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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30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도올 선생, 그리고 내가 참여한 농정 대담이 있었다. 대담은 1시간 남짓 진행되었지만, 도올 TV를 통해 37분짜리 동영상으로 편집되어 방영되었다. 이 동영상은 조회 수가 벌써 45만을 훌쩍 넘었고 수많은 진정성 있는 공감 댓글이 달리고 있다.
 

농촌문제가 모처럼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이날의 대담은 이재명 후보가 도올 선생과 내가 두 달 동안 전국을 순회하며 '국민총행복과 농산어촌개벽대행진'(이하 대행진)을 진행한 사실을 알고, 농촌 현장 민초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도올 선생을 직접 찾아와서 성사된 것이다.

우리는 전국 8개 도 18개 시・군을 순회하면서 "농촌문제가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고 바로 국민 여러분의 문제이며 한국사회의 미래가 달린 문제"라고 호소하였는데, 여당의 유력 대선 후보가 우리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직접 찾아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대행진은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대담은 도올 선생과 이재명 후보가 주로 얘기를 나누고 나는 배석해서 조언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도올 선생은 18회의 민회(民會)를 통해 체득한 농촌사람들의 절절한 목소리를 대변하였고, 이 후보는 행정 경험에 기초하여 농촌정책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였다. 두 분의 진지한 대담은 매우 수준 높고 자연스러웠다.

주요 대담 내용은 이미 동영상을 통해 방영되었기 때문에 되풀이할 필요는 없고, 대담에서 다루어진 주제 가운데 편집 과정에서 빠지거나 충분히 의사가 전달되지 못한 점 한두 개만 전하려고 한다.

이날 대담의 최대 초점은 농촌주민수당 지급이었다. 도올 선생은 농민이 아닌 농촌주민 전체를 대상으로 농촌주민수당을 1인당 월 30만 원 지급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이 후보는 "맞다. 농촌에는 농민만 사는 것이 아니니까. 농촌 거주자 1인당 30만 원 정도를 지급한다고 했을 때 귀농하는 사람한테 지원이 되면 (도시) 실업 압력을 줄이고 농촌 인구감소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농촌)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겨날 것"이라며 동의를 표했다.

두 사람은 의견 일치는 보이면서도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도올 선생은 농민기본소득이 아닌 농촌주민수당 지급을 주장한 것이고, 이 후보는 농촌기본소득은 농민기본소득 다음 단계라 생각하고 있고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에서 1인당 15만 원의 농촌기본소득 실험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동영상에서 빠진 부분은 도올 선생과 내가 왜 농민기본소득이 아니라 농촌주민수당이어야 하는가를 설명한 부분이다.

농민기본소득의 문제점

첫째, 농민기본소득의 대상이 되는 농민이 누구인지 특정하기가 어렵다.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 시행령은 ① 300평 이상의 농지를 경작하거나 경영하는 사람 혹은 ② 농산물 연간 판매액이 120만 원 이상인 사람 혹은 ③ 1년 중 90일 이상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농업인(농민)이라 정의하고 있다.

이 정의에 따르면 누구라도 쉽게 농업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농민 수가 이론적으로는 무한히 늘어날 수 있다. 거주지 제한도 소용이 없다. 적어도 같은 시・군에 거주하는 비농민이 인근 농촌 지역에 땅을 사거나 빌려 농사를 짓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농민 수가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무늬만 농민(법적으로는 '진짜 농민')이 늘어나는 것은 곤란하다.

둘째, 이처럼 농지를 구입하거나 빌려서 농민이 늘어난다면, 농지 가격이 상승하거나 임차료가 상승하여 기존의 농민에게 타격을 줄 것이고, 농업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청년들이 농지를 구하기 어려워 귀농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셋째, 한 동네에서 농민기본소득을 받는 사람과 받지 않는 사람 사이에 심각한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2020년 말 기준 읍·면 지역 인구는 976만 명이고 면 지역만으로도 465만 명이다. 반면에 농가인구는 230만 명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부여군 외산면은 인구가 2335명인데, 농가인구는 1104명으로 절반이 되지 않는다. 외산면 인구의 절반 이상이 농민기본소득에서 제외되는데, 농민기본소득으로 한 동네 사는 사람끼리 우의가 깨지지 않을까.

나는 최근 두 개 시・군의 농정 담당자에게 농민기본소득법안이 제시한 1인당 월 30만 원이 지급되는 경우 지역에 어떠한 변화가 생길 것인가 물었다. 담당자들은 위에서 제기한 세 가지 문제 때문에 정책 시행이 어려울 것이라고 하였다.

나는 농민기본소득을 반대하지 않지만 이러한 문제점들이 해소되지 않는 한 농민기본소득을 시행하면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농업・농촌발전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소멸위험지역주민수당'

이재명 후보가 농민기본소득을 먼저 하고 농촌기본소득을 다음 단계라고 생각하는 데는 아마도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나는 농촌기본소득 대상자가 너무 많아 재정부담이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후보는 최근 <더 팩트> 서면 인터뷰에서 농민기본소득 대상자는 210만 명인 반면에 농촌기본소득 대상자는 대략 970만 명이 될 것이라 했다.

그런데 970만 명(정확히는 976만 명)은 우리나라 82개 군(읍과 면)의 전체 인구이지, '농촌' 인구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행정구역을 도시(동)와 농촌(읍・면)으로 나누는데, 이러한 구분은 변별력이 없고 큰 의미가 없다. 읍·면 가운데서도 읍은 도시적 성격이 강해 면을 농촌지역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 또한 의미가 없다.

예를 들어, 경남 양산시 물금읍은 인구가 11만 8579명으로 웬만한 도시보다 큰 반면에 영월군 상동읍은 인구가 1114명에 지나지 않는다. 면의 경우에도 전남 순천시 해룡면의 인구는 5만 4056명인 반면에 강원 철원군 근북면은 111명에 지나지 않는다. 동의 경우도 중소도시는 인구가 면보다 적은 경우가 많다(예, 태백시 8개동 가운데 4개 동이 인구 4천 명 이하).

그런데 도올 선생과 내가 주장하는 '농촌주민수당'이란 것도 엄밀한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왜냐하면 위에서 말하였듯이 농촌주민과 농촌을 행정구역으로 특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말하는 농촌주민수당은 군 인구 전체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중소도시 전체를 대상에서 배제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면 소멸위험에 처한 읍・면・동 지역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다. 우리가 이것을 '소멸위험지역주민수당'이 아니라 농촌주민수당이라 하는 것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소멸위험지역의 거의 대부분이 농촌이기 때문이다.

소멸위험지역을 특정 하는 것도 물론 쉽지는 않지만, 행정안전부의 인구 감소지역 선정지표 8개 지표 등을 보완하면 가능하다. 인구감소율과 인구 규모 등을 고려해서 대략 추정해보면, 농촌주민수당의 대상 인구는 300~5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우선 300만 명 수준에서 시작하고 재정여건을 고려해 연차적으로 500만 명까지 늘려간다면 최선이다.
 
'기후 위기, 먹을거리 위기, 지역위기를 극복하는 3농 문제 해결 위한 국민총행복과 농산어촌 개벽대행진 출범 기자회견'이 8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배우 정우성,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도올 김용옥, 박진도 충남대 명예교수, 도법 스님, 박맹수 원광대 총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2021.10.8
 "기후 위기, 먹을거리 위기, 지역위기를 극복하는 3농 문제 해결 위한 국민총행복과 농산어촌 개벽대행진 출범 기자회견"이 8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배우 정우성,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도올 김용옥, 박진도 충남대 명예교수, 도법 스님, 박맹수 원광대 총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2021.10.8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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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 포함한 농촌주민 모두에게

다음으로 이 후보는 농민기본소득의 재원마련이 쉽다고 생각한 듯하다. "연간 농가 1가구당 1100만 원, 1200만 원 정도가 지원되는데, 낭비적 요소를 없애고 약간 지원만 해주면 농민 1인당 30만 원 정도는 가뿐하게 (지급)할 수 있다"라고 했다.

이 후보의 발언은 <더미래연구소>의 '농가지원 재정·조세지출의 농민기본소득으로의 전환에 관한 정책보고서'(이하 '보고서')에 근거를 둔 것으로 추정된다. 보고서는 농가지원을 위한 재정지출과 조세지출을 통합하고 약간의 추가 지원만 하면 농민 1인당 월 5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 보고서는 중요한 함의를 많이 담고는 있지만, 한 가지 결정적 한계가 있다.

대담에서 우리는 공익기여직접지불(흔히 '공익형 직불')을 현행 2.4조 원에서 차기 정부에서는 8조 원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더미래연구소>의 보고서는 농민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공익형 직불을 포함해 기존의 농민소득지원 재원 3.8조 원을 사용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우리는 생산주의 농정에 의한 대농 중심의 화석연료 의존형 농업에서 벗어나 기후위기 시대에 대응한 가족농 중심의 저탄소 생태농업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공익형 직불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관련기사: 농민기본소득이 아니라 농민공익기여직불이다, 왜냐면 http://omn.kr/1vj7j).

그런데 보고서에 따르면 공익형 직불은 없어지게 된다.

그러면 한국농업의 미래 비전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현행 공익형 직불 예산(2.4조 원)과 보고서에서 지적한 기존의 생산주의 농정에서 대농에게 편중된 조세지원(6.2조 원)의 약 절반(3.1조 원)을 직접 지원으로 전환하고, 매년 5천억 원의 예산을 늘리면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높이기 위한 공익기여지불 예산 8조 원을 차기정부에서 마련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것은 결과적으로는 농민소득증대에도 기여할 것이다.

우리가 '국민총행복과 농산어촌개벽대행진'에서 제안한 것은 한국 '농업'의 미래를 위해서는 공익형 직불을 8조 원까지 확대하고, '농촌'의 미래를 위해서는 농민뿐 아니라 농민을 포함한 농촌주민 모두에게 월 1인당 30만 원씩 농촌기본소득에 해당하는 '국토·환경·문화·지역 지킴이 수당'(약칭 농촌주민수당)을 지급하자는 것이다.

농촌주민수당(300만 명 대상이면 10조 8천억 원)은 농민기본소득과 달리 농림예산의 틀 내에서만 조달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모든 부처와 지자체의 '농촌'(개발)관련 예산에서 조달하기 때문에 재원 조달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나는 이날 대담 말미에 농촌주민수당의 재원 조달 방안을 이 후보에게 전달하였다. 국민적 공감대 속에서 기존 재정을 조정해서 커다란 추가 예산 없이 공익형 직불 8조 원과 농촌주민수당 10조 8천억 원이 지원된다면 농촌에 '개벽'이 찾아올 것이다.

농촌주민수당에는 전국의 면 지역 거의 대부분과 인구소멸위험 읍 지역과 동 지역이 대상이 되어, 거의 모든 농민이 포함될 것이다. 도시(대도시) 지역을 비롯해 일부 지역의 농민은 제외될 수 있다. 제외되는 농민은 기존의 농민수당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대응방안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농촌주민수당을 받는 읍・면의 주민과 그렇지 않은 주민 사이에 갈등이 있을 수 있다. 어차피 모든 사람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면 크고 작은 갈등은 피할 수 없다. 그렇지만 같은 동네 이웃끼리의 갈등에 비할 바가 아니다.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시행하는 게 정책이다.

도시나 인구가 늘어나는 읍・면에 살고 있는 농민이나 주민들은 우리가 대상으로 하는 지역소멸위험 지역에 비하면 자산, 소득, 일자리, 농지가격, 생활여건 등 모든 측면에서 월등하다. 면에서 읍으로 인구가 이동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날의 대담은 매우 성공적이었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 '농촌주민의 행복권'이 전혀 다루어지지 못했다. 농촌주민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소득뿐 아니라 교육, 의료, 교통, 주거, 돌봄, 문화 등 기본적 사회서비스가 충실하게 공급되어야 한다.

'하늘이 내린 사람' 둘러싼 오해

마지막으로 '하늘이 내린 사람'을 둘러싼 오해다. 도올 선생과 이재명 후보는 1시간가량 대담을 성공리에 마치고 두 분 모두 대단히 만족한 상태에서 가벼운 덕담 차원에서 '하늘에 내린 사람' 발언이 있었다. 현장 분위기로 봐서는 자연스러웠으나, 이 장면이 동영상으로 편집되는 과정에서 첫머리에 등장하고 언론들이 크게 다루면서 화제를 낳아 이날의 대담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그렇지만 불필요한 논란을 초래한 측면이 있다. 도올 선생과 나는 대행진을 진행하면서, 정치적으로 철저하게 중립적 입장을 견지하였다. 이날의 대담도 이재명 후보가 도올 선생을 찾아와 성사된 것이고, 우리는 대선 후보 누구라도 대행진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자 찾아온다면 응하기로 하고 이날 대담을 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취지의 발언을 도올 선생이 대담 중에서 하기로 하였는데 깜박한 것뿐이다.

 
박진도 교수(왼쪽)와 도올 김용옥(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오른쪽)
 박진도 교수(왼쪽)와 도올 김용옥(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오른쪽)
ⓒ 도올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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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든 대선 후보들이 대행진을 통해 표출된 전국 민초들의 생생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경쟁적으로 좋은 농촌정책을 제시해주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지난 19대 대선에서 3농(농업, 농촌, 농민)은 철저하게 무시당하였다. 다시 그런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전국 8개도 18시군에서 대행진을 한 이유이다.

대행진을 추진한 발기인들과 전국 8개도의 지역추진위원들이 모여 오는 1월 19일 오후 2시 프레스센터에서 '국민총행복과 농산어촌개벽 전국 대행진'을 마무리한다. 이 자리에 농촌을 사랑하는 모든 대선 후보들이 참석하여 농촌정책의 향연을 벌일 것을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박진도 기자는 충남대 명예교수로 지역재단 상임고문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습니다. 이 글은 한국농정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농촌주민수당, #농민기본수당, #국민총행복과 농산어촌개벽대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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