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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탄 몽골인.
 말을 탄 몽골인.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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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정복한 제국은 어디일까. 흥미로운 대화 소재 중 하나다. 역사는 13세기 몽골제국을 꼽는다. 당시 고립된 섬이나 다름없던 아시아와 유럽은 칭기즈칸에 의해 하나로 연결됐다. '팍스 몽골리카' 아래서 유라시아는 인종과 문화, 종교가 뒤섞였다. 실크로드는 몽골제국이 남긴 여러 유산 중 일부다.

몽골초원에서 시작한 몽골기병은 극동 한반도부터 서유럽 헝가리, 오스트리아까지 내달렸다. 로마제국이 400년 동안 경영한 땅보다 넓었다. 유라시아를 정복하는 데 걸린 시간은 25년가량에 불과했다. 바람과 같은 속도다. 칭기즈칸은 알렉산더, 나폴레옹, 히틀러 셋을 합한 땅보다 넓은 영토를 정복했다.

기동력에 방점

선거 때마다 정치권에 칭기즈칸과 몽골기병이 회자된다. 몽골제국처럼 정치영토를 확장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몽골기병을 처음 언급한 건 2004년 17대 총선에서의 정동영이다. 당시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몽골기병이 되어 질풍노도와 같이 누비면서 선거혁명을 이루겠다"며 몽골과 기병을 언급했다.

이에 맞선 추미애 새천년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은 "우리는 또박또박 전진하는 로마보병이 되겠다"고 응수했다. 결과는 몽골기병 압승, 로마보병 참패였다. 열린우리당이 152석 원내 1당으로 진입한 반면 새천년민주당은 9석 소수정당으로 쪼그라들었다. 이후로도 정동영은 몽골기병을 언급하며 자신의 브랜드로 만들었다.

20대 대선에서 '몽골기병'이 다시 등장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22일 충남 논산에서 "몽골군인 10만 명이 유럽과 아시아를 휩쓴 힘은 빠른 속도, 단결된 힘이었다. 빠르게 행동하는 소수가 전체를 석권한다.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후 민주당은 선대위를 슬림화하고 사무총장 김영진, 전략위원장 강훈식을 임명했다. 두 사람은 이재명 측근이자 재선 의원이다. 친정체제 구축에 속도를 내면서 초선과 재선 중심으로 기동성을 높이려는 의도로 읽힌다. 우원식 공동선대위원장과 조정식 상임총괄선거대책본부장, 박홍근 비서실장은 이 같은 의중에 힘을 보태며 물러났다.

국민의힘 측에서도 몽골기병을 거론했다. 윤석열 캠프에 합류한 김한길 새시대준비위원장은 "국민의힘도 이제는 중원을 향해 두려움 없이 몽골기병처럼 진격하겠다"고 했다. 새시대준비위원회는 중도층을 타깃으로 한 외연 확장에서 교두보 역할을 맡는다. 민주당에 반대하는 중원을 휘젓겠다는 심산이다.

'몽골기병'을 언급한 이재명과 김한길은 한때 정동영과 한솥밥을 먹었다. 이재명은 2007년 열린우리당 후신이자 더불어민주당 전신인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정통들)' 공동대표를 맡았다. 또 김한길은 2007년 정동영과 함께 열린우리당을 해체하고 대통합민주신당 창당 과정을 주도했다.

이재명과 김한길이 몽골기병을 소환한 의도는 기동력을 바탕으로 대선에서 승리하겠다는 뜻이다. 선대위 구성만 놓고 보면 일단 민주당이 몽골기병론에 근접해 있다. 민주당은 선대위 조직을 슬림화했고, 핵심 인물들도 젊어졌다. 후보와 선대위간 의사결정 단계를 간소화함으로써 기동력을 확보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몽골기병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합류를 놓고 20일 넘게 갈등을 빚는 게 첫째다. 또 본부장급 가운데 이준석을 제외한 주호영, 원희룡, 김성태, 권영세, 권성동은 참신성과 거리가 있다. 직능본부장에 내정된 김성태는 물러났지만 국민의힘의 둔감한 인식수준을 드러냈다.

콘텐츠의 힘

몽골기병은 원정에 적합한 말과 경무장, 간단한 보급을 바탕으로 기동력을 최대화했다. 몽골 말은 사료를 먹는 유럽 말과 달리 풀밭만 있으면 충분했다. 게다가 몽골기병은 철갑차림 유럽 기사들과 달리 가죽갑옷을 입었기에 민첩했다. 음식 또한 육포와 말 젖으로 해결했다. 몽골기병이 하루에 80~100km를 달릴 수 있었던 건 이 때문이다. 별도 보급부대가 없는데다 가벼운 갑옷, 지구력이 뛰어난 몽골 말은 속도전에서 압도적이었다. 게다가 몽골기병은 서너 마리 말을 번갈아 타면서 빠른 속도로 진격했다. 칭기즈칸이 역사상 가장 넓은 땅을 가장 짧은 기간에 정복할 수 있었던 배경 가운데 기동력은 일부다.

보다 큰 힘은 콘텐츠에서 나왔다. 실용을 중시하는 개방성과 유연함, 상대를 포용하는 관용, 끊임없는 혁신, 능력중심 인재발탁, 공정한 전리품 분배 방식 등이다. 칭기즈칸은 피 정복지 기술자를 우대하고 앞선 기술도 기꺼이 수용했다. 송나라에서 공성 기술을 받아들여 유럽 도시를 공략했다.

또 관용적인 정책을 취했다. 당시 유럽인들이 이교도들을 불에 태울 때 칭기즈칸은 종교의 자유를 허용했다. 인재를 발탁하는 과정에서는 출신보다 능력을 우선했다. 부족 간 장벽을 허물고, 피 정복민 일지라도 유능한 인물을 등용했다. 전리품 또한 전사자 가족까지 배분함으로써 사기를 극대화시켰다.

기술혁신도 탁월했다. 몽골은 유라시아 전역에 1500여 개에 달하는 역참을 설치, 교통과 통신망을 촘촘하게 구축했다. 역참은 극동에서 서유럽까지 열흘이면 소식을 전하는, 오늘날 광역 통신망을 방불케 했다.

여기에 말 타는데 편리한 바지와 화살 명중률을 높인 등자, 원거리 전쟁을 가능케 한 육포, 공포를 극대화한 활과 반월형 칼은 혁신적이었다. 13세기 몽골 인구는 150~200만 명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몽골은 160년 동안 2억 명에 달하는 유라시아를 통치했다. 실용을 바탕에 둔 관용과 개방, 유연함, 그리고 연고를 배제한 인재등용과 공정한 분배가 이를 가능케 했다.

정치권은 말로만 몽골기병을 외칠 게 아니라 콘텐츠를 읽어야 한다. 실용적인 선대위 구성, 능력 중심 참신한 인재 영입, 나아가 대선 이후 상대 진영을 포용하는 관용과 정책적 유연함까지 고민해야 한다. 몽골제국은 기동력뿐만 아니라 관용과 유연함에서 비롯됐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임병식씨는 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입니다. 이 글은 <한스경제>에 실렸습니다.


태그:#이재명 몽골기병론, #팍스 몽골리카, #실크로드, #유라시아, #개방과 관용, 유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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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 여행, 한일 근대사, 중남미, 중동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중남미를 여러차례 다녀왔고 관련 서적도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중심의 편향된 중동 문제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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