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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네카라쿠배'라고 알아?"
"몰라, 그게 뭐야? 일본어야?"


정말 처음 들어봤구나 싶었다. 혹시나 아이가 민망해할까 봐, 외국어가 아니라 '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달의 민족'의 줄임말이라고 가르쳐줬다. 요즘 너무 핫한 기업이라, 고전적인 대기업인 삼성, 엘지, 현대보다 입사하기 힘들다는 IT 회사라고. 자그마치 초봉이 5000~6000만 원이나 된다는 꿈의 직장이라고.

높은 초봉에 반짝 관심을 보일 뿐 지속도가 짧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는 분위기다. 확고한 장래희망을 가진 자, 둘째 아이 이야기이다. "돈 많이 번다잖아~"라고 아무리 회유해도 열두 살 우리 둘째의 관심은 영 그쪽이 아닌가 보다.

피아노에 진심인 아이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하는 것과 전공으로 하겠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하는 것과 전공으로 하겠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 elements.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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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많은 아이들의 꿈이 천편일률적으로 공무원이나 의사, 유튜버 같은 안정적이거나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으로 몰린다고 하던데, 아쉽게도 우리 둘째의 꿈은 그와는 거리가 멀다. 아이의 확고한 관심사는 바로 피아노다. 악기를 전공으로 하고 싶단다.

어떤 길이 쉽겠냐마는 왜 하필이면 피아노일까. 아이가 가겠다는 길은 어릴 때부터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며, 심지어 빛을 보기 위해서는 재능도 있어야 하는, 무엇보다 인풋(input) 대비 아웃풋(output)이 적은 그런 쉽지 않은 길이다.

안 그래도 걱정을 끌어안고 사는 성격인데 작년 이맘때쯤, 둘째는 내게 조용히 폭탄선언을 했다. 그 파장이 어디까지 일파만파 퍼질 줄도 모르고, 해맑은 얼굴로 나직하게 마음을 담아 던진 한 마디.

"엄마, 나 피아노 전공 레슨으로 바꿔주면 안 돼?"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하는 것과 전공으로 하겠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다니 얘가 세상 물정을 알고나 하는 소리인가? 나와서 뭐 하려고? 가족 중에도 음악을 전공한 사람이 없으니 둘째에게 특별한 유전자가 있을 리도 만무한데. 그런 이유로 처음에는 진지하게 듣지 않았다. 반면 아이는 단호했고 진지했다.

어려운 길이라는데,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그 좁은 길을 꼭 가야만 하겠느냐고 속으로도 겉으로도 수없이 되물었지만, 이미 아이의 마음은 너무 멀리 가버린 뒤였다. 아이의 확고함에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 차일피일 결정을 미루다 예중 입학까지만 도전해 보고 안 되면 포기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렇게 나는 지금 편치 않은 발걸음으로 아이와 함께 이 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그 길에서 나는 자꾸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 중이고, 아이는 여전히 피아노에 진심이다. 우리 둘 다 처음 가는 길이지만 그렇게 다른 모습인 건 아마도 아이보다 내가 더 실패를 두려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는 실패가 두렵다 

아이가 진로를 빨리 결정해서 좋았던 것은 다른 곳에 한눈팔지 않고 한 곳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둘째는 친구와 노는 것에도, 외모를 꾸미는 것에도, 아이돌에도, 유튜브를 보는 것에도 스마트폰에도 관심이 없었다. 피아노만 있으면 되었다.

피아노 하나에만 집중했던 모습이 예뻐 보였던 처음의 마음과 나는 점점 멀어졌다. 혹시라도 이 길이 아닐 경우 뒤처진 공부는 언제 따라잡을 수 있을지, 피아노를 치다가 척추측만증을 가진 아이의 척추가 더 나빠지는 건 아닌지, 손이 아직 작은데 괜찮을지 하는 것들이 요즘의 내 고민이다.

게다가 입시 때 실수라도 한번 한다면? 그 실패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할 경우 그 미련은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실패가 두려워 그만두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반, 이왕 결정한 일이니 끝을 보자는 마음이 반으로 나뉘어 걱정만 태산이다.

그러다가도 아직 어린 아이에게 실패와 성공이라니, 숨 한번 크게 쉬고 보니 이 무슨 코미디인가 싶다. 얼마 전 '휘게'라는 유행어를 만든 덴마크인들의 학교 이야기. <행복을 배우는 덴마크 학교 이야기>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성공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실패의 중요성을 언급하지만, 여전히 많은 부모가 자식이 실패하거나 불행해지지 않도록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식을 보호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교육제도조차 아주 어렸을 때부터 A를 받는 것이 성적의 유일한 척도로 삼도록 설계되어 있다.... 완벽함은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불문율이 된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모두가 승자가 될 수는 없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대부분이 승자가 되지 못한다.

어쩌면 실패의 경험은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어떻게 모든 아이가 원하는 길에서 척척 성공만을 거둘까. 이 책에서 말하는 덴마크 교육의 탁월함은 실패를 허용하는 분위기, 실패를 권장하는 분위기이다. 바로 실패할 용기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나라라는 명예를 가져온 것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고민과 걱정이라는 것도 좀 더 잘 살아보려고 하는 것인데, 내가 하는 걱정은 아이의 행복과는 무관한 걱정이었다. 이참에 나도 아이의 행복한 삶을 위해 좀 마음을 비워야 하려나.

이런 나라면 하고 싶은 일이 생겨서 열심히 하는 아이를 보면서도 걱정할 것이고, 하고 싶은 게 없어서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는 아이를 보면서도 걱정할 것이 뻔하다. 비가 오면 부채 파는 아들을 걱정하고, 햇빛이 쏟아지면 우산 파는 아들을 걱정하는 어리석은 엄마와 무엇이 다를까.

더 잘 하는 아이와도 비교할 것도 없고, 이 길이 아니면 안 될 것도 없다. 아직 시작도 안 해본 길이니 혹시 모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나 걱정은 접고 편안하게 바라봐 주어야겠다.

정말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다마는 세상이 어디 그런가. 마음 굳게 먹고 정답 없는 삶에서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봐 주는 엄마가 되어보는 거다. 아이가 들려주는 따뜻한 피아노 음색에 귀 기울이며, 오늘은 딸에게 걱정 대신 따뜻한 응원을 보내본다.

초4에서 중3까지 10대 사춘기 아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엄마 시민기자들의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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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고 글쓰는 일을 좋아합니다. 따뜻한 사회가 되는 일에 관심이 많고 따뜻한 소통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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