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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은 참 중한 것이다. 사람 하나 챙기는 것도 책임이고, 저울 눈 감시하는 것도 책임이고. - <선창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24p
 
김진언 할머니.

저는 할머니를 모릅니다. 이름도 얼굴도 책 <선창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에서 처음 보았습니다. 제주4.3사건은 알고 있었지만, 수많은 여성들이 투쟁했다는 사실은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됐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제9회 제주4.3평화문학상 논픽션 수상작 <선창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제9회 제주4.3평화문학상 논픽션 수상작 <선창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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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책임을 중하게 여기셨습니다. 애써서 물질하고 길어온 전북이며 고동을 눈속임으로 팔아넘기려는 상인들에 맞서 물건 값을 제대로 받아내려고 저울 눈을 감시하고 보초를 섰습니다. 일한 만큼 제값 받는 것, 그것이 할머니가 생각한 정당한 사회였고, 그것을 지키는 일은 할머니의 책임이었습니다. 중하다못해 무섭기까지 한 책임이라는 무게였죠.

모두가 평등하게 잘 사는 세상. 여성이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며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꾸었던 할머니. 단지 꿈꾸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가장 먼저 앞장서서 목소리를 냈던 할머니의 삶은 신산스러울 수밖에 없었겠죠. 1911년 제주에서 출생해, 제주4.3사건과 한국전쟁이라는 민족 비극의 소용돌이 한복판에서 당신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가셨습니다.

당신의 가정보다는 이웃과 공동체를 우선으로 여겼기에 어린 딸을 떼어놓고 북으로 갔습니다. 공산당원으로 활동하며, 간첩으로 남파되어 활동하다 끝내는 체포돼 25여 년이라는 시간을 교도소 독방에서 모진 고문을 이겨내며 울분의 시간들을 삼켜야 했죠. 무엇이 할머니를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할머니를 그렇게 만든, 끝내 전향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살게 만든 그 지독하고 고집스러웠던 '신념'은 무엇이었을까요. 모두가 평등하고 공평한 세상, 서로 나누는 세상, 남녀가 모두 존중받고 자신의 권리를 누리면서 사는 세상을 향한 꿈이었습니다. 그것은 동지들을 향한 연대였으며 당신이 목숨보다 중히 여긴 책임이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에서 당원으로 활동하던 할머니는 북의 사회주의 체제에 회의를 느낍니다. 모두가 인간답게 공평하게 사는 세상인 된 줄 알았더니 인민은 여전히 가난하고 착취당하며, 간부는 떵떵거리며 기름칠하며 살고 있습니다.

여전히 존재하는 빈부격차와 남녀차별. 여성 당원을 한 명의 인격체로 존중하기보다는 한낱 심부름꾼이나 밥순이로 치부하는 현실 앞에서 할머니는 아연 혼란스럽고 어지러웠겠죠. 할머니가 꿈꾼 세상은 절대 그런 모습이 아니었으니까요.

이념보다 더 빛나는 인간의 존엄 

교도소에서 할머니는 당신과 같은 비전향 장기수들을 보면서 스스로 묻습니다.
 
가족이 면회를 와도 거절해 버리고 윤 소장이 사정사정해서 데리고 들어가려 해도 씨알도 안 먹히는 지독한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을 보면 눈물이 났다. 저 사람들은 저렇게 만드는 게 무얼까. 그 사람들은 나와도 죽고 거기서도 죽는다. - <선창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123p
 
사회주의의 붕괴, 공산주의의 타락과 1인 독재... 할머니는 당신이 꿈꾼 세계가 무너지는 것을 봐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당신의 신념과 의지까지 허망한 것이었을까요. 이론, 이데올로기, 이념보다 더 빛나고 값진 것은 그것을 지키려 노력한 책임감, 교도소에서 콩 한쪽이라도 나누어 먹었던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 생각합니다.

할머니는 긴 형무소 생활을 마치고 고향 제주로 돌아옵니다. 이제는 늙고 병든 몸, 가진 것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습니다. 게다가 빨치산, 공산당, 사회주의... 당신을 향한 살기등등한 비난과 손가락질. 할머니는 또다시 모진 비난에 시달리고 창살 없는 교도소에 사는 기분이었을 겁니다. 오죽했으면 당신의 구술생애사를 책으로 내려거든 당신이 죽고 난 다음에 내라고 했을까요.

격랑이 휘몰아친 바다 끝에 오는 고요함과 고적함. 할머니는 그 바다를 보면서 사람을 그리워하며 인생의 말년을 보냈습니다. 인생의 마침표를 바다에 찍고 돌아간 할머니. 할머니는 마침표를 찍었지만 이 세상은 아직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할머니가 꿈꾼 세상은 어디쯤 오고 있는 걸까요.

추신.

<선창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는 제주4.3 여성운동가 김진언 할머니의 생애를 구술로 받아서 정리한 것이다. 김진언 할머니 구술 외에도 이 책의 후반부에는 중요한 두 명의 인물의 구술이 또 등장한다. 비전향 장기수로 여성운동, 통일운동을 가열차게 했던 박선애, 박순애 선생이다.

인간으로서는 감당하기 불가능할 정도의 고문과 모욕, 인간적인 학대를 당하면서도 끝내 신념을 굽히지 않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이들이 이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신념도 신념이지만 함께 했던 동지들에 대한 예의와 인간으로서의 책임 때문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외에도 저자가 중간 중간에 끼워놓은 제주 4.3 여성운동가들의 증언과 채록은 읽는 내내 마음을 숙연하게 만든다. 갓난아이를 이웃에게 부탁하고 총살당하러 갔던 오매춘 선생. 이기지도 못하는 싸움을 왜 하느냐는 말에 그는 '이 싸움이 승리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10년, 아니 100년 후에라도 그 시대 분단을 막기 위해 애쓰다가 죽어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리려고 싸운다'고 답했다.

일제강점기에 독립군 활동을 위해 가족을 버리고 만주를 떠난 남성 운동가들에게는 '혁명가'라는 칭송이 따라붙는 반면, 여성 활동가와 여성 빨치산에게는 유독 '자식을 버린 어머니'라는 이미지를 덧씌워졌다는 것. 그들의 활동을 '개인적 모성을 사회적 차원으로 확대시킴으로 모성을 정치화했던 것으로 평가해야 한다'(최기자, <여성주의 역사쓰기를 위한 여성 '빨치산' 구술생애사 연구>)고 한 전문가는 말한다.

이름 모를, 아니 이름이 지워져 버린 여성 활동가와 운동가들. 불과 몇 년 전까지도(지금도 마찬가지) 빨갱이, 좌파, 공산당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뭉개 버리려 했던 사회적 분위기를 생각할 때, 이들의 삶이 얼마나 신산스럽고 고달팠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러기에 그 마음과 결기가 더욱 숭고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선창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 제9회 제주4·3평화문학상 논픽션 수상작

양경인 (지은이), 은행나무(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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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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