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병도씨는 8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수어지원을 받아 정식 택시운전 자격시험을 보고 싶다"라고 호소했다.
 이병도씨는 8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수어지원을 받아 정식 택시운전 자격시험을 보고 싶다"라고 호소했다.
ⓒ 신나리

관련사진보기

 
"공장에서 일하다 소통이 안된다고 쫓겨났습니다. 일용직 노동자로 일했지만 청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많은 차별을 받았습니다. 택시 운전은 달랐습니다. 손님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바래다주며 많은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택시운전 자격시험을 통과하고 못하고 있습니다. 수어가 아닌 말은 우리에게 외국어와 마찬가지라 시험에 합격하기 쉽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12번이나 떨어졌습니다."

이병도씨는 청각장애인이자 택시운전 기사다. 1999년에 운전면허를 딴 이후 '무사고' 운전자인 그는 지난 8월부터 청각장애인 기사가 운전하는 택시 '고요한 M(모빌리티)'에서 기사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오는 10일 그의 임시 택시운전 자격증이 만료되기 때문이다. 현재 운송플랫폼 사업의 운전업무에 종사하려는 사람은 택시 운전자격 취득 전 임시로 3개월 간 임시 택시운전 자격증을 발급받아 운송플랫폼 사업 차량을 운행할 수 있다.

8일 수어통역사와 함께 <오마이뉴스>를 만난 이씨는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청각장애인의 택시 운전면허 취득과 관련한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다"라고 지적하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과 함께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에 시정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청각장애인에게 수어는 제1언어"
 
8일 장애인단체들은 공공기관인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위반했다며,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8일 장애인단체들은 공공기관인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위반했다며,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 신나리

관련사진보기

 
이씨가 인권위에 진정한 주요 내용은 '수어 지원'과 관련한 것이다. 그는 "운전면허시험과 달리 택시운전 자격시험은 수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청각장애인들은 최소 5번에서 최대 10번 이상 시험을 치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도로교통공단은 2019년 6월부터 청각장애인의 자동차운전면허시험을 지원하고 있다. 청각장애인 또는 비문해자를 위한 자동차운전면허 학과시험문제 학습 콘텐츠를 개발해 무료로 배포하는 식이다. 이를 통해 청각장애인들은 수어동영상을 미리 시청하는 등 사전에 시험을 체험할 수 있다. 운전면허 도로주행시험은 지난 2012년부터 음성코스를 안내해 청각장애인의 시험을 지원하기도 했다. 

반면, 택시운전 자격시험을 주관하는 한국교통안전공단은 청각장애인을 위한 별도의 편의제공을 하지 않는다. 시험은 ▲교통 및 운수관련법규 ▲안전운행요령 ▲운송서비스 ▲지리 등 총 4과목으로 이뤄진다. 80분 동안 80문제를 풀며 60점이 넘기면 합격이지만, 청각장애인들은 별도의 수어지원이 없으면 과목별 문제를 이해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호소했다. 

이씨는 "수어는 나라에서도 인정한 언어이자 청각장애인의 제1 언어다. 우리도 자격시험에서 언어를 선택할 권리가 있는 것 아니냐"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실제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수어법)은 농인에게 제1언어로 사용되는 수어를 국어와 동등한 언어로 인정하며, 청각장애인의 언어권과 삶의 질을 보장한다고 명시했다. 

이에 장애인단체들은 공공기관인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이날 서울 중구 인권위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한국교통안전공단에 청각장애인에 대한 정당한 편의제공을 문의했을 때, 수어필기시험의 경우 개발에 비용이 많이 드는데 응시하는 청각장애인의 수가 적다고 답했다"라면서 "말이 안 되는 답변이다. 청각장애인에게 제공되는 수어 지원은 시혜가 아닌 장애당사자들의 당연한 권리"라고 강조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사실상 장애인의 직업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시언 변호사(사단법인두루)는 "택시운전면허 시험은 실질적으로 청각장애인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는 것"이라며 "한국교통안전공단은 이른 시일 내에 수어지원 등 편의제공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기자회견 후 이씨는 택시 운전대를 잡기 위해 출근했다. 그의 운행방식은 다른 택시 운전기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승객이 '고요한 M'앱을 통해 목적지를 입력하면, 찾아가는 식이다. 다만  승객과의 소통은 대부분 '기술의 힘'을 통해 이뤄진다. 

승객은 뒷좌석에 마련된 태블릿PC 화면의 우회전, 직진, 좌회전 등 방향키와 여기서 내릴게요' 버튼을 통해 택시 기사에게 의사를 전달한다. 다른 요구사항이 있으면 키보드로 문자를 입력하거나 직접 화면에 글씨를 손으로 쓰면 된다. 손님의 음성을 텍스트로 변환해 기사에게 전달하는 음성인식 프로그램도 내재돼 있다. 앱 미터기로 계산된 요금은 등록한 카드에서 자동으로 결제되고 영수증도 앱으로 전송된다.

청각장애인 기사가 경적 등을 듣지 못하면 도로 상황을 파악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이씨는 "보청기를 끼면 경적 등 큰 소리는 들을 수 있다. 20여 년 넘게 운전을 해왔지만, 경적을 듣지 못하거나 운전을 잘못해 사고가 난 적이 없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태그:#청각장애인, #수어, #택시 운전, #한국교통안전공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