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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씁니다.[편집자말]
장년층의 시작인 오십 중반부터 더 이상 젊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던 것 같다. 몸도 마음도 인생의 후반전을 살고 있다고 인정했다. 바쁘고 치열하게 살아온 지난 나의 삶에 대해서도 칭찬을 해 주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삶은 우아하고 여유로울 것이란 기대에 설레기도 했다.

누군가는 오십 대를 인생의 황금기이자 행복을 쟁취하는 시기라고 하고 누군가는 삶의 보람을 찾아 인간답게 사는 시기라고 말했다. 인생의 황금기라는 말에는 황금까지 거론해야 하나 싶었고, 행복을 쟁취하는 시기라는 말에는 이전엔 그렇지 못했나 싶어 반감이 들었다. 삶의 보람을 찾아 인간답게 사는 시기라는 말은 무난해 보였고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면 괜찮다 생각했을 때, 남편의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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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삶의 보람과 의미를 찾고 확인했다. 이 정도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을 때 남편에게 암이 찾아왔다. 여유는커녕 비상체제였다. 자칫 정신을 잠깐이라도 놓으면 큰일이 날 것 같은 비장한 마음으로 암과의 동행이 시작되었다. 아내이자 주부이며 엄마라는 자리는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게 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씩씩함을 가장했고 이전보다 더 단단한 사람으로 보이려고 노력했다.

하루를 일찍 시작했고 저녁을 늦게 마감했다. 어디서 기운이 나오는지 내게 이런 면이 있다는 것을 새삼 발견한 시간이었다. 혼자서는 마음 졸이며 동동거려도 가정은 흔들림 없이 안정적으로 돌아가도록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해야 할 일의 무게가 컸지만 노력 덕분인지 가정은 제법 별일 없는 듯했고 그것을 삶의 보람으로 생각했다.

그런 긴장을 유지한 채로 지금까지 이어졌다면 아마도 버티기 힘들었을 것 같다. 3개월은 비교적 견딜 만했다. 나름의 생존 방법이 익숙해질 즈음 직장에 다시 나가게 되었다. 이때부터는 책임과 의무로부터 자의 반 타의 반 느슨해진 시기였다. 불안한 마음이 컸지만 애써 눌렀고 빈자리는 조금씩 표시가 났다.

내 책임을 온전히 다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마음을 지배했다. 공백은 어찌어찌 딸과 환자인 남편이 메우고 있었다. 당장은 몸이 바쁘지 않았고 시간도 여유가 있었지만 마음은 더 무거웠다. 짐을 짊어지지도 벗어놓지도 못하는 채로 일상은 돌아가고 있었고 한숨은 깊어졌다.
 
사회인으로 사는 것, 부모라는 역할, 부모의 간병 등은 의무라고 해도 좋다. 그것이 하고 싶은 일이라면 삶의 보람이 된다. 그러나 역할과 의무에서 벗어나 더 이상 젊지 않게 되었을 때에도 과연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을까?(요시모토 유미, <오십부터는 우아하게 살아야 한다> 중)

나의 불편한 마음을 딸이 먼저 알아챘다. 돌아가는 꼴이 어설프지만 나름대로 괜찮다고 위로했다. '암환자의 가족을 위한 지침'에도 '여러 명의 가족이 함께 환자를 돌볼 수 있다면, 각자의 업무를 나누고 서로의 부담을 줄여 환자를 효과적으로 돌보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소개되어 있다며, 환자가 아닌 엄마를 걱정했다. 뾰족한 수도 없으면서 불편한 마음만 앞서는 것이 문제였고 삶이 참 얄궂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아내의 의무, 조금 내려 놓아도
 
환자의?식사를 챙기는 모든 과정도?내가 못하면 대신 가족 누군가가 자연스럽게 한다.
 환자의?식사를 챙기는 모든 과정도?내가 못하면 대신 가족 누군가가 자연스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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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술한 삶도 괜찮다고 인정하게 된 것은 코로나19 확진으로 인한 10일간의 멈춤(격리 기간) 때문인 듯하다. 촘촘하게 오늘과 내일을 계획했고 그게 안 되면 큰일이 날 것 같았던 삶이었는데... 격리되었던 10일간 신기하게도 어떤 계획도 필요하지 않았고 계획에 따르는 실행이 없어도 괜찮았다. 궁하니 통하는 방식에 젖어들었고, 가족의 안정을 지켜내야 한다는 짐과 마음의 부담을 적당히 내려놓을 수 있던 시간이었다.

가족들에게는 나의 빈 자리가 크게 다가오지는 않았던 것 같다. 형편대로 움직이면 된다고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혼자서만 감당하려고 바삐 움직였던 모습이 가족들에게는 오히려 걱정스럽고 불안해 보였다고 했다. 완벽한 주부와 엄마와 아내의 역할이란 것이 결국은 내 만족을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오늘도 TV를 보다 요리 프로그램에서 소개하는 레시피를 적는다. 외식을 할 수 없으니 세 끼를 모두 챙겨야 하고 밥상에 나름의 변화를 시도한다. 타고난 솜씨는 없으나 열심히 흉내를 낸다. 하다 보니 남편의 투병 이후로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것에 대한 강박은 사라졌다. 복잡한 레시피도 단순화해서 뚝딱 요리하지만, 성공률은 절반 정도나 될까. 음식을 앞에 두고 함께 웃는다.

온 가족이 해야 할 일을 나누고 그래도 된다고 인정하니 혼자 애쓰던 시간보다 훨씬 수월해졌다. 가족이라는 공동 운명체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 같았다. 장을 보는 것도 모두가 함께 하고, 마트나 시장을 가는 것도 번갈아 움직인다. 욕심껏 채우던 장보기도 적정량을 조절해 짐의 무게를 던다. 오늘 필요한 것을 사고 내일이나 모레에 대한 부담은 일단 지운다.

환자의 식사를 챙기는 모든 과정도 내가 못하면 대신 가족 누군가가 자연스럽게 한다. 가끔은 포장 음식도 크게 한몫 거든다. 가장 큰 힘이 되어주는 것은 환자인 남편이다. 수많은 항암치료의 부작용에도 어려움과 고통을 크게 드러내지 않고 가족들의 노력을 알아 열심히 먹으려고 애쓴다.

언젠가부터 어제의 힘겨움을 곱씹지도, 내일의 불확실성을 미리 고민하지도 않는다. 다만 오늘의 하루를 애써서 살 뿐이다. 삶이 단순해졌으니 열심을 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부족함이나 서운함을 가슴에 묻지 않고, 애써도 해결되지 않은 일은 잊는다. 어깨에 잔뜩 들었던 힘도 빼고 다난한 삶이지만 여유를 갖는다.

힘들었던 마음이 겨우 본래의 자리를 찾아가는 중이다. 우아하게 보람을 느끼며 살 수 있는 가족의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았다. 암과 함께 하는 날들이지만, 큰 시험과 시련 같았던 병도 이제는 친한 친구처럼 있는 듯 없는 듯 함께 한다. 완벽한 하루가 아니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일상은 정돈되는 듯하다.
 
인간은 하고 싶은 일과 의무가 일치했을 때 삶의 보람을 가장 많이 느낀다.(요시모토 유미, <오십부터는 우아하게 살아야 한다> 중)

오늘도 나와 가족을 위한 하루를 산다. 내가 해야 할 일과 내가 하고 싶은 일이 균형을 맞추니 마무리는 거뜬하고 삶의 보람도 느낀다. 인간다운 삶을 회복한 것 같기도 하고 조금은 우아할 수 있을 듯한 기분이다.

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씁니다.
태그:#주부의 책임과 의무, #암환자의 가족,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의 균형잡기, #삶의 보람, #50대 우아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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