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를 연출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를 연출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 영화사 조아

 
일본 영화계의 차세대 명장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장점이라면 단연 밀도 높은 대사와 배우들의 능력치를 최대한 작품에 맞게 끌어내는 데에 있을 것이다. 2008년 첫 장편 <열정>부터 곧 국내에서 개봉하는 <드라이브 마이 카>까지 그의 작품엔 허투루 나오는 대사가 거의 없으며 맥락의 힘이 강하게 담겨 있곤 했다.

이번 영화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장기와 원작 소설(무라카미 하루키의 동명 단편)의 화학 반응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보인다. 아내의 불륜을 알고도 그녀를 잃기 싫어 침묵을 택했지만 결국 아내는 사망하고, 홀로 된 남자는 남은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이어지는 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희망의 가능성을 본다. 자칫 등장인물의 삶과 선택이 관객에게 와닿지 않을 것 같지만 영화가 끝난 뒤 분명 마음을 건드리는 무언가 느껴진다. 

16일 온라인 화상 인터뷰로 만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아마도 이 영화에서 희망이 느껴진다면 하루키 작가님 덕분일 것"이라며 겸손하게 운을 뗐다. "독자들이 하루키의 소설을 계속 읽는 건 비록 주인공들이 우울하고 고난에 젖지만 작품 속에서 어떤 희망이 느껴지기 때문이라는 신문 기사를 본 적 있다"며 그는 "그 희망의 기운을 제 영화에도 담아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대본 리딩 반복하는 이유

"사실 전 대사를 즉흥적으로 쓰는 편에 가깝다. 그저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 대사를 쓰는 게 아니라 인물들이 어떤 원리로 행동하고, 어떤 감정으로 무엇을 표현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 인물이 말할 법한 대사를 쓰려고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각 등장인물을 이해하는 게 가장 필요하다. 나름 행동 원리가 있을 테니까. 거기에 바탕을 두지 않으면 쓸 수가 없다. 각 인물의 배경 이야기를 써놓고 그게 무르익었을 때, 자신들의 말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황이 되면 대사를 쓰기 시작한다."

이 말에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정수가 담겨 있어 보인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물론이고, 그는 전작들 시나리오를 쓰기 전 등장 인물의 예전 역사와 이야기를 따로 만드는 편이라고 한다. 이번 작품에선 연출가인 남편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와 아내 오토(기리시마 레이카)가 20년차 부부로 나오기에 두 캐릭터의 대학 시절 이야기를 따로 만들었다고 한다. 영화엔 나오지 않지만 두 캐릭터가 대학교 연극 동아리에서 만나 사랑을 키워오는 장면을 써뒀고, 배우들에게 반복적으로 연습시켰다는 게 감독의 설명이었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관련 이미지.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관련 이미지. ⓒ 영화사 조아

 
"서로 사랑했지만 딸이 죽은 후 1년이 지난 상태라 슬픔과 어떤 상실감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두 사람 사이에 있는 상실감, 엇갈린 관계가 만들어지는 데엔 딸의 죽음이 큰 요인이 됐다는 걸 배우와 관객에게 이해시키기 위함이었다. 같은 의미로 각 신을 촬영하기 전에 평균 50번 정도 대본 리딩을 하는 편이다. 배우분들이 알아서 각자 준비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준비한 그걸 한 번 보여주고 끝나고 만다. 현장에서 특별함, 새로움을 경험하는 경우가 없게 되지. 

감독 입장에선 배우들의 상호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내는 게 중요하기에 대본 리딩을 많이 해오고 있다. 배우분들 입장에서도 촬영 전 불안감 같은 게 있을 텐데 리딩을 많이 하면 불안감이 점차 사라지는 것 같다. 불안을 제거하고 자신과 상대의 연기에 믿음을 심어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영화의 여운

그렇기에 그가 배우 오디션을 보는 방식도 나름 특별하다. 한국 감독 중에서도 비슷한 방법으로 배우 캐스팅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다름 아닌 연기 오디션을 보는 게 아니라 약 1시간 정도 시간을 충분히 갖고 배우가 살아온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듣는 것이다. 극중 가후쿠와 비슷한 아픔을 겪은 인물이자 그에게 희망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운전기사 미사키 역의 미우라 토코, 한국 배우로서 가후쿠 연극에 참여하는 청각장애인 유나 역의 박유림 등이 그런 과정을 거쳤다.

"미우라 토코씨는 사실 제 다른 작품 오디션을 보러 오셨는데 저와 대화에서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7살 때 아역으로 데뷔해서 경력이 많은데 대학에선 수학을 전공했고 아르바이트를 정말 많이 했더라. 사실 그때까지 미사키 역이 누가 가능할까 고민이 많았는데 미우라씨의 자세를 보고 딱이다 싶었다. 다만 그분이 면허가 없어서 서둘러 딸 수 있도록 부탁드렸다. 

그리고 유나-윤수(진대연) 부부 설정은 처음 시나리오엔 없었다. 프로듀서가 가후쿠, 오토와 대칭될 만한 부부 캐릭터가 있으면 좋겠다고 해서 만들었는데 결과적으로 그 판단이 옳았다. 박유림씨는 오디션 전날 생일이었다고 해서 어떻게 보냈는지 물었는데 어떤 국을 먹었다더라. 심심하지 않았냐고 물었는데 남자친구와 같이 보내서 외롭거나 심심하지 않았다고 했다. 별 것 아닌 말 같지만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인간성이 묻어났다. 작품에 꼭 함께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관객 입장에서 3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은 이 영화를 접하는 데 적잖이 망설이게 하는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의 전작 <해피아워>는 무려 5시간에 달한다. 이 질문에 그는 "그게 저의 과제"라고 답했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를 연출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를 연출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 영화사 조아

 
"오히려 <드라이브 마이 카>는 어디서 시작하고 맺을지 명확했다. 그럼에도 3시간 길이가 나온 건 제 판단이 부족해서인 것 같기도 하다. 캐릭터들의 대사를 번역하는 장면이 있어서 시간이 길어진 측면이 있긴 하지만. 근데 영화가 아무리 길다고 해도 인생보단 짧잖나. 제 영화를 보신 분들 중에선 길어 보이지만 순식간에 흘러간다는 반응도 있다. <해피아워>는 배우들과 워크샵으로 함께 만든 거라 집단의 고민이 긴 시간으로 나온 것 같다. 인물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삶을 회복할 것인지 고민 많았는데 그걸 펼치기 위해 긴 시간이 필요했다.

영화 길이 문제는 제게도 남은 과제다. 하나의 상품 관점으로 영화를 보면 분명 관객분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길이가 존재하니 말이다. 제 스스로 납득할 완성도를 뽑아내면서도 상품으로 사람들이 잘 받아들이는 러닝타임을 만드는 게 앞으로 고민할 숙제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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