내가 아침에 끓여놓고 간 달래 된장국에 밥을 말아 먹거나 냉동실에 얼려둔 떡을 녹여 먹는다. 같이 먹는 사람이 있으면 계란 프라이에, 군만두라도 내어 오겠는데, 혼자 먹는 밥이라 너무 애쓰지 않는다. 내게는 점심 한 끼보다 시간이 더 소중하다.

배달음식도 만만치 않다. 휴직으로 외벌이가 된 상황에서 식비를 왕창 쓸 수 없다. 하루는 귀찮음이 극에 달해서 음식 배달 앱을 켰다. 그런데 음식값과 배달료를 보고 앱을 닫았다. 배달 돈가스 한 번 먹을 돈이면 라면을 스무 번 끓여 먹을 수 있었다. 
 
애플리케이션으로 아이가 먹는 학교 급식을 확인할 수 있다
 애플리케이션으로 아이가 먹는 학교 급식을 확인할 수 있다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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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혼자 냉동실에 있던 약밥을 데워먹다가 학교 급식 생각이 났다. 나는 지난 십이 년간 학급 담임을 하면서 같은 테이블에서 학생과 함께 밥을 먹었다. 다들 맛있게 숟가락을 뜨는데, 유독 몇 명은 더 폭발적으로 음식을 흡입했다. 한창 클 시기이니, 새우튀김을 더 달라고 하는 아이는 많다. 그러나 매번 밥과 국, 반찬을 리필해 가며 두 번씩 먹는 아이는 흔치 않다. 

위장이 수용할 수 있는 음식량의 한계를 시험하듯 먹는 아이가 걱정되어 따로 물어본 적이 있다. 요즘 배가 많이 고프냐고. 그러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저녁에 먹을 게 없거든요. 아빠도 늦게 들어오고."

자세히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아이는 아버지와 둘이 사는데, 아버지가 3교대 근무라 퇴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았다. 아빠 근무가 없거나, 일찍 들어오는 날에는 근처 식당에 가서 밥을 먹어서 괜찮았다. 오후에 근무가 있으면 아버지는 만 원을 아이에게 쥐어주었다. 

뭐라도 든든하게 먹으라는 마음이었겠지만, 4학년 아이 혼자 저녁에 밖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건 쉽지 않았다. 어른도 혼밥이 힘든데 아이가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 순댓국을 주문하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다. 결국 아이는 편의점에서 과자와 탄산음료, 소시지 등을 하굣길에 구입해 갔다. 그러나 제대로 된 식사가 될 리 없으므로, 아이는 학교 급식을 배 터지도록 먹은 것이다. 

밥 한 끼를 먹는다는 것의 의미

아이에게 급식은 타인과 교감하며 먹는 몇 없는 밥상이었다. 그리고 양질의 재료로 만든, 5대 영양소가 골고루 갖춰진 청결한 음식이었다. 나는 당시 아이에게 만 원으로 시켜먹어도 좋으니 백반이나 냉면이 나오는 식당 밥을 먹으라 권했다. 그러나 휴직자인 나의 부실한 점심을 보자 쉽지 않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게으름이나 돈의 문제가 아니다. 혼자 있는 사람은 여럿이 함께 밥을 먹는 사람과 달리 음식에 큰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 컴퓨터 모니터나 TV를 보면서 먹는 등 식습관이 나빠지고, 주변 사람과 교류도 줄어든다. 인스턴트 비중이 늘게 되어 건강을 해친다.

나는 휴직 중 혼자 점심을 해결하면서 함께 먹는 밥, 정성을 다한 상차림을 먹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절실히 느끼고 있다. 학교에 갔다 온 아이가 급식에서 맛있게 먹은 메뉴를 자랑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혹시 자녀가 있다면 점심시간에 누구와 어떤 대화를 했는지, 다른 음식은 어땠는지 다정하게 물어봐 주자. 학교 소식 애플리케이션으로 급식 사진을 들여다보며 물어보아도 좋을 것 같다.

태그:#급식, #휴직, #육아휴직, #음식,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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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산지니 2021>, <선생님의 보글보글, 미래의창 2024> 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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