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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고 난 후에 숲을 가니 바닥이 푹신푹신하고 기분이 좋다. 봄을 빨리 느끼려면 숲으로 가자. 쌓인 낙엽 사이로 푸릇푸릇한 풀들이 올라오고 있다. 쓰러진 나무들이 부슬부슬한 흙으로 변하고 있다. 새들의 노랫소리가 아름답게 들린다. 생강나무의 노랗고 작은 꽃들도 선명하게 보인다.

말 그대로 살아 숨 쉬는 숲을 만날 수 있다. 동네 주민들이 숲을 공원삼아 산책을 많이 한다. 마스크를 쓰고 하는 산책이지만 숲에 들어간다는 자체가 뭔가를 얻는 느낌이다.
 
도심에서도 보이는 산불
 도심에서도 보이는 산불
ⓒ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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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며칠 전까지만 해도 동해안에 '2000년 동해안 산불'에 버금가는 대형산불이 발생났다. 필자의 고향집에선 어머니가 전국에 퍼져있는 친척들에게 안부전화를 받으셨다고 한다. 겨울 가뭄이 심했던 터라 텃밭에 오르면 붉은색 석회질 풍화토가 풀풀 날려 감자를 심고 물을 뿌려야 했다고도 하셨다.

이런 심한 겨울 가뭄은 주기적으로 계속되고, 기후변화로 더 심각해지고 있다. 아직도 소나무 숲의 비율이 높은 강원도는 잘 썩지 않는 소나무 잎이 수북이 쌓여 불쏘시개가 충분한 조건이 되면 이번과 같은 대형산불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숲이 가장 넓은 강원도의 모든 숲을 사람이 일일이 관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준비돼 있어야 한다. 이번 산불은 여러 곳에서 발생했지만, 물을 뿌려줄 헬기가 특정 지역에 집중되면서 진화작업이 더디어졌다. 우리 집, 우리 마을이 타고 있는 것을 보며 발만 동동 굴러야 했던 순간들이 그곳에 살고 계신 나이 많은 지역주민들에게 얼마나 길게 느껴지고 무서웠을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고향에서 동생들이 보내준 사진에는 시내에서도 볼 수 있을 만큼 짙고 높은 연기와 불꽃에 싸인 숲들이 있었다. 삼척 LNG 기지에 의한 2차 사고가 났다면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뻔했다.

산불은 도깨비불처럼 불똥이 바람을 타고 멀리까지 날아가 붙는다. 불길이 잡히는 것 같다가도 불똥이 바람을 타면 또 다시 번지는 것이 바람이 강한 바닷가 산불의 특징이다. 결국 이번 동해안 산불은 열흘의 긴 시간 동안 계속되다가 진화됐다. 앞으로 산불전문 진화차나 대용량포 방사시스템 등과 같은 산불에 사용할 많은 장비를 추가적으로 도입한다고 하니 듣기만 해도 든든해지는 소식이다.
 
삼척 호산 월천교에서 바라본 산불
 삼척 호산 월천교에서 바라본 산불
ⓒ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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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이 잦은 동해안과 산불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은 영서의 숲은 이제 많은 차이를 보일 것 같다. 몇 번의 큰 불이 지나간 숲은 빠르게 활엽수림으로 바뀔 것이다. 하지만 계속적인 불은 숲 모양을 다르게 만들 것으로 예상한다. 기둥이 굵은 나무보다 땅에서 여러 개의 가지가 나오며 자라는 참나무들이 많아질 것이고, 땅속에 잠자고 있던 씨앗들로 구성된 숲을 만들 것이다.

반면, 바람의 영향을 덜 받는 영서지역은 크고 멋진 나무가 점점 많아지는 숲이 될 것이다. 숲의 역사를 아는 사람들은 그 숲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고, 숲의 역사는 숲의 미래를 만든다. 다르게 생각하면, 숲은 산불의 피해를 입지 않는다. 그저 여러 가지 환경에 잘 대처하고 있는 것이다. 산불로 바뀐 다양한 모습으로 이루어지는 숲은 더 활기차고 건강해진다. 자연과 가까이 살고 싶다면 사람들이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알고 이해하는 능력을 갖는 것이 좋겠다.

동해안 일부 석회암지대의 토양은 붉은색이다. 토양의 철분이 산화돼 붉은색을 띤다. 그런 흙을 '테라로사'라고 한다. 강릉 커피 거리에서 유명한 '테라로사'는 석회암지대에서 커피나무가 잘 자라는 데서 착안한 이름이라고 한다. 이렇게 또 나무와 흙의 관계를 알며 자연을 이해하게 됐다.

동해안에 많은 피해지역이 복구되고 지역주민들이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선 사람들이 그곳을 찾아서 북적이게 만들고 경제를 살려주는 것이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산불로 허허벌판이 된 곳도 있지만 동해에는 넓고 깊은 푸른 바다가 있다. 코로나 시대의 끝이 보이는 것 같다. 따뜻한 커피와 함께 동해안 특유의 지역색을 느끼고 오면 좋겠다.

- 홍은정 생태환경교육협동조합 숲과들 활동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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