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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경험하는 크고 작은 '별일'들, 한국에 의미있는 캐나다 소식을 전합니다.[편집자말]
'가까운 파트너(애인 혹은 배우자)'의 '강압적 통제'는 캐나다에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가까운 파트너(애인 혹은 배우자)"의 "강압적 통제"는 캐나다에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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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CBC뉴스는 2015년에서 2020년까지 '가까운 파트너(애인 혹은 배우자)' 관계에서 발생한 392건의 살인사건을 분석한 뒤, 지난해 12월 몇 편의 기사를 통해 그 결과를 공개했다. 특히 안타까운 점은 36%의 사례에서 이른바 '경고 신호'가 발견됐다는 사실이다. 살인에 이르기 전, 훗날 관계가 치명적으로 바뀔 수 있음을 알리는 신호들이었다(관련 기사 : 5년간 392명 사망... 캐나다도 한국과 같았다).

이러한 경고 신호들이 있기 때문에, 가까운 파트너에 의한 살인은 가장 예방 가능성이 높은 유형의 살인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강압적 통제(coercive control)'는 그러한 경고의 징후들 중 하나였다. '강압적 통제'를 형사범죄로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강압적 통제'란 현재 혹은 이전의 파트너나 가족 구성원의 반복적인 행동 패턴을 가리키는 포괄적 용어다. 강압적 통제의 행동들은 피해자로 하여금 신체적으로 해를 입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게 하며 정신건강을 악화시킨다. 또한 일이나 학업, 육아와 같은 일상적인 활동에 커다란 악영향을 미치는 불안과 공포 그리고 고통을 유발한다. 강압적 통제 행위의 구체적인 예는 다음과 같다.
 
- 상대를 친구와 가족에게서 고립시킨다.
- 음식 같은 생활 필수품을 박탈한다.
- 시간을 감시한다.
- 온라인 소통 수단이나 스파이웨어(사용자 몰래 개인 정보를 수집하는 데 쓰이는 악성 소프트웨어)를 통해 상대를 감시한다.
- 가는 곳, 만나는 사람, 입는 옷, 잠자는 시간 같은 일상생활을 통제한다.
- 의료 서비스와 같은 지원 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한다.
- '쓸모없다'는 등의 말로 반복해서 상대를 깔아뭉갠다.
- 굴욕감을 느끼게 하거나 비하 혹은 비인간적인 대우를 한다.
- 상대의 재정을 통제한다.
- 협박하거나 겁을 준다.
 
이혼한 전 남편에게 온 전화... '왜 출근 안 했냐'

CBC뉴스는 한 여성의 사연을 소개했다. 그 여성은 남편에게 말을 꺼내기가 두려워 아기의 기저귀를 사기 위해 돈을 빌려야 했다. 남편은 자신의 수입을 절대 밝히려 하지 않았다. 여성의 삶에서 중요했던 이들과의 유대관계는 남편으로 인해 모두 사라져 버렸다. 남편은 끊임없이 모든 것이 여성의 탓이라고 말했고, 결국엔 여성도 그 말을 믿기에 이르렀다. '이곳에 계속 머문다면 나는 죽고 말거야'라고 생각했다.

그 여성이 남편에게서 신체적 폭행을 당한 적은 없었다. 그녀가 남편으로부터 당한 강압적 통제의 행위들은 캐나다에서 현재 범죄 행위로 간주되지 않고 있다.

어찌어찌 이혼은 했지만 괴롭힘은 오히려 더 심해졌다. 전 남편은 지속적으로 이메일과 문자 메시지를 보냈고 그녀가 아들을 데리러 올 시간에 맞춰 어린이집 앞에 나타났다. 어느 날 왜 출근하지 않았냐고 다그치는 전 남편의 전화를 받았을 때, 그가 휴대전화의 설정을 바꿔서 자신의 이동경로를 추적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경찰에 호소해봤지만 두 사람이 공동 친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경찰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했다. 그녀는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강압적 통제가 범죄로 규정된다면, 상황은 바뀔 수 있다.

여성단체에서 활동하는 달링은 "강압적 통제는 보호조치가 실행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해자는 대담하게도 계속해서 피해자에게 연락을 하고 통제적 행동을 이어간다"고 분석했다. 

20여 년간 가정폭력 보호소에서 일했다는 두젤은 법 체제의 보호를 받을 수 없었던 수많은 여성들을 만나왔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고 한다.

"뭐라고요? 그 사람이 나를 죽이기 전에는 나를 도울 수가 없다고요?" 

강압적 통제를 입법화 하려는 캐나다의 시도

이런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해 캐나다 B.C.주 하원의원 랜달 개리슨은 '강압적 통제'를 범죄화하는 법안을 상정했다.

"현행 형법은 그저 경찰이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상황이 잠재적으로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해도 말입니다. 경찰에게는 개입할 권한이 없으니까요. 이 법안은 초기에 경찰이 개입할 수 있는 수단을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만약 그가 발의한 법안이 통과돼 강압적 통제가 범죄가 된다면, 살인이 벌어지기 전 접촉금지나 법원보호명령을 통해 피해자를 도울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강압적 통제 판결을 받은 가해자는 최대 5년의 징역형에 처해진다. 잉글랜드는 2015년 세계 최초로 '강압적 통제'를 범죄화했고 역시 최대 5년의 징역형으로 처벌한다.

한편, 강압적 통제의 입법화가 강력한 해결책이라는 데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CBC뉴스의 분석에 따르면, 희생자 중 36명이 살해 당시 법원이 명한 보호 아래에 있었고, 다수 희생자들이 경찰에 폭력을 신고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 여성은 심지어 여섯 번 이상 경찰에 연락을 취했다고 한다. 입법화만이 능사는 아님을 보여주는 수치다.

가해자를 겨냥한 프로그램의 필요성도 대두된다. 폭력을 피해 달아나려는 이들을 지원하는 데 있어 제도와 현실 사이에 커다란 격차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가해자에 대한 자원은 그보다 훨씬 더 빈약하다는 것이다. 학대가 신체적 폭력이 되기 전 가해자가 치료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일례로, 서스캐처원은 52주간의 가정폭력 중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법원의 명령으로 이뤄지는 이 집중코스는 안타깝게도 주에서 하나뿐이다. 다른 주에서도 가해자를 향한 이같은 형태의 지원이 서서히 생겨나고 있다. 노바스코샤는 '남성 도움의 전화'를 운영 중이고, 알버타는 가해자를 수용할 수 있는 셸터(보호소) 설치를 추진 중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프로그램의 증가가 폭력의 순환고리를 끊는 데 일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왜 우린 폭력이 일어난 뒤에야 피해자에게 집중하는 겁니까"

가까운 파트너 사이 혹은 가정 내에서의 폭력과 살인을 막기 위해 학교 교육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청소년들이 스스로를 위해 그리고 다른 이를 위해, 건강한 관계란 무엇이며 언제 도움이 필요한지, 학대의 패턴, 통제와 권력의 역학관계 등에 대해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학교 교육과정을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젤은 말한다.

"왜 우리는 우선적으로 폭력 발생을 막는 데 주력하고 자금을 마련하는 게 아니라, 폭력이 일어난 후에야 피해자에게 그토록 집중하는 것입니까?

남편에게 강압적 통제를 당하다가 끝내 살해 당한 언니를 잊지 못하고 여전히 같은 상황에서 고통받고 있을 이들을 위해 활동가가 된 마리안 리치는 CBC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너무나 자주 연인이나 부부 사이의 폭력은 비밀스럽게 다뤄져야 한다'고 말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사적인 일이 아니라 모두의 일'이라고. 더 이상 관여할 바 아닌 일이어선 안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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