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1.19 06:01최종 업데이트 22.01.1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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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기자말]

우리나라는 이미 소득보장의 3대 영역인 사회부조, 사회보험, 사회수당을 모두 가지고 있지만 사각지대가 크다는 지적이 많다. ⓒ 셔터스톡

 
불평등의 시대다. 불평등은 자산과 소득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자산 불평등의 핵심은 부동산이다. 과도한 부동산 집중과 불로차익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보유세 강화가 중요하다. 최근 유력 대선 후보들이 '억강부약'(이재명), '약자와의 동행'(윤석열)을 말하면서도 집부자 세금 깎기 경쟁에 나서고 있어 마음이 무겁다.

소득 영역에서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1차 분배와 국가를 통한 2차 분배, 양 축으로 대응해야 한다. 1차 분배에서는 변화하는 노동시장 구조에서 노동자, 자영업자의 시장 교섭력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시장에서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는 불안정 취업자들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제도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모든 시민을 위한 노동법', '자영업자 집단교섭권' 등 노동권의 확장이 필요하다.

배제되거나 불충분하거나

국가를 통한 2차 분배는 보통 복지, 즉 '소득보장'으로 불린다. 이 글이 다루는 주제다. 우리나라는 이미 소득보장의 3대 영역인 사회부조, 사회보험, 사회수당을 모두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제 역할을 하고 있지는 못 하다. 바로 사각지대 문제다. 사각지대는 소득 지원이 절실함에도 제외되는 '배제' 그리고 설령 지원을 받더라도 급여 수준이 낮은 '불충분'으로 집약된다.


우선 사회부조에서 많은 빈곤층이 급여에서 배제되거나 낮은 급여를 받고 있다. 생계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돼도 2021년 기준으로 수급자는 약 153만 명, 전체 인구의 3%에 그친다. 금액도 1인가구 생계급여 최대액이 월 55만 원이다. 서울에서 이 금액으로 한 달을 살 수 있을까?

사회보험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 다수가 아예 제도 밖에 있다. 2021년 비정규직 노동자 중 직장 국민연금에 가입하는 사람은 37%, 건강보험은 48%, 고용보험은 50%에 그친다. 사회수당은 아동수당과 기초연금 등 특정 연령대에 한정되어 있다. 

이에 사회부조는 저소득층 다수를 포괄하며 적정 급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 사회보험은 현행 고용 기반에서 소득이 발생하면 자동으로 가입하는 '소득 기반'으로 바꿔야 한다. 또한 사회수당은 농어업, 돌봄, 공익참여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지원하는 역할집단 수당으로 확장해야 한다.

근래 논의를 보면 사회보험과 사회수당에서는 개혁의 방향을 두고 공감대가 이뤄진 듯하다. 사회보험은 실시간 소득 파악을 토대로 소득 기반으로 발전시키고, 사회수당에서는 다양한 역할집단 수당이 논의되고 있다.
  

서울 명동 거리에서 점심식사를 하려는 시민들 2021.10.25 ⓒ 연합뉴스

 
인류 최초 기본소득과 음소득세

반면 저소득층 소득보장에서는 여러 대안이 경쟁하고 있다. 현행 생계급여를 혁신하는 '생계급여 강화', 모든 시민에게 동일액을 지원하는 '보편적 소액 기본소득', 그리고 서울시 안심소득으로 선보이는 '음(陰)소득세(Negative Income Tax)'가 그것이다. 

이 중 생계급여 강화는 기존 제도틀을 토대로 삼지만 개혁 폭이 예전보다 강하고, 기본소득과 음소득세는 인류사회에서 처음 시도되는 제도이다. 세 대안 모두 기존 틀에서 보면 상당한 수준의 혁신안이다. 차례로 살펴보자.

생계급여는 시행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대상 규모와 급여 수준에서 그리 개선되지 못했다. 반면 근래 제안되는 생계급여 강화는 이전에 비해 강도가 훨씬 높다. 예를 들어, 급여수준을 현행 중위소득 30%에서 40% 혹은 50%로 인상하고 대상 선정에서도 재산 기준을 대폭 완화한다. 이러면 대상도 크게 늘고 지원액도 상당히 높아질 것이다.

다만 현행 틀을 유지할 경우 저소득층 소득보장제도로 생계급여, 근로장려금, 국민취업지원제도(한국형 실업부조)가 병존해 소득보장체계가 복잡해지는 문제가 남는다. 2020년부터 생계급여에 사업(근로)소득 공제가 적용되면서 저소득층 소득보장제도들이 모두 소득보장과 근로동기 부여라는 두 목적을 지니게 되었다. 이제는 제도 효율화와 수용성을 위해서 제도 단순화를 검토할 때다.

두 번째 대안은 보편적 소액 기본소득이다. 처음에 기본소득이 소개될 때는 노동에서 자유로워질 정도로 높은 금액으로 등장했으나 지금은 현실 여건을 감안해 월 10~30만 원의 소액으로 논의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1년 100만 원(첫해는 연 25만 원으로 시작) 월로 환산하면 약 8만 원의 기본소득을,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는 월 30만 원의 기본소득을 제안한다. 기존 복지국가 소득보장과 병존하는 '기본소득 있는 복지국가' 혹은 '혼합복지체제'이다.

기본소득은 모든 시민에게 제공되기에 사각지대를 남기지 않는 장점을 지닌다. 소득이 있어도 지급되므로 소액 방식에서는 근로동기를 낮추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재분배 효과가 논란이다. 기본소득은 경제적 수준을 따지지 않고 동일액을 지급하기 때문에 조세기반의 현금복지에서 가장 재분배 효과가 작은 제도이다. 소득불평등이 심각한 상황에서 이러한 분배 제도가 적절한지 의문이다.
  

음소득세는 과거 밀턴 프리드먼이 옹호했던 제도여서 보수적 소득보장으로 인식되어 왔으나 최근 한국에서 친복지 진영 일부도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심상정 후보도 유사 공약을 발표했다. ⓒ 셔터스톡

 
세 번째는 기본소득의 낮은 재분배 효과를 비판하며 부상한 음소득세이다. 음소득세는 과거 밀턴 프리드먼이 옹호했던 제도여서 보수적 소득보장으로 인식되어 왔으나, 최근 한국에서 참여연대, 내가만드는복지국가 등 친복지 진영 일부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가 기존 소득보장제도를 대대적으로 폐지하는 밀턴 프리드먼의 방식을 '구조조정형 음소득세'로 비판하고, 대신 기존 제도들을 대부분 유지하는 '복지확장형 음소득세'를 제안하면서 이를 '시민최저소득'으로 명명했다.

음소득세는 정부가 정한 기준액에 미치지 못하는 부족분 중 일정 비율을 지급하는 제도이다. 시민최저소득의 경우, 2022년 중위소득 100%(1인 가구 약 200만 원)를 기준으로 부족분의 50%를 지원한다. 이러면 무소득자는 부족분 200만 원의 절반인 100만 원을 지급받고, 100만 원 소득자는 부족분 절반인 50만 원을 지급받아 최종 소득이 150만 원으로 늘어난다. 이때 필요한 재정은 약 50조 원으로 이재명 후보의 기본소득 공약 재정과 비슷하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시민최저소득은 월 8만 원 수준의 기본소득에 비해 중위소득 100% 이하 계층에서 소득보장 효과가 높다. 대신 중위소득 100%를 넘는 계층은 시민최저소득에서는 혜택이 없고 기본소득에서는 동일하게 월 8만 원을 받게 된다.


 

심상정 후보의 시민최저소득과 이재명 후보의 기본소득 비교 (2022년 1인가구 기준) ⓒ 오건호

  
사전 논점 세가지

음소득세는 현행 생계급여와 비교해 보면 보장 대상이 중위소득 30%에서 중위소득 100%로 대폭 확대되고, 최대 지원액도 중위 30%(2022년 1인 가구 약 60만 원)에서 중위 50%(100만 원)로 올라간다. 

보통 중위소득 50% 이하 가구의 비율을 상대적 빈곤율이라고 한다. 2019년 시장소득 빈곤율이 21.4%이고, 공적이전소득이 반영된 가처분소득 빈곤율은 16.3%이다. 만약 시민최저소득이 시행되면 중위소득 50% 이하 가구는 존재하지 않으니 현재 상대적 빈곤 기준에서 사실상 '빈곤 제로'가 구현되는 셈이다.

음소득세는 새로 선보이는 제도인 만큼 점검할 논점이 많다. 음소득세 정당성 여부를 판가름하는 논점은 대상 기준(가구 vs. 개인), 근로동기 약화, 소득파악 형평성 등 3가지로 집약된다. (복지 구조조정 범위, 재산 반영 기준 등 여러 논점이 더 있으나 이는 정책 가치 영역이어서 설계자의 판단에 좌우되는 주제들이다.)

첫째, 음소득세 지급 대상은 가구인가, 개인인가? 근래 소득보장에서 개인의 창의와 자율을 중시하는 흐름이 부상하고 있다. 또한 가구 기준일 경우 수급권 확보를 위해 인위적으로 가구를 분리할 우려도 있다. 따라서 소득보장에서 개인 단위를 지향하는 건 바람직하다. 

그러나 현재 경제 공동체가 가구인 현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개인 지급일 경우 중상위계층 비경제활동 가구원이 모두 수급자가 되는 문제도 발생한다. 가구 분리는 미성년자와 부부에게는 허용하지 않는 범위에서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소득보장 대안에 대한 논의는 소득보장 강화뿐만 아니라 소득 파악에서 세입 확충까지 재정체계를 혁신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 셔터스톡

 
둘째, 음소득세가 근로동기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급률 50% 음소득세에서는 추가로 시장소득이 10만 원 늘었을 때 실제 증가하는 가처분소득은 5만 원이다. 이런 소득보장체계에서 근로동기가 약화될 가능성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추가 소득 증가율이 0.5인 표준모델 이외에도 0.6인 수정모델 등을 실험해볼 필요가 있다. 나아가 근로장려금처럼 소득구간별로 탄력 증가율을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셋째, 음소득세는 전체 가구 거의 절반에 소득과 연동해 지급하기 때문에 촘촘한 소득파악이 중요하다. 작년부터 '실시간 소득파악'이 추진 중이고 우리나라는 전자거래 매출 자료 비중이 높아서 과세당국이 의지를 가지면 충분히 가능하다. 

수렴

지금까지 저소득층 소득보장 대안으로 생계급여 강화, 기본소득, 음소득세를 살펴봤다. 모두 현재 소득보장의 사각지대를 넘어서려는 획기적인 대안이다. 그만큼 저소득 소득보장을 혁신하려는 시대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세 대안이 서로 다른 모양을 띠지만 사실은 동일한 원리로 수렴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생계급여에서는 근로소득 50%를 소득인정액 계산에서 제외하고(소득공제율 50%), 기본소득에서는 시장소득에 50% 소득세를 적용하며(과세율 50%), 음소득세에서 기준소득 100% 대비 부족액의 50%를 지급하면(지급률 50%), 세 제도는 소득보장이 정확히 같아진다.

 

생계급여 = 기본소득 = 음소득세. 소득공제율, 과세율, 지급률을 모두 50%로 설정하면 세 제도의 소득보장이 정확히 같아진다. ⓒ 오건호


위 그림은 각 50%의 공제율(생계급여), 과세율(기본소득), 지급률(음소득세)의 제도가 결과적으로 동일함을 보여준다. 즉, 세 대안이 서로 다른 기원에서 출발했지만 최종 도착지가 같다. 이는 저소득층 소득보장이 일정 기준액 대비 "부족분의 전부"를 채워주는 전통적 '보충성 원리'에서, 앞으로는 소득보장 강화와 근로동기 독려를 위해 기준액을 상향하고 "부족분의 일정 비율"을 채워주는 '지급률 원리'로 전환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보편 증세도 회피하지 말아야

코로나19를 맞으면서 우리 사회에서 소득불평등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이 강해지고 있다. 특히 저소득층 소득보장에서는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대안들이 논의를 이끌고 있다. 생계급여 강화는 예전과 비교하면 강도가 세고, 기본소득과 음소득세는 인류사에 처음 선보이는 소득보장이다. 이 중 음소득세는 보통 보수적 대안으로 알려져 왔으나 소득보장 효과를 증진하는 진보적 대안으로도 제안되고 있다.

앞으로 저소득층 소득보장 대안 논의가 더욱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이를 위해서는 촘촘한 소득파악이 이뤄져야 한다. 대규모 재정이 필요하기에 상위계층 대상의 기존 증세 방안과 함께 소득공제 축소, 부가가치세 인상 등 보편 증세도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결국 이 대안 논의는 소득보장 강화뿐만 아니라 소득 파악에서 세입 확충까지 재정체계를 혁신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오건호는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최근 관심은 연금, 소득보장, 주거, 의료 등 기존 복지체제의 혁신입니다. 빈곤노인기초연금보장연대, 집걱정없는세상연대, 병원비백만원연대 등 여러 연대단체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로 <내가 만드는 공적연금>, <나도 복지국가에서 살고 싶다> 등이 있습니다.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 오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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