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좁은 원룸 안에서 며칠씩 지낼 때면 저는 머릿속으로 온갖 황당한 상상을 다 합니다. 예를 들면 언젠가 때가 되면 물(水)이 세상을 멸망시키려 할 것이고, 나무(木)가 그걸 극적으로 막아낼 것이라는 상상을 합니다. 그리고 그 상상 끝에 水와 木은 어째서 모양이 비슷하게 생겼을까, 대체 그 이유가 뭘까 깊이 고민합니다.

그렇게 온갖 황당한 상상 속에 빠져 살다가 며칠 만에 처음으로 방 밖으로 나가면 깨닫게 됩니다. 방 안에서 했던 그 온갖 잡생각들이 얼마나 황당무계한 것인지를. 그동안 방 안에서 제 몸과 마음이 얼마나 병들고 있었는지를.

6년째 원룸에서 혼자 살고 있는 저는 (특히 정신적으로) 그리 건강한 삶을 살고 있지는 못합니다. 그렇지만 원룸에서 혼자 사는 게 꼭 불행한 삶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삶에는 다양한 형태가 존재하는 것이고, 그러니 원룸에서 혼자 사는 게 비록 조금 외롭기는 할지라도 본인하기 나름에 따라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원룸에 혼자 사는 누군가가 '진짜로' 불행해지는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가 방 안에만 틀어박히기 시작할 때입니다.

원룸에 혼자 사는 누군가가 방 안에만 틀어박히기 시작하면 이때부터 '진짜' 불행이 시작됩니다. 왜냐하면 혼자 사는 사람이 방 안에만 틀어박히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몸이 병들고, 마음이 병들고, 정신이 병들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참 다행한 케이스였습니다.

어느 날 느닷없이 혼자가 된 저는 살던 제주를 떠나 무작정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는 우선 급한 대로 김포공항 인근 고시원에다 거처를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거처를 고시원에다 정하는 바람에 저는 식사를 위해 매일 밖으로 나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이 저에게 '불행 중 다행'이 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살던 고시원은 밥을 공동으로 쓰는 밥통에서 해 먹었는데, 당시 정신건강이 온전하지 않았던 저로서는 불안해서 도저히 그 밥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 여러 손을 타는 밥에 대체 뭐가 들었을지 몰라 차마 그걸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고민 끝에 밥을 밖에서 사 먹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불안은 여전히 남아있었습니다. 밖에서 하는 식사에도 그 나름의 위험 요소가 있었던 것입니다.

밖에서 하는 식사에는 몇 가지 치명적인 위험 요소가 있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한 번 간 식당을 또 가도 괜찮은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식당 주인조차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밖에서 밥을 사먹으면서 분명한 원칙을 하나 세웠습니다. 한 번 간 식당은 절대로 다시 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음식이 맛있어도, 아무리 주인이 친절해도, 같은 식당을 결코 두 번 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 말고 다른 원칙도 있었습니다. 직전 식당에서 먹었던 것과 다른 메뉴를 주문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직전 식당에서 먹었던 음식과 똑같은 걸 주문하는 것조차 찜찜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제가 서울에서 석 달인가 넉 달인가 살았는데, 처음에는 세든 고시원이 있는 강서구 주변 식당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매 끼니마다 식당을 바꾸다보니 나중에는 저 멀리 종로구에 있는 식당까지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제가 밥 한 끼 마음 편히 먹으려고, 지체장애 3급의 불편한 몸으로 그 많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지하철을 타고 강서구 방화동에서 종로구 교보문고 빌딩 인근까지 간 것은 절대로 정상적인 행동이 아닙니다. 문제가 많은 행동입니다. 그런데도 제가 그때 그렇게 행동했던 걸 다행으로 여기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때 당시, 어느 날 느닷없이 혼자 살게 된 저는 사람 만나는 게 싫었습니다. 사람 만나는 게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그때 저는 할 수만 있다면 일절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했습니다.

만일 그때 제가 사람 마주치기 부담스러워 방 안에만 틀어박혀 지냈다면 결과는 뻔한 일입니다. 저도 모르게 방구석에서 폐인이 되어갔을 겁니다. 그런데 먹는 것에 대한 불안 때문에 저는 아침 일찍 방을 나와 저녁 늦게까지 바깥을 휘젓고 돌아다니며 하루 세 번씩 낯 모르는 식당 주인과 대화를 나눠야 했고, 그 덕분에 사람 만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떨치고 그래서 또 방구석에서 폐인이 되어가는 끔찍한 불행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튼 그래서 제가 독자님께 하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혹 독자님은 원룸에 혼자 사시면서 사람들 마주치는 게 부담스러워 외출을 자주 안 하시는 분입니까? 만일 그런 분이시라면 당장 오늘부터 식사를 세 끼 다 밖에서 드십시오. 사람 마주치는 게 부담스럽지 않을 때까지 식사를 밖에서 하십시오. 당분간 돈이 더 들더라도 꼭 그렇게 하십시오. 그게 사는 길입니다.

태그:#혼자살기, #원룸혼자살기, #원룸살기, #원룸생활, #독신생활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