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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방학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겐 선행이, 엄마들에겐 아이들 영양 보충이 숙제처럼 주어지는 시기입니다. 기운이 펄펄 날 초간단 보약 밥상을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진짜? 갈비탕이 아니라 소고기 뭇국이 먹고 싶다고?"
"네..."


순간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어? 이 분위기 뭐지? 내가 뭘 잘못 말 한 건가? 나는 아리송한 얼굴로 어정쩡하게 대답을 했고, 그날 내가 먹었던 것이 소고기뭇국이었는지, 갈비탕이었는지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이는 내가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맛있는 걸 해주시겠다는 시어머니 앞에서 소고기뭇국이 먹고 싶다고 대답했는데, 아마도 시어머니는 내심 시시하셨던 모양이다. 겨우 소고기뭇국을 생각해낸 며느리가.

내 소울푸드는 소고기뭇국

그런데 나는 정말 갈비탕보다 소고기뭇국이 좋다. 드러내놓고 고기의 존재감을 뿜어내는 갈비탕의 육중하고 걸걸한 맛보다, 진하고 부드러운데 깔끔한, 무가 고기만큼이나 많이 들어가 있는 그런 소고기뭇국이 더 좋다.

뜨거운 소고기뭇국을 호호 불어가며 한 그릇을 비우면 온몸에 따뜻한 훈기가 돌고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다. 뭔가 내 몸에 좋은 일을 한 것 같은 만족감. 그런데 모두가 나처럼 느끼는 건 아닌 것 같다. 어느 순간 갈비탕에 비해 시시한 음식이 되어버린 소고기 뭇국의 깊은 맛을 도무지 우리 식구들은 잘 모르는 것 같으니.

하긴 그도 그럴 것이 국물을 먹지 않는 남편과 첫째에게 소고기 뭇국은 애매한 음식일 거다. 첫째에게 무는 관상용 음식이나 마찬가지이니, 자잘한 소고기 외에는 먹을 것이 없는 음식. 그러니 무거운 바디감(?)을 자랑하는 갈비탕이 훨씬 먹을 것 있는 음식이겠다.

갈비탕에 비해 끓이기 쉽고 먹기도 쉬운 저렴한 소고기뭇국을 냉대하는 것은 나름 서운한 일이다. 하지만 이왕 겨울방학 보약밥상을 하기로 했으니, 오늘은 식구들의 냉대를 받는 소고기뭇국 대신 갈비탕을 선택했다. 갈비탕, 이 기름 많고 시간 오래 걸리는, 풍기는 아우라에서부터 몸보신이 절로 되는 그 음식 말이다.

갈비탕이 그래도 조금 괜찮다 싶은 건, 귀찮은 과정을 시작하기에 앞서 마음을 추스를 시간을 주기 때문이다. 마치 친해지기 어려운 누군가와 천천히 익숙해져 가는 느낌처럼.

가족들이 좋아하는 건 갈비탕
 
방법은 간단한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그야말로 슬로우푸드다.
▲ 갈비탕 방법은 간단한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그야말로 슬로우푸드다.
ⓒ 은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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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냉동고에서 꺼낸 갈비를 물이 담긴 커다란 볼에 담그고 세 시간 정도를 그냥 둔다. 일명 핏물 빼기 시간. 나름 오전 시간 내내 중간중간 물만 몇 번 갈아주며 나는 글도 쓰고 음악도 듣고 책도 읽는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핏물이 빠질 정도가 되었을 땐, 처음에 느꼈던 우람함이나 낯섦이 조금 덜하다. 핏물을 갈아주러 몇 번 마주 보았더니 그새 적응이 된 거다. 비로소 '이걸 언제 다해...' 하던 걱정스러운 마음이 조금 수그러든다.

그렇지만 조금 귀찮은 과정이 하나 남았다. 바로 갈비의 지방을 제거하는 과정인데 이게 생각보다 조금 귀찮긴 하다. 그러나 이 과정을 조금 꼼꼼하게 하면 나중에 기름 걷어낼 때 많이 편하다. 기름 총량의 법칙. 지금 떼어내든, 나중에 걷어내든 어쨌든 한 번은 걸러내야 한다.

이 귀찮은 과정만 지나면 뭐 별달리 할 것이 없다. 큰 냄비에 넣고 한번 데쳐내고 그다음에 물을 받아 은근하게 계속 끓이면 된다. 그런데 그 끓이는 과정이 소고기뭇국처럼 쉽게 끝나지는 않고 오래 걸린다.

한우는 고기에서 뼈가 금방 분리되어 나오는데 그렇다고 해서 다 익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냥 계속 계속 끓여야 된다. 고기가 부드러워질 때까지. 그래서 약불에 올려놓고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음악을 듣는다.

하루 종일 내가 갈비탕을 끓인 것인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음악을 들은 것인지 모를 시간이 흐르면 비로소 갈비탕이 완성된다. 그렇게 완성된 음식을 바라보고 있자니 스스로에게 뿌듯함이 생긴다. 남이 해주던 음식을 먹기만 할 때와 내가 직접 한 음식을 마주할 때의 감회가 다르다고 할까.

왠지 만들기 까다롭게 느껴지는 음식은 선뜻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마도 코로나 돌밥돌밥의 영향이 컸겠지만) 음식을 만들고 나면 성취감이 느껴지는 게 은근 기분이 좋았다. 내가 할 줄 아는 일이 하나 더 늘었다는 자신감인가?

친정엄마가 자주 사다 주시는 식재료가 늘 귀찮고 성가시게만 생각됐었는데 이젠 식재료들을 보면서도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이제서야 엄마의 마음이 너무 고맙고 소중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으니 나도 참 늦게 깨닫는 사람인가 보다. 할 줄 아는 음식 하나 더 생겼을 뿐인데, 철도 좀 든 것 같고 자신감도 좀 생긴 것이 신기하다. 삶을 살아가는 무기가 하나 더 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이렇게 오늘 완성된 갈비탕은 먹는 아이들에게는 몸의 보약이, 나에게는 마음의 보약이 되었다. 이로써 갈비탕 끓이기도 미션 클리어. 식구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좋다. 물론 그래도 나는 여전히, 우리 엄마가 끓여주는 소고기 뭇국이 제일 맛있지만 말이다.

<소갈비탕 끓이는 법>

1. 갈비를 물에 담가 핏물을 뺀다.
2. 끓는 물에 한번 데쳐낸다.
3. 데쳐놓은 갈비를 깨끗이 씻는다.
4. 넉넉한 물에 깨끗이 씻은 갈비와 다시마 한 장, 그리고 숭덩 썰어놓은 무와 양파 를 넣고 오래오래 끓인다.
5. 국간장과 소금, 마늘로 간한다.
6. 그릇에 옮겨 담고 채 썬 파를 올려 먹는다. 후추는 취향에 따라 뿌린다.

태그:#갈비탕, #몸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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