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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다시 직장을 다녀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K의 영향도 없지 않아 있다.
 최근 다시 직장을 다녀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K의 영향도 없지 않아 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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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남편이 직장을 그만둬서 괴롭고 속상하다'는 K의 전화였다. 창피해서 사람들한텐 말도 못 했고 물어보는 사람들한테는 일이 없어 당분간 쉬게 되었다고 말한다고 했다. 타 지역에서 대학을 다니는 딸한테 알려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이라고 했다. 정년퇴직이 아닌 타의에 의한 퇴직은 언제나 떳떳하지 못한 고백이 되고 만다. 
   
나도 어쩌다 안부만 물어오는 사람들에겐 굳이 직장 유무를 밝히지 않아 사람들은 여전히 내가 직장을 다니는 줄 알고 있다. K 역시 통화는 자주 하지만 직장에 대한 언급이 없으니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고 얘기한다.

그리고 이 나이에 '직장 어디 다녀?'라고 묻는 것 자체가 실례인지라 가끔 '아직도 거기 다녀?'라는 안부로 대체하기도 하는데 그럴 땐 대충 얼버무린다. 나 역시 은퇴라는 말이 아직은 낯설기만 한 준고령자인지 모르겠다. 조기 은퇴라는 말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겠다는 젊은 사람들과는 다른 맥락이다.   

이력서를 넣었다, 그리고 

마흔 살 이후 내 직업은 계속 바뀌었다. 거의 2년 주기였던 거 같다. 다양한 경험을 쌓아서 오히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은 계속 바뀌는 직업을 편하게 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한 곳에 오래 있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나의 밥벌이가 불안해 보였는지 계약 만료가 다가오는 시점에 한 동료는 나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하기도 했다. 다문화 가정을 위한 '한국어 강사' 공부를 하면 취직이 잘 될 거라는 조언이었다. 하지만 나는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무언가를 새로 배우기보다는 내가 가진 경력만으로도 취직이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 믿음은 틀리지 않아 나이가 있음에도 조건 좋은 정규직에 채용되기도 했다. 나만 잘하면 되는 곳이었으나 그러질 못해 작년에 그만두었다. (그렇게 그만둔 것이 사치라는 걸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 후론 완전히 마음을 굳혀 은퇴의 삶을 살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최근 다시 직장을 다녀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K의 영향도 없지 않아 있다. 더구나 돈은 모을수록 좋은 것이니 아직은 고정수입이 있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날씨가 따뜻해진 것도 한몫했다. 움츠려 있던 마음까지 열어젖힌 봄 날씨에 방 안에만 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고용노동부에서 운영하는 고용정보 사이트 워크넷을 접속했다. 그리고 몇 군데 이력서를 넣었지만 소식이 없었다. 무슨 자신감인지, 이력서를 넣으면 다 될 것 같은 허세에 내가 일터를 골라서 가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면접 기회조차 없는 것이 이상했다. 그래서 혹시 몰라 이력서를 넣기 전 전화를 먼저 걸어 확인했다.  
  
"혹시 나이 제한 있습니까?"
"아니요." 
"그럼 나이가 많아도 괜찮다는 것이지요?" 
'"네, (뜸 들이다) 하지만 우리 직장 평균 연령이 삼십 대입니다."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라고 대놓고 묻지 않는 거 보니 그나마 상대방을 예우하는 편이다.     

"그러니까 나이 제한은 없지만 젊은 사람을 원하신다는 거죠?"
"뭐 그런 건 아니지만..." 
"아니요,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구인난에는 분명 나이 제한 없다고 했는데 혹시 몰라서 전화 먼저 드린 겁니다. 나이에 걸린다면 괜히 이력서 넣을 필요가 없을 거 같아서요."
"(겸연쩍게 웃으며) 네. (다시 강조하며) 우리 평균 연령이 삼십대라 젊은 사람이면 더 좋을 거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끝끝내 내 나이를 묻지 않는 매너에 감사해야 했을까. 다른 곳 몇 군데 더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역시나 모두 나이 제한을 두고 있었다. 대놓고 나이를 묻는 곳도 있었고 나이가 너무 많아 안 된다고 난처한 듯 말하는 곳도 있었다. 나이 제한이 없다는 채용 공고는 거짓말이었다. 형식적이었던 것이다.   
    
워크넷이 안 되자 알바라도 하기 위해 알바사이트로 눈을 돌렸다. 코로나 지원 사무보조를 뽑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워크넷에 학습이 된 터라 먼저 전화를 걸어 나이 제한 여부를 물었다. 단호하게 없다고 하길래 희망을 갖고 이력서를 넣었지만 소식이 없다. 해본 적 없는 파트타임 직종에도 이력서를 밀어봤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알바가 더 힘든 시장임을 모르고 만만히 봤으니 혹독한 곤욕을 치르는 것이 당연했다.

틈새 시장조차 없다
       
늘 자신만만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취직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어느새 나는 면접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준고령자(50세 이상 55세 미만)에 해당되어 있었다. 고용에 있어서 연령에 따른 차별을 하면 안 된다는 원칙은 무용지물이었다. 이력서를 넣기도 전에 나이에서 걸리고 있었으니 암담했다.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틈새 시장조차 열리지 않았다.

예전엔 경비직 하면 나이 든 사람들을 떠올렸지만, 요즘은 젊은이들도 많다. 대형마트나 은행, 대학 곳곳에 젊은 사람들이 'security'라고 적힌 조끼를 입고 다닌다. 남자뿐 아니라 여자 경비도 있다. 모두가 젊다. 언젠가는 아파트 경비도 젊은 사람들로 대체될 것 같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대부분 젊은 사람을 선호하는 것이 분명했다.
     
나이로 인한 고용차별을 막기 위해 '고용상 연령 차별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아래 연령차별금지법 2008)'이 시행되고 있음에도 단지 위법하지 않기 위해 나이 제한 없는 공고를 할 뿐 대부분 업체는 고령자 채용을 꺼리고 있는 게 현실이었다.

효율적인 업무를 위해 나이 제한을 두는 것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그리고 나이를 제외한 서류 경쟁에서 선발되지 않은 것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사전에 이미 나이 제한을 염두에 두고 채용 공고를 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그런 점을 미리 아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연령차별금지법 시행에 더 큰 의미와 이유가 있듯이 연령차별금지법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나이가 많다고 일을 못하는 것이 아니고 나이가 적다고 무조건 일을 잘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능력은 나이가 아니다.  

연령차별금지법에서 나이 제한을 위법화하며 고용 차별을 금지했지만, 그럼에도 나이가 있다는 이유로 취직에 걸림돌이 된다면 구직자들은 움츠려 들 수밖에 없다. 단지, 나이 때문에 불합리한 고용차별을 당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법이 생기고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이 지났지만, 사업주들의 인식 개선은 아직 되고 있지 않다. 물론 일반화할 순 없지만 사업주나 구직자나 나이에 상관 없이 실력으로 경쟁하는 사회야 말로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한다.        

태그:#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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