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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는 보호대상아동이라고 불리는 아이들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부모의 사망, 빈곤, 이혼, 장애, 질병, 수감, 혼전임신, 혼외출산, 학대 등을 이유로, 실제로는 이 요인들의 조합으로 인한 부모의 (거의) 완전한 양육능력 상실과 양육의지 없음으로 인해 부모로부터 분리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또한 우리는 친생부모를 대신하여 이 아이들의 부모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사람들, 즉 입양부모, 위탁부모, 공동생활가정, 아동양육시설 등 아동보호서비스 체계의 보호제공자들을 만나보았습니다.

이 기사에서는 '더 이상' 부모의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된 이 보호대상아동들이 아동보호서비스 체계 안에서 머물게 되는 '시간'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18+7=25. 25년. 현행 아동복지법과 아동복지제도에 의해 보호대상아동들이 아동보호서비스에 머물 수 있는 최대 기간입니다. 아이들은 출생 직후부터 만18세가 될 때까지 아동보호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며, 최근 개정된 법률에 따라 7년이 추가되어 만25세까지 연장하여 받을 수 있습니다. 만18세가 되는 시점을 '보호종료시점'이라고 부르며, 이 시점에 도달한 아동을 '보호종료아동'이라고 부르다가 개정된 제도에서는 '자립준비청년'으로 바꿔 부르기로 했습니다. 보호종료시점을 전후로 한 아이들의 삶에 대해서는 다음 기사에서 다루겠습니다. 이 기사의 범위는 아동보호서비스 체계로 진입하게 된 이후 만18세가 될 때까지의 기간으로 한정하고자 합니다.

아동보호서비스 보호대상아동을 향한 질문들
 
영화 <아이> 스틸 컷
 영화 <아이> 스틸 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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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아이가 아동보호서비스의 보호대상아동이 되는 시점은 천차만별입니다. 어떤 아이는 출생 직후, 어떤 아이는 영유아기, 어떤 아이는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령기, 어떤 아이는 청소년기에 부모로부터 분리됩니다. 대체로 아동보호서비스 체계에 '진입'하는 시점이 가장 빠른 아동은 '입양으로 의뢰된 아동'입니다. 미혼부모 또는 혼외출산한 친생부모가 친권을 포기한 이 아동들은 대부분 출생 직후 친생부모의 품을 떠나게 됩니다. 이와 유사한 조건에 놓인 부모에 의해 베이비박스 등에 '유기'된 아동들도 그 시기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친생부모를 잃게 되었다는 사실은 비극적이지만, 이 아동들의 대다수가 입양부모에 의해 영구적인 가정을 얻게 된다는 점은 해피엔딩의 반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입양으로 의뢰된 아동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아이들은 아동보호서비스를 받기 시작한 뒤 만18세가 될 때까지 '일정 기간' 보호를 받게 됩니다. 출생 직후 베이비박스에 맡겨진 아기는 아동양육시설로 옮겨진 뒤 그곳에서 만 18년을 꼬박 채울 수도 있습니다. 학대로 인해 힘겨운 유아기를 보낸 4세 아동의 부모가 아동양육시설에 맡겨진 자신의 자녀를 되찾아가지 않는다면, 그 아이는 만 14년을 시설에서 보내게 될 것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부모를 모두 잃고 홀로 사는 칠순 할머니에 의해 돌봄을 받게 된 아동은 아마도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같이 살기는 하겠지만, 공식적인 대리위탁보호는 6년 뒤에 종결됩니다.

여러분은 이 지점에서 몇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아이들 중에서 친생부모(원가정)에게 다시 돌아가는 아이들은 얼마나 되는가? 그렇게 긴 세월 동안 친생부모는 뭘 하고 있는 것인가? 아무리 양육조건이 부족하고 양육능력이 없다고 하더라도, 자기 자녀를 왜 다시 데려가지 않는가? 이 긴 시간 동안 아이들은 어떻게 생활하는가? 한 곳에서 계속 머물게 되는 것인가? 아래에서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제시해 보겠습니다.

아동이 친생부모에게 다시 돌아가서 원래의 가정으로 회복되는 것을 '원가정 복귀'라고 부릅니다. 기존 연구들과 실태조사에 의하면, '일시보호'를 전제로 하는 가정위탁, 공동생활가정, 아동양육시설 등 아동보호서비스에 보호 중인 아동들의 만18세 이전 원가정 복귀율은 10% 정도에 머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조부모에 의해 대리가정위탁 보호를 받게 된 아동들과 친인척에 의해 보호를 받게 된 아동들은 부모가 모두 없거나 생존해 있더라도 찾을 수 없거나 연락이 끊긴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원가정으로 복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다른 형태의 보호를 받고 있는 아동들의 부모는 매우 다양한 상황과 조건, 특성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원가정복귀의 가능성과 패턴도 매우 다양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원가정복귀의 가능성을 높이는 몇 가지 조건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떨어져 지낸 기간, 둘째는 친생부모의 능력과 의지, 셋째는 떨어져 있는 동안 가져온 관계의 질입니다. 즉 친생부모와 아동이 떨어져 지낸 기간이 짧을수록, 친생부모가 양육의지를 유지하면서 단기간에 양육능력을 회복할수록, 비록 사는 곳은 떨어져 있어도 친생부모와 자녀가 자주 만나고 연락하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수록 원가정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하나씩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원가정 복귀율 분기점 3년이 시사하는 점

첫째, 아동이 보호서비스에 머물게 되면서 친생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원가정 복귀율은 낮아지게 되며, 현장의 종사자들은 그 분기점을 3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3년을 넘기면 친생부모가 아동을 다시 데려갈 가능성이 매우 낮아진다는 것입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아동을 맡긴 후 3년 이내에 자녀를 양육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친생부모를 도와야 한다는 의미이며,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격언처럼 일단 부모와 자녀가 분리되고 멀어지면 그 사이의 마음도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입니다.

둘째, 친생부모가 양육의지를 유지하거나 강화하면서 가능한 한 빠른 시기에 양육조건과 능력을 회복한다면 원가정을 회복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전 기사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보호대상아동이 아동보호서비스에 맡겨지는 결정적 이유는 양육조건과 능력이지만 또 다른 축을 구성하는 것이 양육의지입니다. 애초에 자녀를 양육할 의지가 없어서 양육능력을 핑계로 삼는 친생부모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일부 부모들은 양육의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또는 아동들이 더 나은 조건에서 생활하면서 더 나은 돌봄과 지원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보호를 의뢰하고 있습니다.

전자의 부모들이 나중에라도 양육의지를 갖게 되거나 후자의 부모들이 양육의지를 유지할 수 있다면, 언젠가 안정적인 새 가정을 이루고, 괜찮은 일자리를 얻어 빈곤에서 벗어나고, 질병을 치료하고 재활에 성공했을 때 자녀를 데려올 수 있을 것입니다.

떨어져 지낸 기간이라는 조건과 중복되면서, 다른 차원에서 원가정 복귀를 방해하는 조건은 이렇게 '분리된 상태를 편하게 느끼게 되는 마음'입니다. 아이를 시설에 맡기고 나서 한동안은 마음이 불편하고 허전한 느낌을 갖게 되지만, 6개월이 지나고 1년이 지나면서 아이가 없는 상태가 편하게 느껴지면, 양육 조건과 능력은 갖추게 되었더라도 의지는 약해질 수 있습니다.

셋째, 친생부모와 아동이 떨어져 지내는 동안에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원가정으로 복귀하는 기간이 짧아지고 복귀 후 적응도 잘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아동보호서비스에 배치된 뒤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한다는 명목으로 친생부모가 입소 이후 당분간 시설에 오지 않도록 하는 암묵적인 지침이 존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아동을 보호해 온 보호제공자들의 경험이 쌓이고, 현실에 기반한 연구결과들이 축적되면서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기간에도 지속적으로, 자주 만나고 연락하는 것이 원가정 복귀율을 높이며, 만18세 이전에 복귀하지는 못하더라도 안정적인 생활을 가능하게 하고, 자립 이후 원만한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상적인 관계를 방해하는 장애물

그런데, 위에서 살펴본 조건들은 친생부모가 존재하고, 그(들)에게 어느 정도 의지가 있으며, 양육능력을 갖게 되는 경우에만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처지에 놓인 아동, 즉 만18세가 될 때까지 아동보호서비스에 머물러야 하는 아동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상황에서 아동에게 '최선의 이익'이 되는 조건은 아마도 '좋은 공동체'와 '최소한 한 명의 믿을만한 어른'일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아이(그리고 실제로는 우리 모두)에게는 오랫동안 신뢰 관계를 맺으면서 사랑받고 의지할 수 있는 최소한 한 사람이 필요하며, 희로애락을 함께 하며 곤경에 처했을 때 도움을 주고받고 늘 위로와 격려를 줄 수 있는 따뜻한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한 명의 어른'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 볼까요? '애착이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시설에서 보호 중인 아동들을 관찰하여 연구한 존 볼비라는 학자가 주창한 이론입니다. 그에 의하면, 생후 1-2년 동안 아기와 주된 보호제공자(대체로 엄마)가 맺는 강한 정서적 결속 관계가 아동에게 안전기지를 제공하며 이후 대인관계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 이론은 시설아동이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현상을 설명해 주며, 입양이 생후 1년 이내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됩니다. 그러나 수많은 후속 연구들에 의해 이 이론이 반쪽짜리 진실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애착은 생후 2년 이후에도 형성될 수 있으며, 엄마가 아니더라도 그를 대신할만한 보호제공자가 있다면 그와 충분히 애착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이 설령 완전한 진실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즉, 대리가정위탁을 하는 할머니, 친인척위탁을 하는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일반가정위탁을 하는 위탁부모, 공동생활가정과 아동양육시설의 보육사가 각각의 아이와 충분히 오랫동안 애착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그 어른은 아이에게 안전기지가 될 수 있고, 안정적인 생활과 건강한 대인관계의 토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많은 아동보호서비스의 보호제공자들이 아동들과 그러한 관계를 맺어 왔습니다.

그런데, 현실로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이러한 '그나마' 이상적인 관계를 방해하는 장애물들이 있습니다. 일반가정위탁은 원래 임시적인 단기보호를 원칙으로 하며 2년 단위로 재계약을 하는 보호형태입니다. 아동양육시설은 보육사들의 높은 이직률을 보여주고 있으며, 최근 주거단위별 3교대 제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즉 한 집에서 5~8명의 아동을 3명의 보육사가 교대하면서 보호하고 있습니다. 또한 제가 작년에 참여한 연구에서 시설에서 오랫동안 근무해 온 보육사들은 시설 내에서 관리하는 주거단위를 집으로 생각하는 반면에, 최근 아동양육시설에 취업한 젊은 보육사들은 그곳을 직장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진술이 있었습니다. 공동생활가정의 다수는 시설장이 오랫동안 운영하면서 아동들을 보호하는 편이지만, 다른 보육사들의 근무 기간은 길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더 큰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아동들의 '표류' 현상입니다. 아동양육시설로 배치되었던 아동이 위탁부모에게 갔다가 공동생활가정으로 이동하거나,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대리가정위탁을 받던 아동이 가출하여 청소년 쉼터들을 전전하는 경우, 배치되는 일반위탁가정마다 적응을 못하고 수시로 또는 주기적으로 위탁가정들을 전전하는 경우 등입니다. 보호대상아동의 표류 현상을 연구한 정정호·정익중(2012) 교수의 논문에 이러한 현실이 구체적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각의 대안이 최선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상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목표는 이런 것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친인척 어른들과 그 가정에서 위탁보호를 받게 된 아동들에게는 그 대리부모들이 더 나은 부모가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입니다. 일반위탁부모들은 그들에게 맞는 아동들을 보호하다가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면서 자연스럽게 입양될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입니다.

공동생활가정과 아동양육시설에서는 장기근속하는 보육사들을 중심으로 튼튼한 관계망을 구축하면서 개별 보육사와 아동이 맺는 관계의 다양성을 보고 그 관계를 강화해야 하며, 이러한 시설 자체가 따뜻한 돌봄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조성해 가야 할 것입니다. 그동안 시설은 제도에 의해 감시와 통제의 대상으로 여겨지기도 했으나 일반 가정보다 더 많은 지원과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보호제공자와 아동, 아동들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둔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한 명의 믿을만한 어른'의 대안

자연스럽게 '공동체'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전통적인 공동체가 사라졌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는 있지만, 실제 우리의 삶과 주변을 돌아보면 그 역시 반쪽짜리 진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각박한 현대 사회에서도 서로를 이해하고 지지하며 감싸주는 마을 공동체가 존재하며,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잔잔하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아동양육시설과 공동생활가정의 종사자들은 후원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을 통해 지금도 그 가능성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위탁부모, 아동양육시설의 보육사, 공동생활가정의 시설장이 되지 않아도 우리에게는 '한 명의 믿을만한 어른'이 될 수 있는 다른 대안들이 있습니다. 키다리 아저씨와 같이 한 아이가 어른이 될 때까지 재정 지원을 하는 후원자가 될 수도 있으며, 형이나 언니 역할을 하는 멘토가 될 수도 있고, 그냥 틈이 날 때마다 아이를 찾아가서 놀아주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원봉사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시간', 즉 지속성입니다. 여러분의 의지와 '끈기'가 필요합니다.

태그:#보호대상아동, #아동보호서비스, #한 명의 어른, #마을 공동체, #은밀한 맥락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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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현상의 은밀한 맥락과 패턴을 탐구하는 질적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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