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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소설과 대설 사이 농촌의 겨울 풍경
 2015년 소설과 대설 사이 농촌의 겨울 풍경
ⓒ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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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시작되고 있다. 입동을 맞았을 때도 그리 겨울을 실감하지 못했다. 아직 그리 춥지 않았고, 마당 텃밭에도 작물들이 남아 자라고 있었다. 그러다 며칠 전 소설이 지났다. 소설은 말 그대로 작은 눈, 적은 눈이 온다는 절기로 첫눈이 올 때쯤과 맞먹는다.

그런데 올해 정말로 소설에 아주 작은 눈이 내렸다. 차마 눈이라고 말하기 쑥쓰러울 정도로 살짝 눈발만 날리다 말았다. 그리고 다음 날 또 다음날 삼일 연속 눈을 보았다. 하루가 지날수록 눈발이 세졌다. 결국 아침에 일어나 보니 마당에 작은 눈알갱이들이 쌓여있었다. 이렇게 스며들 듯이 눈이 오는 것인가?

원래 절기에 대해 민감한 사람이 아니었다. 어렸을 땐 겪어보지 못해 몰랐고, 청년기엔 관심이 없어 생각도 안 하고 살았다. 때 되면 뭘 해야 한다는 어르신들의 풍습이 고리타분한 옛날 생활방식 같았다. 농사를 짓지도 않았기에 자연의 변화, 계절의 변화에 더 둔감했을 수도 있다. 더우면 시원한 걸 찾고, 추우면 따듯한 곳으로 옮기면 그만이었다.

그러다 하는 일이 생태활동가라, 일적으로 절기를 공부하게 됐다. 태양의 황도가 어떻고, 일년을 스물 네개로 나눈다는 것이 어떻고 생각보다 복잡했다. 또 때가 되면 해야 하는 일이 어찌나 많던지 너무 어렵게만 느껴졌다. 그러다 나이가 들며 자연에 관심이 생기는 건지, 자연에 관심이 생기면 나이가 드는 건지, 아무튼 어느덧 자연의 이치와 흐름이 조금씩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절기가 와 닿았다.

절기는 한 달에 두 번 있다. 매월 5일 즈음에 있고 그로부터 보름 뒤 20일 근처에 두 번째 절기가 있다. 11월 7일 겨울의 첫 번째 절기인 입동이 있었다. 그리고 22일 두 번째 절기인 소설이 있다. 12월 초 대설이 있고 12월 중순 경 동지가 있다.

그렇게 한 해를 마치고 내년 1월이 되면 소한이 있고, 또 보름 뒤 1월 중순에 대한이 있다. 그리고는 2월에 입춘을 시작으로 봄이 시작된다. 이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 딱 사이좋게 한 계절에 세달 씩 여섯 번의 절기가 있다. 그래서 24절기다.

절기엔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행동을 한다'라는 풍습이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을 다 지키기 어렵다. 잘 알지도 못한다. 동지에 팥죽을 먹는다는 정도가 가장 유명하다. 그렇다면 요즘 절기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필자에게 절기는 시간의 흐름이고 계절의 원칙이다.

우리가 공포영화를 볼 때, 이미 몇 번 본 영화라면 어느 시점에 귀신이 나올지, 좀비가 어떻게 튀어나올 지 알고 있다면 그 영화가 무섭지 않다. 그러나 처음 보는 영화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괴물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고 비명을 지르게 된다. 앞날을 예측하지 못한다는 것은 커다란 두려움이 될 수 있다.
 
잎에 핀 눈꽃이 햇빛에 반짝인다.
 잎에 핀 눈꽃이 햇빛에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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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초등학교 아이들과 기후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오랜 세월 절기를 세어보며 예측 가능했던 계절과 날씨가 지구 기후시스템의 균열로 어떻게 펼쳐질지 모른다면? 아름다운 사계절의 멜로영화가 기후재난으로 공포영화가 되고 있다.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해외의 기상이변, 아열대지방 사람들이 갑자기 들이닥친 한파로 얼어 죽었다는 얘기가 나오고, 때 아닌 가뭄과 홍수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는 뉴스가 나온다.

비단 뉴스에서만 보는 이야기가 아니다. 분명 기억하고 있다. 어느 해 4월 1일 내린 폭설과 한파로 꽃눈이 얼어버려 그해 여름 가을 과일이 달리지 않아 값이 폭등했던 때가 있었고, 11월 한 달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비가 내렸던 걸 기억한다.

기록으로 사십 며칠 동안 매일 비가 내렸다. 6, 7월 장마가 아니라 9, 10월 장마로 산지에 배추가 녹아내려 김장배추 값이 폭등해 배추 한포기 가격이 만 원에 육박했던 일도 있었다. 이런 사건들이 불과 10년도 채 안되는 사이에 일어났다는 것이 무섭다.

기후위기로 여러 가지 재난과 어려움이 있지만 가장 심각한 것 중 하나는 예측하지 못하는 기후, 계절의 변덕이다. 갑작스런 기온의 상승과 하강, 그리고 홍수와 가뭄 같은 자연재해가 우리가 예측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일어날까봐 걱정이다. 절기는 그런 점에 있어 오랜 시간동안 관찰해온 일상의 원칙인 것이다. 그 원칙이 있어야 이변인줄 안다.

그래서 '이때쯤 이래야지' 하고 예상이 되는 절기가 돌아오는 것에 안도의 숨이 내어진다. 잘 지나가고 있구나 하면서. 그래서 올해 소설 즈음에 마치 소설처럼 내린 눈들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제 다음 달 초면 대설이다. 큰 눈을 맞을 채비를 단단히 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동지를 보내고 나면 2022년이다. 아직 소한과 대한 추위가 남아있는 겨울은 진행 중일 테지만 말이다. 그리고 나면 다시 입춘, 봄의 시작, 새해의 시작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립니다. 글쓴이는 생태환경교육협동조합 숲과들 생태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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