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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자는 언젠가 그 꿈을 닮아간다. 제주살이 23일째, 12월 27일에는 제주시 한경면에 소재하는 '환상숲 곶자왈공원'을 찾았다. 숲 입구에 손바닥만 한 돌에 하얗게 새겨진 문구가 의미 있게 다가온다. 매시간 정시마다 숲 해설을 해준단다.

13시 타임에 맞춰 해설사를 따라 숲으로 들어선다. 월요일인데도 가족 단위 탐방객이 많다. 연말이 되니 제주도에 들어온 육지 사람들이 늘었다. 바람 불고 추우니 숲으로 들어온 모양이다.

덤불 숲 곶자왈은 나무, 덩굴식물, 암석 등이 뒤엉킨 독특한 제주의 숲이다. 화산 분출 시 점성 높은 용암이 흐르다 굳어 쪼개지며 크고 작은 화산석이 됐다. 이를 비집고 식물들이 자라 숲을 이뤘다. 이런 지형은 지하의 습한 공기가 15℃ 정도로 유지되고 있어 연중 보온‧보습 효과가 뛰어나다.

그래서 여름이면 에어컨 역할을 하고 반대로 겨울에는 포근하게 느껴진다. 곶자왈에는 난대와 한대의 식물이 함께 자란다. 화산석으로 이뤄진 척박한 곳에서 나무는 뿌리로 바윗돌을 움켜쥐거나 몸통에 끼우고 자라고 있다. 원시의 자연림을 걷다 보면 그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다육이가 화산석 돌담에 붙어 겨울을 나고 있다.
▲ 환상숲 곶자왈공원 입구  다육이가 화산석 돌담에 붙어 겨울을 나고 있다.
ⓒ 임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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땔감으로 베어져 뿌리만 남은 나무들은 돌밭에서 싹을 틔워내며 바위 밑에서 세력을 키워 일군의 나무 가족을 만들며 살아내고 있다. 흙이 없는 돌무더기에서 뿌리를 땅 위로 키워나가는 종가시나무, 개가시나무의 사투를 보라. 얼마나 처절한가. 가시덤불은 덤불대로, 상록수는 상록수대로, 또 활엽수는 활엽수대로, 관목과 교목이 섞여 서로 공생하거나 경쟁하며 숲은 갈등 속에서 잘 살아내고 있다.

환상숲 곶자왈공원 약 6.5㎞ 길이의 산책로는 지역 주민 이형철 대표가 직접 조성했다. 그는 2006년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곶자왈에 들어와 불편한 몸으로 산책로를 정비했다. 매일 돌을 들어 나르고 숲을 가꾸니 오른손에 감각이 돌아왔단다.

2011년에 정식 개원하여 올해로 10주년을 맞는단다. 몇 년 전부터는 온 가족이 주민들과 더불어 해설도 해주고, 족욕 카페, 체험 프로그램, 숲속 집 같은 일자리도 만들어 함께 공존하는 공간이 되었다. 한 해 평균 15만 명이 찾는 제주지역 치유 관광의 명소란다.

이들의 이야기는 KBS TV '인간극장'에서 '곶자왈, 아버지의 숲을 걷다'라는 제목으로 2016년 6월에 방영되었고, 2017년 6월에 앙코르 특선으로 방영된 바 있단다. 아내가 감명 깊게 봤다고 기억하고 있다. 우리 타임에는 그의 딸 이지영씨가 해설을 맡고 있다. 그간의 경륜과 재치 있는 입담으로 탐방객들이 지루해하지 않게 이끌어 준다.
 
종가시나무가 돌위에서 뿌리를 내려 강력한 생명력으로 세력을 키워가고 있다.
▲ 돌을 품은 나무 종가시나무가 돌위에서 뿌리를 내려 강력한 생명력으로 세력을 키워가고 있다.
ⓒ 임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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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가시나무 도토리가 바닥에 뒹구는 입구 '오시록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숨골이다. 화산석 무더기 속에서 따뜻한 바람이 올라와 풀숲에 쌓인 눈을 녹인다. 발길을 옮길 때마다 기왓장에 손글씨로 하얗고 예쁘게 쓰인 적절한 글귀가 마음에 포근하게 다가온다.

자존감이 떨어진 나에겐 숲의 이름으로 '귀하지 않은 생명은 없습니다. 덩굴 또한 자연의 일부입니다'라며 힘을 북돋워 준다. 힘들어 좌절하는 나에게는 '어려운 상황은 당신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라며 등을 토닥인다.

산책길은 '생이소리 길'로 이어져 판근이 발에 밟히고 노박덩굴, 구지뽕나무가 덤불과 섞여 어지럽다. 지표면에는 애기꼬리고사리가 녹색으로 덮여 있다. 숲은 '변하는 것에 슬퍼하지 마세요. 당신은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화내지 마세요. 세상의 기준이 정답이 아닐 때가 있습니다'라며 위로를 보낸다.

연리목을 지나 겨울딸기가 열리는 '갈등의 길'에는 칡덩굴과 등나무가 백서향, 상동나무가 숲을 이룬 틈에서 나무줄기에 얽혀 갈등을 빚고 있다. 그들은 '갈등이 있어서 척박한 돌 땅에 흙이 생겨 숲이 풍요로워지는 것입니다'라며 '당신의 수고가 꺾일 수는 있지만, 당신이 쌓아온 시간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라고 용기를 북돋워 준다.
 
눈 내린 곶자왈에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어울려 겨울을 살아가고 있다.
▲ 곶자왈의 겨울숲 눈 내린 곶자왈에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어울려 겨울을 살아가고 있다.
ⓒ 임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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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움터를 지나 지질관측소에서 각시물로 이어지는 '아바타 길'은 소나무에 기대 사는 콩짜개덩굴, 마삭줄, 송악 등이 얽혀 내 마음을 어찌 읽었는지 '조급해하지 마세요. 당신이 힘겹게 올라온 길들이 무너져 내릴 때에도,' '가시 돋친 모습도 아름답습니다. 열심히 살아왔다는 뜻입니다'라며 손을 내민다.

동백동산을 지나 출구로 나오는데 '당신을 통해 새로운 것들이 시작될 것입니다. 숲처럼 빛날 당신을 응원합니다'라며 끝까지 나를 다독인다. 풀과 나무처럼 자연스럽게 살라고, 한 바퀴 도는데 채 1시간이 걸리지 않는 숲길을 빠져나오니 오랜 몽상에서 깨어난 듯하다.

환상숲은 2021년 제주관광공사가 인증한 '제주 웰니스 관광지'다. 코로나 시기에 여행을 통해 웰빙과 행복, 몸과 마음의 건강을 추구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숲의 끝자락 출구에 세워진 입간판에는 '모두의 숲'이란 제목으로 '깨끗한 공기, 맑은 물, 아름다운 광경,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들은 우리 후손들에게 잠시 빌려 쓰는 것'이라며, '온전한 형태로 본래의 주인에게 돌아가길 바란다'는 다짐과 함께 부탁을 담고 있다.

가시덤불을 환상의 숲으로 가꾼 한 가족의 헌신과 주민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앞으로 무궁한 발전을 빌며, 우리 모두의 숲으로 보존되길 소망합니다.

태그:#환상숲, #곶자왈, #제주 한달살기, #제주여행, #겨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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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물처럼, 바람처럼, 시(詩)처럼 / essayist, reader, trave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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