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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교통, 그리고 대중교통에 대한 최신 소식을 전합니다. 가려운 부분은 시원하게 긁어주고, 속터지는 부분은 가차없이 분노하는 칼럼도 써내려갑니다. 교통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전하는 곳, 여기는 '박장식의 환승센터'입니다.[기자말]
'최전방 기차역'인 도라산역에 서울도 오가는 평범한 전철이 멈춰섰다. 한국철도공사는 11일부터 도라산역까지 수도권 전철을 셔틀 운행 형태로 연장했다.
 "최전방 기차역"인 도라산역에 서울도 오가는 평범한 전철이 멈춰섰다. 한국철도공사는 11일부터 도라산역까지 수도권 전철을 셔틀 운행 형태로 연장했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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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로 가는 첫 번째 전철역이 문을 열었다. 경의선의 서류상 종점이자, 남북철도의 첫 번째 역인 도라산역까지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이 연장된 것이다. 한국철도공사는 임진강역과 도라산역 사이 경의선 3.7km 구간에 대한 전철화를 완료하고 지난 11일부터 전철 차량의 연장 운행을 시작했다.

당초 도라산역으로의 전철 개통은 11월 27일로 예정돼 있었지만, 코로나19 재확산을 우려해 연기된 바 있다. 한국철도공사는 연기 2주만인 지난 11일 별도의 개통 축하 행사 없이 조용히 임진강역과 도라산역을 잇는 '안보 셔틀열차' 운행을 시작했다.

서울에서 출발한 열차가 바로 도라산까지 가는 것도 아니고, '안보 열차'라는 특성 탓에 교통카드를 태그하고 편하게 열차에 오를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서울 도심을 오가는 전동열차가 휴전선에서 2.5km 떨어진 도라산역까지 향하게 된 일은 남북 철도 연결 사업 2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개통 첫 주말, 현장에 다녀왔다.

'서울역' 가는 전철이 '도라산' 가네

11일 오전 10시 임진강역. 2019년 아프리카 돼지열병 확산 이후 도라산역으로 향하는 안보관광객이 끊겨 2년 가까이 인적이 없었던 임진강역의 민통선 출입 창구가 북적였다. 11시에 출발하는 전철을 탑승하기 위해 멀리 임진강역을 찾은 시민들이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전철을 타는 것이지만 교통카드를 찍고 바로 탈 수는 없다. 출입신청서를 제출하면 체온을 측정하고, 백신 패스를 증명한 뒤 왕복 운임 2500원을 현금이나 신용카드로 결제해야 한다. 운임을 결제하면 '도라산역'으로 가는 교통카드인 출입 표찰을 받는다. 이 모든 과정이 열차 출발 30분 전까지 끝나야 한다.
 
임진강역 전광판에 '도라산행' 열차 표시가 생생하다.
 임진강역 전광판에 "도라산행" 열차 표시가 생생하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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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에 탑승하는 과정도 복잡하다. 문산역에서 출발한 셔틀 열차가 임진강역에 도착해 모든 승객을 내려주고 난 뒤에야 탑승할 수 있다. 승강장 한 쪽 별도 공간에 모여 있다가 임진강행 열차의 모든 승객이 내렸음을 확인하면 그 열차가 '도라산행'으로 이름을 바꾸고 승객들을 태우는 것이다.

'도라산행'이라는 전광판이 열차 위에 뜨자 승객들은 하나둘씩 열차 사진을 찍곤 했다. 그간 새마을호나 통근열차가 도라산역까지 운행된 적이 있고, 관광열차인 DMZ-Train 역시 오간 적이 있지만 서울에서 편하게 타고 내리는 전철 차량이 휴전선 가까이까지 가는 것은 처음인지라 승객들 역시 기대감에 젖은 얼굴이었다.

열차에 승객들이 모두 탑승한 뒤인 11시, 도라산행 전철이 문을 닫고 출발했다. 임진각 옆을 스치고 지나 민간인 통제 구역의 시작인 임진철교를 넘는 순간 열차 안에는 묘한 긴장감도 돌았다. 승객들은 핸드폰의 카메라 앱을 열고 사진을, 그리고 동영상을 찍으며 그 순간을 남겼다.

민통선을 넘은 열차의 풍경은 여느 전철과 비슷하다. 창 바깥 풍경에 인적이 유독 없다는 것을 빼면 경춘선이나 중앙선 같은 노선의 교외 구간과 비슷한 느낌이다. 임진강역을 넘어 5분 남짓을 가자 종착역인 도라산역임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비로소 민통선을 넘어 휴전선 가까이까지 왔음이 실감난다.

도라산역에 열차가 도착하자 역명판에 가장 먼저 보이는 광경은 '다음 역'으로 개성역을 꼽는 모습이다. 실제로도 2007년 남북 철도 연결 시운전 행사 당시에는 도라산에서 개성까지 기차로 네 정거장이면 갔다. 평범한 전철 플랫폼이지만, 역명판이 분단의 현실을 말해주는 하나의 매개체가 된 것 같아 묘한 여운을 남긴다.

역 바깥은 출입금지... 인솔 따라 1시간 관광
 
임진강역 승강장애 '도라산행 열차'임을 알리는 전동열차가 정차해 있다.
 임진강역 승강장애 "도라산행 열차"임을 알리는 전동열차가 정차해 있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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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산역에 도착해서도 제약이 따른다. 도라산역 직원의 인솔에 따라 열차에서 내린 뒤, 안내에 따라 도라산역 내외부를 1시간 남짓 둘러보는 것이 일정이다. 역 직원은 도라산역 내부의 시설물이나 안보관광 테마 승강장인 '통일플랫폼'을 소개하며 관람을 유도했다.

이어 도라산역 내부 모습을 관람하고, 도라산 역 광장을 둘러보는 것으로 안보 관광 코스는 마무리된다. 관람 범위는 역 광장까지. 도라산역에 직원들이 나와 승객들이 역 광장 바깥이나 출입 금지 구역으로 가지 않도록 계도하기도 했다. 역 광장 곳곳에는 사진 촬영 금지 구역이라는 표시가 붙어 있기도 했다. 

현장의 한국철도공사 직원의 설명에 따르면 코로나19와 아프리카 돼지열병 유행 탓에 도라산역에서 출발하는 연계 안보관광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코로나 상황이 어느정도 진정되면 전철을 타고 도라산역에서 내려 안보관광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코로나19 이전에 DMZ-Train이 수행했던 역할을 이제는 전동열차가 수행하게 되는 셈이다. 이제는 전철을 타고 제3땅굴, 해마루촌, 심지어는 판문점까지 여러 안보 관광 시설을 둘러볼 수 있게 된 것이니, 의미도 남다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시간이 끝나고 승객들이 차례대로 열차에 오르는 시간이 되자, 대부분 아쉬운 듯 사진을 남겼다. 보통 '전철'을 타고 내리듯 무심코 이용할 수는 없지만, 휴전선에서 가장 가까운 곳까지 출퇴근 타는 전철로 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승객들에겐 큰 울림을 주었을 테다. 

아직 '반쪽짜리' 전철이지만... 
 
전동열차가 정차한 도라산역 승강장. 왼쪽 위 역명판 '이전 역' 표시에 '개성역' 표시가 생생하다.
 전동열차가 정차한 도라산역 승강장. 왼쪽 위 역명판 "이전 역" 표시에 "개성역" 표시가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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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도라산행 전철엔 아쉬움도 있다. 가장 먼저 서울역에서 바로 임진강역까지 전철을 한달음에 타고 온 다음 출입 절차를 거쳐 도라산역까지 이용하는 코스가 아니라는 점이 아쉽다. 서울역에서 문산역, 문산역에서 임진강역, 그리고 다시 도라산역까지 열차를 끊어 이용해야 한다. '서울역에서 전철을 타고 바로 DMZ까지 간다'는 특별함이 반감되는 것이 아쉽다.

또다른 아쉬움이라면 수도권 통합 요금제에 도라산역까지의 연장 구간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 이런 탓에 임진강역까지는 교통카드로 열차를 이용했더라도, 도라산역까지는 별도의 승차 요금을 결제해야 한다. 'DMZ까지 가는 전철'이라는 상징성을 고려한다면 수도권 통합 요금제에 포함되는 것이 더욱 의의가 클 테다.

그리고 도라산역까지의 전철 운행 역시도 토요일과 일요일, 공휴일에 하루 한 번으로 제한되는 데다, 코로나19 때문이기는 하지만 4량 편성 열차의 좌석 수보다도 적은 50명의 승객에 한정해 탑승이 가능한 점도 아쉽다. 

물론 의의도 크다. 향후 남북의 평화통일이라는 가치에 있어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전망이다. 특히 DMZ까지 전동열차가 오가면서 안보 관광에 대한 국민들의 심리적 거리를 줄이는 큰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어쩌면 먼 미래에 서울역에서 탑승한 전동열차가 도라산역에서 멈추지 않고, 평화통일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모습도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태그:#도라산역, #DMZ, #안보 관광, #광역전철, #경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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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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